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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만든 금천구 주민들 “힐링도 울림도 책 속에 담았어요”

3년째 이어온 동화책 만들기 ‘금천구 나래 북 팩토리’ 출간 기념회
‘우리가 꿈꾸는 미래’ 주제로 지역 주민 경험·상상력 담은 11권 출간

등록 : 2023-10-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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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독서에서 ‘참여하는 독서’로 독서의 폭 확장

금나래도서관에서 누구나 대출 가능

다문화 특성 살려 이중언어책도 출간

“주민 상상력, 행복한 사회 도움되길”

금천구는 6일 시흥동 금나래아트홀 갤러리에서 ‘나래 북 팩토리’ 출간 기념회를 열었다. ‘주민 작가’들이 자신이 쓴 동화책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너무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한 단어로 말한다면 ‘힐링’이라고 봐요.”

배한애씨가 쓴 <바늘나무꽃>은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는 아들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아들 태양이는 어릴 때부터 혈관 주사를 일주일에 세 번씩 맞아야 했지만, 다행히 좋은 약이 나와 이제 더는 아픈 주사를 자주 맞지 않아도 된다. 같은 질환을 앓는 아이 부모들은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던 약을 보험급여가 적용되도록 하는 데도 힘썼다.

“현실은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그런 내용을 어떻게 거부감 없이 아이들이 읽을 수 있게 할까 하는 고민을 작가님과 많이 했어요.” 배씨는 “기적처럼 인연이 닿아서 이렇게 책을 내게 됐다”며 “태양이를 치료한 의사와 간호사에게 책을 드렸더니 깜짝 놀라며 칭찬하더라”고 했다. 배씨는 “이제 태양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면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며 “하루 일상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금천구는 6일 시흥동 금나래아트홀 갤러리에서 ‘나래 북 팩토리' 출간 기념회를 열었다. 이날 참여 가족과 작가가 함께 소감을 나누고 성과를 공유했다. 나래 북 팩토리는 금나래도서관의 특화사업으로, 금천구 주민 가족들이 동화 작가의 도움을 받아 창작 그림책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2021년 시작해 올해로 3년째다.

해마다 새로운 주제를 선정해 매년 다양한 내용을 담은 그림책을 출간하고 있다. 2021년에는 ‘환경’을 주제로 그림책 9권을 출간했고, 2022년에는 ‘우리 가족’을 주제로 각 가족의 개성 있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11권을 출간했다. 올해는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주제로 참여 가족들이 생각하는 미래상, 꿈,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책 11권에 담았다.

김지연 동화 작가가 직접 콘티 기획, 소재 발굴과 그림책 이야기 작성, 원화 작업을 가르쳤다. 지난 5월1일부터 7월31일까지 매주 월요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15차례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고 한 차례 오프라인 모임을 했다. 김 작가는 주제 강연과 전문 지도로 ‘주민 작가’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을 그림책에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올해 출간한 동화책 11권 모습.

<다~ 너 잘되라고>(늘봄, 조승연)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고정관념을 깨고 여성 청소년들이 ‘나답게’ 살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내용을 담았다. 조씨는 “저희 때는 사회 분위기에 눌려 여성이 자신을 억압하는 세대였다”며 “요즘 여성 청소년들은 성별에 갇히지 않고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고 했다.

<줄줄이 육아>(임선명)는 공동육아를 하면서 겪은 경험을 담았다. “아이가 13개월 때부터 초등학교 3학년인 지금까지 공동육아를 하고 있어요. 여러 가정이 함께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입니다.” 지은이 임선명씨는 “사진을 한장 한장 보면서 그림을 그려 추억을 그대로 책으로 만들었다”며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이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내가 이 일을 왜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즐거웠던 일, 행복했던 일들이 새록새록 생각났어요.” 임씨는 공동육아에 함께 참여한 20여 가정에 책을 선물로 나눠줬다.

<아빠의 주말>(김봉화)은 스마트폰에만 빠져 있지 말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가족이 되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남편이 핸드폰만 보고 아이와 잘 놀아주지 않아 많이 싸웠죠.” 김봉화씨는 “남편에게 책을 보여줬더니 느낀 게 있는지 이번 추석 연휴 때는 가족이 함께 여러 곳에 놀러 다녔다”며 “책을 만든 보람과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타로 초보’ 차계영씨가 쓴 <바보의 여행 일기>는 타로점을 보고 흘러가는 과정을 나름대로 해석했다. “지난겨울에 타로에 푹 빠졌어요. 무슨 내용을 쓸까 고민하다가 바보가 여행을 떠나 시련도 겪고 좋은 일도 만나는 과정을 타로와 함께 표현했죠.” 차씨는 “카드 하나하나가 이미지와 의미를 담고 있다”며 “‘우리의 미래가 좀 더 즐거우면 좋겠다, 또 내일은 또 다른 여행을 떠나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틔움이의 상상여행>(이숙향)은 상상력 넘치고 호기심 많고 친구를 좋아하는 씨앗 ‘틔움’이가 떠나는 여행 이야기다. “동화책 주인공이 된 것 같아서 참 기분이 좋았어요.” 이숙향씨와 함께 온 딸은 “엄마가 책 만들 때 이건 어떠냐고 자꾸 물어봐서 좀 귀찮았지만 책을 보니 재밌고, 틔움이가 귀여워서 너무 좋았다”고 했다.

이 밖에 <뭐든지 텃밭>(권주리), <곰문>(송은영), <두근두근 놀이공원>(신민경), <마음 젤리>(김옥진), <내 마음속의 연기>(박수현) 등도 개개인이 겪은 ‘삶의 경험’에 상상력을 더해 재미와 울림을 준다.

엄마를 따라 출간 기념회에 온 어린이가 엄마가 쓴 동화책을 보고 있다.

2021년부터 강의와 책 만들기를 돕고 있는 김 작가는 “책을 만들면서 서로 공감하고 함께 많이 눈물짓기도 했다”며 “우리의 사소한 이야기지만, 지역 사회를 넘어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래 북 팩토리가 아주 작은 단위의 책 만들기지만, 거시적으로 많은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에서 주민들이 예술 창작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됐습니다.”

김 작가는 “다른 지역에서 이 프로그램 소개를 하면 모두 금천구로 이사 가고 싶다며 부러워한다”고 했다. <백년아이> <넘어> <호랑이 바람>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김 작가는 나래 북 팩토리를 진행하면서도 10월 초 신간 <달빛춤>을 출간하기도 했다.

나래 북 팩토리는 독서 방식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곽지수 금천구 금나래도서관 사서는 “읽기만 하던 기존의 독서 방식에서 점차 참여형 독서 활동으로 변하고 있다”며 “지역 주민들이 단순한 책 읽기를 넘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그림책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책과 더 친근한 관계를 맺고 독서의 폭을 확장할 기회를 만든다”고 평가했다.

“나래 북 팩토리는 단순한 독서 활동으로서의 책 만들기에 그치지 않죠. 책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글쓰기 능력과 예술적 경험, 가족 간 소통과 화합을 기대할 수 있어요.”

출간한 책은 금나래도서관에 장서와 전자책으로 등록돼 있어 누구나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 읽을 수 있다. 올해는 금천가족센터와 함께 금천구 내 인구 비중이 높은 베트남 이주민을 위해 베트남어로 번역해 한국어와 베트남어로 된 이중언어 그림책도 함께 출간했다.

이중언어 그림책은 금천가족센터와 관련 단체에 기증해 구민 가족이 직접 만든 그림책의 가치를 높이고 문화 다양성을 알리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곽 사서는 “이주 외국인이 많은 금천구 특성을 살리기 위해 금천가족센터에 문의했더니 흔쾌히 승낙해 진행하게 됐다”며 “한국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나래 북 팩토리 참여자들은 이렇게 출간한 책을 지역 사회를 위해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주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을 하면 좋겠어요.” “어린이집에서 그림책 만드는 과정을 알려주면 어떨까요.”

곽 사서는 “내년에는 어떻게 하면 한발 더 나아간 모습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며 “책 만들기를 통해 주민들의 소중한 상상력과 경험이 행복한 지역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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