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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wing No.06’Ink on Paper, 53.5×76.5㎝
오면 오나보다, 가면 가나보다, 옛날에는 그랬단다. 봇짐은 나귀 등에, 보따리는 이고 지고, 산 넘고 물 건너서 터벅터벅 뚜벅뚜벅.
돌아올 사람이나 기다리는 사람이나 그리운 마음이야 왜 없었겠느냐마는, 그냥 그랬단다. 그에 비해 요즘은 분리불안에 시달리며 핸드폰을 움켜쥐고 있을 게 서로 빤하니, ‘연락 두절’ 상태를 인내하는 시간이 이렇게 짧았던 때가 있었을까 싶다. 제발 좀 혼자 있고 싶어도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비행기가 붕 뜨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는 사람을 종종 본다. ‘강제 격리’ 상황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나.
날 찾지 못하게 하고 싶은 ‘아무도’에는 일에 관련된 사람만 있는 건 아니어서 멀리 떠나고 싶은 대상이 가족이 되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간 ‘도망 여행’이 한두 번이 아닌데, 지난봄 산책길에 우연히 만난 외국인 친구는 심지어 캐나다로 이민 갔단다!
키가 훤칠한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건 우연히 눈에 띈 아이돌 팬카페 이벤트에서였다. 호기심에 기웃대는 나를 너그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기에 어떻게 입장하는 건지 물었다. 1만5천원 입장료가 있는데 식음료 메뉴가 거의 소진돼 들어갈까 말까 하던 참이란다. 그렇다면 나는 되었다, 하니 함께 문을 나서며 말하기를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람이 이미 많으니 가본 거나 진배 없다나. 소중한 기회를 놓친 관광객의 표정이 아닌 듯해 말을 붙여보니 워킹홀리데이로 한국에 산 지가 1년이 넘은 이였다.
왜 한국을 선택했는지,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떤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진짜 흥미로운 건 인도에 돌아가면 반드시 겪는다는 가족과의 갈등 이야기였다. 일이 년에 한 번씩 부모님을 뵈러 가는데, 아이고야, 갈 때마다 그렇게 싸운단다! 다투는 사람도 이유도 매번 똑같다. 아무리 이번에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어쩔 수가 없다.
서로 어떤 말을 하면 상대가 폭발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 물으니, 눈을 한 번 굴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문득 어릴 때 영국에서 내가 눌렀던 빨간 버튼이 생각났다. 영국에 도착한 다음날, 처음 보는 영국식 주택이 신기해 집을 탐험하던 중, 500원 동전만 한 빨간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상식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16살이 홀린 듯 버튼에 다가갔다. 누르면서 생각했던 듯하다. ‘경보기, 누르면 안 돼!’ 그 후 혼이 쏙 빠지게 온 집을 흔들던 경보음이나, 거인 같은 경찰의 출동이며, 그가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기어들어가 전기선을 끊어낸 거라든가, 효율적인 영어로 상황을 끝까지 씩씩하게 수습하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 빨간 버튼을 왜 눌렀는지 당최 알 수가 없는데, 어쩌면 가족 관계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스쳤다. 누르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기어이 누르고야 마는 것, 말이다. 사람은 사랑이나 행복보다는 고통에 더 깊이 공감하는 듯한데, 그런 면에서 ‘숨’으로 연결된 부모 자식은 유전적 특성까지 닮아 서로를 깊이 느끼고 이해하기에 상대의 빨간 버튼을 정확하게 아는 게 아닌가 한다. 요즘 들어 부쩍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엄마에게 물었다. 내가 엄마의 어떤 면을 닮았느냐고. 엄마가 말씀하시길 예쁘고, 상냥하고, 세심하고, 호기심 많고, 실행력이 좋단다. 그럼, 아빠는? “판단력과 조직력…”까지 하고는 망설이더니 덧붙였다. “고약한 성질?” 불과 5초 전에 한 칭찬은 어디 가고, 오랜만에 꺼내놓은 빨간 버튼을 함께 보며 둘이 피식피식 웃었다. 그날 밤새워 뒤척이며 깨달았다. 오면 오나보다, 가면 가나보다, 그랬을 리 없겠다고. 매일매일 한낮은 물론, 달이 차고 기우는 모든 밤에 애태웠을 거라고. 그러다가 아예 가고 나면 문득문득, 그 생각만 하고 살았던 듯 애끓었을 거라고.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서로 어떤 말을 하면 상대가 폭발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 물으니, 눈을 한 번 굴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문득 어릴 때 영국에서 내가 눌렀던 빨간 버튼이 생각났다. 영국에 도착한 다음날, 처음 보는 영국식 주택이 신기해 집을 탐험하던 중, 500원 동전만 한 빨간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상식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16살이 홀린 듯 버튼에 다가갔다. 누르면서 생각했던 듯하다. ‘경보기, 누르면 안 돼!’ 그 후 혼이 쏙 빠지게 온 집을 흔들던 경보음이나, 거인 같은 경찰의 출동이며, 그가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기어들어가 전기선을 끊어낸 거라든가, 효율적인 영어로 상황을 끝까지 씩씩하게 수습하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 빨간 버튼을 왜 눌렀는지 당최 알 수가 없는데, 어쩌면 가족 관계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스쳤다. 누르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기어이 누르고야 마는 것, 말이다. 사람은 사랑이나 행복보다는 고통에 더 깊이 공감하는 듯한데, 그런 면에서 ‘숨’으로 연결된 부모 자식은 유전적 특성까지 닮아 서로를 깊이 느끼고 이해하기에 상대의 빨간 버튼을 정확하게 아는 게 아닌가 한다. 요즘 들어 부쩍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엄마에게 물었다. 내가 엄마의 어떤 면을 닮았느냐고. 엄마가 말씀하시길 예쁘고, 상냥하고, 세심하고, 호기심 많고, 실행력이 좋단다. 그럼, 아빠는? “판단력과 조직력…”까지 하고는 망설이더니 덧붙였다. “고약한 성질?” 불과 5초 전에 한 칭찬은 어디 가고, 오랜만에 꺼내놓은 빨간 버튼을 함께 보며 둘이 피식피식 웃었다. 그날 밤새워 뒤척이며 깨달았다. 오면 오나보다, 가면 가나보다, 그랬을 리 없겠다고. 매일매일 한낮은 물론, 달이 차고 기우는 모든 밤에 애태웠을 거라고. 그러다가 아예 가고 나면 문득문득, 그 생각만 하고 살았던 듯 애끓었을 거라고.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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