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일주일에 두번 ‘빨간집’으로 출근합니다
111개 불법 유흥업소 폐업 이끈 강북보건소 유해환경개선TF팀 임재업 팀장
등록 : 2017-06-08 16:24 수정 : 2017-06-08 16:46
새 단장을 하고 주인을 기다리는 불법 유흥업소 앞에 선 강북보건소 유해환경개선티에프팀. 맨 앞부터 임재업 팀장, 박준용, 심규만 주임. 뒤로 보이는 꼬치집과 커피숍도 얼마 전까지는 업소였다.
“얼굴에 침을 뱉더라고요.” 박 주임은 “이러려고 그 어려운 시험을 보고 공무원이 됐나…”라는 말로 그날의 절망적인 상황을 표현했다. “‘죽여버리겠다’며 멱살을 잡고 밀어붙이는데…참.” 심 주임은 힘으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만큼 덩치가 컸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공무원이니까. “자칫 시빗거리를 주면 안 되잖아요. 참아야지요.” 임용 6년 차인 박 주임은 공무원 생활의 절반가량을 단속 업무로 보냈다. 무엇보다 걱정은 4살짜리 아이에게 필요한 아빠 자리를 자주 비우게 되는 거다. 다행히 같은 공무원의 길을 걷는 아내의 이해와 격려가 큰 힘이 된다. 그래도 ‘언제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은 어쩔 수 없다는 게 박 주임의 솔직한 심정이다. 박 주임과 심 주임 모두 ‘혼술’하는 횟수가 늘었다고 한다. 당하는 어려움을 하소연할 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전업에 성공한 업주들의 인사가 가장 큰 보람 170개에 이르던 불법 유흥업소는 2년6개월 만에 59개소로 줄었다. 일주일 두 차례. 밤낮이 바뀌는 심야 단속으로 평범한 일상생활은 이미 포기했다. 업주와 건물주를 만나면서 겪는 스트레스를 푸는 혼술 횟수도 늘고 있다. 특히 50대 중반의 임 팀장은 체력의 한계를 하소연했다. 그렇다 해도 버틸 수 있는 건,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111개의 업소가 사라지는 동안 인근 자치구들도 유해업소 근절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앵두’며 ‘붉은장미’ 등 야시시한 간판이 사라지면서 밝아진 거리를 주민들도 반겼다. “아이와 함께 걷는 게 불편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아서 좋다. 애쓴다.” 지역 주민들의 격려는 피곤한 몸과 맘을 위로하는 ‘보약’이다. “몸과 마음이 병들기 전에 진작 그만둘 걸 그랬다고 말해요.” 임 팀장은 전업한 업주들이 건네는 인사를 보람 중의 보람으로 꼽는다. 업주들의 평균 연령은 50대를 웃돈다. 비슷한 또래이기에 임 팀장은 업주들이 살아온 삶을 대충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분들이 좀 세죠. 산전수전 다 겪은 분들이잖아요.” 어느 가난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던 딸이었고, 누나였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성심으로 대했다. 강북구는 전직을 알선하고 전업을 위한 자금 융자까지 도왔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분들 가운데 신용불량자가 많아요. 정책자금 지원이 안 되는 거죠.” 임 팀장은 전업에 성공한 업주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들의 성공은 또 다른 업주들을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제 59개가 남았다. 2년6개월의 단속과 설득에도 간판불을 끄지 않고 있는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더 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오늘도 심야 단속이 있어요. 업주들이 단속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요일을 수시로 바꿔서 하거든요.” 아직 폭력 사태의 후유증을 안고 있는 세 사람의 발길은 무거워 보였지만 흔들리지도 않았다. “약속을 지켜야죠. 강북구에 빨간집은 없도록 하겠다는 게 강북구청의 약속입니다.” 세 사람은 오늘 밤에도 빨간집으로 출근한다. 글·사진 윤승일 기자 nagneyoon@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