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일주일에 두번 ‘빨간집’으로 출근합니다

111개 불법 유흥업소 폐업 이끈 강북보건소 유해환경개선TF팀 임재업 팀장

등록 : 2017-06-08 16:24 수정 : 2017-06-0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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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단장을 하고 주인을 기다리는 불법 유흥업소 앞에 선 강북보건소 유해환경개선티에프팀. 맨 앞부터 임재업 팀장, 박준용, 심규만 주임. 뒤로 보이는 꼬치집과 커피숍도 얼마 전까지는 업소였다.
“결국 경찰까지 오고…. 업주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조사받고 있어요.” 강북구 삼양동 ‘빨간집’(일반 음식점에서 금지된 유흥접객 행위를 하는 업소)은 간판만 남긴 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1일 강북구 삼양동 거리에서 만난 강북보건소 보건위생과 유해환경개선티에프팀 임재업(55) 팀장의 표정이 어두웠다. 이틀 전(5월30일)에 업주의 폭력 행위로 입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탓이었다.

강북구에는 유독 ‘빨간집’이라고 하는 불법 유흥업소가 많았다. ‘앵두’ ‘붉은장미’…. 이름까지도 ‘야시시’한 업소들은 주민들에겐 원성의 대상이었다. 2014년 겨울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근절을 약속했다. 2015년 1월 강북보건소에 유해환경개선티에프팀이 구성되면서 임 팀장과 심규만(45) 주임, 박준용(38) 주임은 한 팀이 됐다.

일주일 두차례 새벽 4시까지 단속

“우리는 합법적으로 빨간집에 출근하는 사람들이에요.” 밤 10시에 시작하는 심야 단속이 일주일에 2회. 경찰과 교육지원청 직원이 함께하는 합동단속은 새벽 2시면 끝나지만 팀 단독 단속은 새벽 4시까지 이어진다.

낮에는 건물주와 업주를 만난다. 건물주에게 ‘임대 기간 연장을 하지 말아 달라’고 설득하고, 업주에게는 전업이나 전직을 권유한다. 건물주와 새로운 일을 두려워하는 업주들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해놓고 유흥 접객 행위를 하는 건 불법이다. 건강진단 결과서(보건증)가 없는 것도 불법이다. 단속은 접객 행위 현장을 포착하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 “그분들이 좀 세죠. 욕도 잘하고….” 현장을 발각당하면 “아는 사이다” “친척이다” 등으로 둘러댄다. 손님들도 “내 돈 내고 내가 마시는데 왜 당신들이 간섭이냐”고 따지고 든다. 술에 취한 상태라 욕설과 고성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폭력 사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어두워지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자기 시작됐어요, 뭐 어찌해 볼 시간도 없을 정도로….” 임 팀장은 무엇보다 팀원들을 걱정했다. ‘어렵게 시험 보고 들어선 공무원의 길. 칭찬받으며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보직도 많은데.’ 팀원을 바라보는 임 팀장의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얼굴에 침을 뱉더라고요.” 박 주임은 “이러려고 그 어려운 시험을 보고 공무원이 됐나…”라는 말로 그날의 절망적인 상황을 표현했다. “‘죽여버리겠다’며 멱살을 잡고 밀어붙이는데…참.” 심 주임은 힘으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만큼 덩치가 컸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공무원이니까. “자칫 시빗거리를 주면 안 되잖아요. 참아야지요.”

임용 6년 차인 박 주임은 공무원 생활의 절반가량을 단속 업무로 보냈다. 무엇보다 걱정은 4살짜리 아이에게 필요한 아빠 자리를 자주 비우게 되는 거다. 다행히 같은 공무원의 길을 걷는 아내의 이해와 격려가 큰 힘이 된다. 그래도 ‘언제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은 어쩔 수 없다는 게 박 주임의 솔직한 심정이다. 박 주임과 심 주임 모두 ‘혼술’하는 횟수가 늘었다고 한다. 당하는 어려움을 하소연할 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전업에 성공한 업주들의 인사가 가장 큰 보람

170개에 이르던 불법 유흥업소는 2년6개월 만에 59개소로 줄었다. 일주일 두 차례. 밤낮이 바뀌는 심야 단속으로 평범한 일상생활은 이미 포기했다. 업주와 건물주를 만나면서 겪는 스트레스를 푸는 혼술 횟수도 늘고 있다. 특히 50대 중반의 임 팀장은 체력의 한계를 하소연했다. 그렇다 해도 버틸 수 있는 건,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111개의 업소가 사라지는 동안 인근 자치구들도 유해업소 근절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앵두’며 ‘붉은장미’ 등 야시시한 간판이 사라지면서 밝아진 거리를 주민들도 반겼다. “아이와 함께 걷는 게 불편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아서 좋다. 애쓴다.” 지역 주민들의 격려는 피곤한 몸과 맘을 위로하는 ‘보약’이다.

“몸과 마음이 병들기 전에 진작 그만둘 걸 그랬다고 말해요.” 임 팀장은 전업한 업주들이 건네는 인사를 보람 중의 보람으로 꼽는다. 업주들의 평균 연령은 50대를 웃돈다. 비슷한 또래이기에 임 팀장은 업주들이 살아온 삶을 대충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분들이 좀 세죠. 산전수전 다 겪은 분들이잖아요.” 어느 가난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던 딸이었고, 누나였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성심으로 대했다. 강북구는 전직을 알선하고 전업을 위한 자금 융자까지 도왔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분들 가운데 신용불량자가 많아요. 정책자금 지원이 안 되는 거죠.” 임 팀장은 전업에 성공한 업주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들의 성공은 또 다른 업주들을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제 59개가 남았다. 2년6개월의 단속과 설득에도 간판불을 끄지 않고 있는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더 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오늘도 심야 단속이 있어요. 업주들이 단속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요일을 수시로 바꿔서 하거든요.” 아직 폭력 사태의 후유증을 안고 있는 세 사람의 발길은 무거워 보였지만 흔들리지도 않았다. “약속을 지켜야죠. 강북구에 빨간집은 없도록 하겠다는 게 강북구청의 약속입니다.” 세 사람은 오늘 밤에도 빨간집으로 출근한다.

글·사진 윤승일 기자 nagneyoon@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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