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면 오나보다, 가면 가나보다
‘숨’ Jaye 지영 윤
등록 : 2025-10-16 17:18
‘Drawing No.06’Ink on Paper, 53.5×76.5㎝
서로 어떤 말을 하면 상대가 폭발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 물으니, 눈을 한 번 굴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문득 어릴 때 영국에서 내가 눌렀던 빨간 버튼이 생각났다. 영국에 도착한 다음날, 처음 보는 영국식 주택이 신기해 집을 탐험하던 중, 500원 동전만 한 빨간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상식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16살이 홀린 듯 버튼에 다가갔다. 누르면서 생각했던 듯하다. ‘경보기, 누르면 안 돼!’ 그 후 혼이 쏙 빠지게 온 집을 흔들던 경보음이나, 거인 같은 경찰의 출동이며, 그가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기어들어가 전기선을 끊어낸 거라든가, 효율적인 영어로 상황을 끝까지 씩씩하게 수습하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 빨간 버튼을 왜 눌렀는지 당최 알 수가 없는데, 어쩌면 가족 관계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스쳤다. 누르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기어이 누르고야 마는 것, 말이다. 사람은 사랑이나 행복보다는 고통에 더 깊이 공감하는 듯한데, 그런 면에서 ‘숨’으로 연결된 부모 자식은 유전적 특성까지 닮아 서로를 깊이 느끼고 이해하기에 상대의 빨간 버튼을 정확하게 아는 게 아닌가 한다. 요즘 들어 부쩍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엄마에게 물었다. 내가 엄마의 어떤 면을 닮았느냐고. 엄마가 말씀하시길 예쁘고, 상냥하고, 세심하고, 호기심 많고, 실행력이 좋단다. 그럼, 아빠는? “판단력과 조직력…”까지 하고는 망설이더니 덧붙였다. “고약한 성질?” 불과 5초 전에 한 칭찬은 어디 가고, 오랜만에 꺼내놓은 빨간 버튼을 함께 보며 둘이 피식피식 웃었다. 그날 밤새워 뒤척이며 깨달았다. 오면 오나보다, 가면 가나보다, 그랬을 리 없겠다고. 매일매일 한낮은 물론, 달이 차고 기우는 모든 밤에 애태웠을 거라고. 그러다가 아예 가고 나면 문득문득, 그 생각만 하고 살았던 듯 애끓었을 거라고.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