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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ed N.01’ Mixed Media on Paper, 53.5×76.5㎝
[이번 호부터 Jaye 지영 윤의 ‘숨’을 연재한다. ‘숨’은 작은 손길로 도시를 숨 쉬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필자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 글로벌 제약사 임원, 국내 벤처기업 경영진 등 폭넓은 경험을 쌓은 뒤 세상과 소통하고자 작가이자 화가의 길로 나섰다. 편집자 주]
동작역에서부터 서래섬으로 난 한강변 산책길을 가끔 찾는다. 반포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 입구에는 들어서자마자 알록달록한 꼬마 셔틀버스가 반갑게 손짓한다. 게으름 피우고 싶은 유혹을 애써 물리치고 시원하게 탁 트인 한강을 왼편에, 계절마다 변하는 풀·꽃·나무를 오른편에 두고 걸으면 마음이 어찌나 ‘몽글몽글해’지는지, 매번 질리지도 않는다.
이뿐인가, 오월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유채꽃도 장관인데 웬일인지 올해는 꽃밭이 조용했다. 뒤죽박죽이었던 봄 날씨 탓이란다. 몇 주 후, 다시 찾은 서래섬 노란 유채꽃 자리엔 뜻밖에도 하양 꽃 천지였다.
어머나, 유채꽃이 안 피어서 다른 걸 심었나, 발걸음을 재촉해 다가가니 토끼풀이라고도 하고, 클로버라고도 부르는 잡초였다. 설마하니 잡초를 심었을까 싶으면서도, 초록 카펫에 귀여운 흰색 동그라미가 수놓인 듯한 모습에, 혹시 정말 심은 건 아닐까, 궁금해졌다.
15년 넘게 서울의 공원을 조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이에게 불쑥 이 얘기를 꺼냈다. 공원 조경에 질문이 있다는 말에 동그래졌던 눈은 금세 반달 모양이 되었다. 클로버는 그냥 잔디밭이면 곧잘 따라 자라는 거지, 심지는 않는다며 쿡쿡 웃었다. “종자를 뿌린 화단이나 계획된 관목 구역이 아닌 곳에 핀 풀꽃은, 주변 식물을 해치지 않는 이상 굳이 손대지는 않아요. 다만 생명력이 너무 좋아서 애써 심은 관목까지 덮을 정도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정리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자라게 놔둡니다. 요즘엔 ‘잡초도 예쁘다’고 말씀하시는 시민이 많거든요. 완전한 방치는 아니고 의도된 방치랄까요.”
가만히 설명을 들어보니, 봄에 종자를 뿌린 경우에도 공원 관리하는 분들이 발아를 돕기 위해 물을 주긴 하지만 계속 주지는 않는단다. 그래서 날씨에 따라 발아율이 들쭉날쭉해도 그것까지 관리하지는 않고 자연에 맡긴다는 거다. 길을 오가며 때론 몰려 있고, 때론 듬성듬성 핀 꽃이 항상 궁금했던 터였다. 임자를 만났는데 기회를 놓칠쏘냐, 그간 예쁘다고 찍은 걸 주욱 보여주며 그럼 이 중 어떤 게 씨를 뿌린 건지 물었다. 뭐가 뭔지도 몰랐던 꽃들에 그이는 이름마저 붙여 색색으로 피는 수레국화, 강렬한 빨강 꽃양귀비 등은 씨를 뿌린 거고, 키가 삐죽한 하양 개망초나 낮게 통통 피는 자주색 엉겅퀴는 그냥 피는 풀꽃이란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은 깜짝 놀랐다. 심은 것도 아니요, 물을 계속 주는 것도 아닌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게 아니었구나! 하지만 곧, 서래섬의 그 하얀 클로버 카펫도 온전한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방치 아닌 방치’ 역시 누군가 내린 결정이자 일의 결과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움츠러들고 답답한 마음에 나섰던 산책길에서 숨이 탁, 트였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우연히 마주친 유럽풍의 걸이 화분, 단정하게 이발한 가로수, ‘눈 펑펑’이든 비바람이든 어느새 말끔하게 정돈된 도시 경관이 있는가 하면, 한겨울 버스 정류장의 따뜻하게 데워진 의자처럼, 정말 세계 다른 어느 도시에서도 본 적이 없는 배려도 있었다. 그리고 또, 뜻하지 않은 상황에 낯선 이에게 받은 생각지도 못한 관심이며 호의까지, 다소 엉뚱했던 장면들까지 스쳤다. 이렇듯 공통점이 없어 보이던 순간들이 어느새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는 듯했다. 어쩌면 언젠가 정처 없이 쿵쾅대며 거리를 헤매던 나를 숨 쉬게 도와준 건 내가 받고도 무심히 지나친 누군가의 손길인지도 모른다. 정작 그 구원 같았던 숨을 준 손길의 주인은 누구에게 닿을지도 모르는 채 그저 자기 일을 한 것뿐이고 말이다. 마치 어느 날, 아니 바로 그날 서래섬에서 내가 꽃을 심지 않았지만, 꽃을 본 것처럼.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Jiyoungyoon101@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가만히 설명을 들어보니, 봄에 종자를 뿌린 경우에도 공원 관리하는 분들이 발아를 돕기 위해 물을 주긴 하지만 계속 주지는 않는단다. 그래서 날씨에 따라 발아율이 들쭉날쭉해도 그것까지 관리하지는 않고 자연에 맡긴다는 거다. 길을 오가며 때론 몰려 있고, 때론 듬성듬성 핀 꽃이 항상 궁금했던 터였다. 임자를 만났는데 기회를 놓칠쏘냐, 그간 예쁘다고 찍은 걸 주욱 보여주며 그럼 이 중 어떤 게 씨를 뿌린 건지 물었다. 뭐가 뭔지도 몰랐던 꽃들에 그이는 이름마저 붙여 색색으로 피는 수레국화, 강렬한 빨강 꽃양귀비 등은 씨를 뿌린 거고, 키가 삐죽한 하양 개망초나 낮게 통통 피는 자주색 엉겅퀴는 그냥 피는 풀꽃이란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은 깜짝 놀랐다. 심은 것도 아니요, 물을 계속 주는 것도 아닌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게 아니었구나! 하지만 곧, 서래섬의 그 하얀 클로버 카펫도 온전한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방치 아닌 방치’ 역시 누군가 내린 결정이자 일의 결과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움츠러들고 답답한 마음에 나섰던 산책길에서 숨이 탁, 트였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우연히 마주친 유럽풍의 걸이 화분, 단정하게 이발한 가로수, ‘눈 펑펑’이든 비바람이든 어느새 말끔하게 정돈된 도시 경관이 있는가 하면, 한겨울 버스 정류장의 따뜻하게 데워진 의자처럼, 정말 세계 다른 어느 도시에서도 본 적이 없는 배려도 있었다. 그리고 또, 뜻하지 않은 상황에 낯선 이에게 받은 생각지도 못한 관심이며 호의까지, 다소 엉뚱했던 장면들까지 스쳤다. 이렇듯 공통점이 없어 보이던 순간들이 어느새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는 듯했다. 어쩌면 언젠가 정처 없이 쿵쾅대며 거리를 헤매던 나를 숨 쉬게 도와준 건 내가 받고도 무심히 지나친 누군가의 손길인지도 모른다. 정작 그 구원 같았던 숨을 준 손길의 주인은 누구에게 닿을지도 모르는 채 그저 자기 일을 한 것뿐이고 말이다. 마치 어느 날, 아니 바로 그날 서래섬에서 내가 꽃을 심지 않았지만, 꽃을 본 것처럼.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Jiyoungyoon101@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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