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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구 의류봉제산업연합회 이사로 활동 중인 모티브에스엠 채규준 대표.
동대문 강점은 하루 만에 생산
스마트 봉제 기기가 돌파구
돌파구 함께 열 청년 인력 절실
봉제산업은 기반산업의 일종 “디자인만 있다면 아침에 들어온 원단으로 그날 밤 완성된 옷을 도매시장에 내보낼 정도로 신속한 봉제가 가능합니다. 이게 동대문의 속도죠.” 동대문구 의류봉제산업연합회 이사로 활동 중인 봉제기업 모티브에스엠 채규준(59) 대표는 이달 5일 열린 ‘2025 동대문구 봄꽃 패션쇼’를 계기로 서울&과 만나 동대문 패션산업의 강점과 현실, 그리고 돌파구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채 대표가 활동 중인 연합회는 이 지역 의류봉제업체 단체 세 곳 중 하나다. 비 오는 날이라 특별했던 패션쇼 야외에서 열린 패션쇼 행사 당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동대문구에서는 처음 시도된 패션쇼였기에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갔다. 이미 종로구, 중랑구 등 다른 자치구에서는 수년째 패션쇼를 열고 있는 터다. “그런데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300명 넘는 관람객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모델들도 비를 맞으면서도 무대에 올랐고, 지역 봉제업체와 디자이너, 주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함께 만든 무대였죠.” 동대문 의류봉제업체들이 제작한 옷을 직접 입고 선보인 ‘로컬 패션쇼’라는 점에서 참석자들로부터 신선한 반응을 얻었다. “첫 행사라 준비가 빠듯했지만, 앞으로 바이어 초청을 확대하고 독립된 축제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하반기에는 장한평에서 열리는 동대문 페스티벌과 연계해 더 큰 무대를 고려 중입니다.”
채 대표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행사날 내린 비는 마치 의류봉제업체들이 처한 현실을 상징하는 듯했다. 이들은 현재 제조 공정 국외 이전에 따른 일감 감소, 인력 고령화, 청년 인력 유입 단절 등 구조적 위기에 놓여 있다. “동대문은 디자인, 샘플 제작, 생산, 납품까지 모든 공정이 한곳에서 이뤄집니다. 원단부터 부자재까지 취급하는 재래시장이 자리잡고 있어 빠른 속도로 처리 가능한데 오늘 디자인이 나오면 내일 샘플이 나오는 다품종 소량생산 기반인 ‘패스트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겁니다.” “복합지원센터, 지금은 작은 불씨지만” 봉제산업의 기반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더욱 취약해졌다. “동대문시장 상가 공실률이 엄청나요. 온라인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영향도 있고요. 미처 대비하지 못한 분들은 폐업하거나 휴업한 상태죠.” 이런 절박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동대문구(구청장 이필형)는 2024년 1월 ‘패션봉제복합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자동 재단기, 디지털 패턴 시스템, 웰팅기 등 총 26종 40대의 스마트 봉제 장비를 갖추고, 11명의 상주 인력이 봉제업체들의 공정을 전액 무료로 지원한다. “지원센터는 전국 어느 지역보다도 업체에 실질적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잘 운영돼 다른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합니다.” 채 대표의 말에 감사와 자부심이 함께 느껴졌다. 하지만 전체 1600여 개의 봉제업체 중 현재 지원센터 도움을 받는 곳은 250여 개에 불과하다. 업체는 업체대로 일감이 적은 소규모 업체가 많고 지원센터 규모에도 현실적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국외에서는 젊은 직원 한 명이 스마트 봉제 장비 여러 대를 동시에 운용합니다. 컴퓨터로 작동되는 장비다보니 평생 손작업에 익숙한 60~70대 기존 봉제 직원들이 이를 활용하기 어렵죠. 젊은 전문 인력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할 이유입니다.” “청년들이 돌아올 수 있게” 실제로 동대문 봉제업체 종사자의 최저 연령이 60대 후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령화는 심각한 문제다. 청년 인력 유입은 없다시피 하다. 디자인과 마케팅 등 일부 영역에는 젊은 인력이 들어오고 있지만, 봉제 분야는 여전히 ‘3D 업종’으로 인식돼 꺼리는 탓이다. “저임금에 작업 환경도 열악하니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요.” 그러나 채 대표는 스마트 봉제 기기 적극 활용이 돌파구라고 강조했다. “요즘 장비는 컴퓨터 기반이어서 손기술보다 운용 능력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젊은 인력이 시스템을 운용하고 소수의 숙련 기술자만 있으면 전체 생산 공정을 돌릴 수 있어요”라고 했다. 스마트 봉제 기기 운영 능력을 갖춘 청년층의 유입을 통해 저비용 고효율 구조를 자리잡게 만든다면 봉제산업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일감을 가져간 다른 국가들이 아직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 노동집약적으로 제조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해입니다. 한국보다 훨씬 앞서서 수년 전부터 스마트 봉제 기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저비용 고효율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그는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단발성 지원에 그치기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산업 육성 정책으로 전환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장기적인 정책에는 스마트 봉제 기기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공동 작업장 등 인프라, 스마트 장비 구입을 원하는 업체에 대한 저리 융자, 청년 인력 유입을 위한 실질적 지원 등도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채 대표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의식주’ 중 ‘의’가 첫 번째인 점을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 의류봉제업체들이 있었기에 한국산 KF94 마스크 생산이 가능했고 전 국민의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봉제산업이 무너지면 자재, 부자재, 유통 등 연관 산업까지 줄줄이 붕괴될 수 있기에 단순히 ‘옷’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기반의 문제입니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스마트 봉제 기기가 돌파구
돌파구 함께 열 청년 인력 절실
봉제산업은 기반산업의 일종 “디자인만 있다면 아침에 들어온 원단으로 그날 밤 완성된 옷을 도매시장에 내보낼 정도로 신속한 봉제가 가능합니다. 이게 동대문의 속도죠.” 동대문구 의류봉제산업연합회 이사로 활동 중인 봉제기업 모티브에스엠 채규준(59) 대표는 이달 5일 열린 ‘2025 동대문구 봄꽃 패션쇼’를 계기로 서울&과 만나 동대문 패션산업의 강점과 현실, 그리고 돌파구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채 대표가 활동 중인 연합회는 이 지역 의류봉제업체 단체 세 곳 중 하나다. 비 오는 날이라 특별했던 패션쇼 야외에서 열린 패션쇼 행사 당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동대문구에서는 처음 시도된 패션쇼였기에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갔다. 이미 종로구, 중랑구 등 다른 자치구에서는 수년째 패션쇼를 열고 있는 터다. “그런데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300명 넘는 관람객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모델들도 비를 맞으면서도 무대에 올랐고, 지역 봉제업체와 디자이너, 주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함께 만든 무대였죠.” 동대문 의류봉제업체들이 제작한 옷을 직접 입고 선보인 ‘로컬 패션쇼’라는 점에서 참석자들로부터 신선한 반응을 얻었다. “첫 행사라 준비가 빠듯했지만, 앞으로 바이어 초청을 확대하고 독립된 축제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하반기에는 장한평에서 열리는 동대문 페스티벌과 연계해 더 큰 무대를 고려 중입니다.”
채 대표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행사날 내린 비는 마치 의류봉제업체들이 처한 현실을 상징하는 듯했다. 이들은 현재 제조 공정 국외 이전에 따른 일감 감소, 인력 고령화, 청년 인력 유입 단절 등 구조적 위기에 놓여 있다. “동대문은 디자인, 샘플 제작, 생산, 납품까지 모든 공정이 한곳에서 이뤄집니다. 원단부터 부자재까지 취급하는 재래시장이 자리잡고 있어 빠른 속도로 처리 가능한데 오늘 디자인이 나오면 내일 샘플이 나오는 다품종 소량생산 기반인 ‘패스트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겁니다.” “복합지원센터, 지금은 작은 불씨지만” 봉제산업의 기반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더욱 취약해졌다. “동대문시장 상가 공실률이 엄청나요. 온라인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영향도 있고요. 미처 대비하지 못한 분들은 폐업하거나 휴업한 상태죠.” 이런 절박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동대문구(구청장 이필형)는 2024년 1월 ‘패션봉제복합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자동 재단기, 디지털 패턴 시스템, 웰팅기 등 총 26종 40대의 스마트 봉제 장비를 갖추고, 11명의 상주 인력이 봉제업체들의 공정을 전액 무료로 지원한다. “지원센터는 전국 어느 지역보다도 업체에 실질적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잘 운영돼 다른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합니다.” 채 대표의 말에 감사와 자부심이 함께 느껴졌다. 하지만 전체 1600여 개의 봉제업체 중 현재 지원센터 도움을 받는 곳은 250여 개에 불과하다. 업체는 업체대로 일감이 적은 소규모 업체가 많고 지원센터 규모에도 현실적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국외에서는 젊은 직원 한 명이 스마트 봉제 장비 여러 대를 동시에 운용합니다. 컴퓨터로 작동되는 장비다보니 평생 손작업에 익숙한 60~70대 기존 봉제 직원들이 이를 활용하기 어렵죠. 젊은 전문 인력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할 이유입니다.” “청년들이 돌아올 수 있게” 실제로 동대문 봉제업체 종사자의 최저 연령이 60대 후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령화는 심각한 문제다. 청년 인력 유입은 없다시피 하다. 디자인과 마케팅 등 일부 영역에는 젊은 인력이 들어오고 있지만, 봉제 분야는 여전히 ‘3D 업종’으로 인식돼 꺼리는 탓이다. “저임금에 작업 환경도 열악하니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요.” 그러나 채 대표는 스마트 봉제 기기 적극 활용이 돌파구라고 강조했다. “요즘 장비는 컴퓨터 기반이어서 손기술보다 운용 능력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젊은 인력이 시스템을 운용하고 소수의 숙련 기술자만 있으면 전체 생산 공정을 돌릴 수 있어요”라고 했다. 스마트 봉제 기기 운영 능력을 갖춘 청년층의 유입을 통해 저비용 고효율 구조를 자리잡게 만든다면 봉제산업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일감을 가져간 다른 국가들이 아직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 노동집약적으로 제조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해입니다. 한국보다 훨씬 앞서서 수년 전부터 스마트 봉제 기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저비용 고효율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그는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단발성 지원에 그치기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산업 육성 정책으로 전환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장기적인 정책에는 스마트 봉제 기기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공동 작업장 등 인프라, 스마트 장비 구입을 원하는 업체에 대한 저리 융자, 청년 인력 유입을 위한 실질적 지원 등도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채 대표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의식주’ 중 ‘의’가 첫 번째인 점을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 의류봉제업체들이 있었기에 한국산 KF94 마스크 생산이 가능했고 전 국민의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봉제산업이 무너지면 자재, 부자재, 유통 등 연관 산업까지 줄줄이 붕괴될 수 있기에 단순히 ‘옷’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기반의 문제입니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