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 학생 관람객 위한 ‘환경 개선’ 시급

배성호ㅣ서울송중초 교사 · 전국초등사회교과모임 공동대표

등록 : 2023-05-11 14:55

크게 작게

2012년 12월 강북구 번1동 수송초등학교 솔루션팀 동아리 회원들이 국립중앙박물관 운영에 관해 제안한 내용 을 보드판에 붙여 들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세계 박물관의 날을 기념하여 5월 내내 전국 박물관에서 다채로운 전시와 행사가 열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마찬가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 대표 문화유산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기획 전시를 통해 국내외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명소다. 학생들의 체험학습 장소로도 단연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 대표 박물관이라는 명성과는 거리가 먼 운영을 하고 있다. 박물관 공간을 잘 만드는 일과 최첨단 전시도 중요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관람객을 존중하지 못하고 학생들의 인권마저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5년 용산 이전 개관 뒤 비 오는 날 학생들이 후미진 계단 구석이나 어린이박물관 앞 공간 바닥에서 도시락을 먹는 진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이에 학생들과 교사들은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4년 동안 도시락 먹을 장소를 만들어달라고 박물관에 편지를 쓰고 포스터 등을 만들며 개선을 요구했다.

2013년 5월, 마침내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학생들의 제안에 응답하며 도시락 쉼터를 마련했다. 당시 박물관은 보도자료를 내어 학생 단체와 가족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도란도란 도시락 쉼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는 박물관이 관람객의 제안을 받아들여 함께하는 좋은 사례로 높게 평가되며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수록되고 실제 변화를 만든 학생들 이야기는 어린이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은 도란도란 도시락 쉼터를 지난해 11월 폐쇄했다. 코로나19로 사용을 임시 중단했던 것을 교육 공간 부족으로 아예 없앴다. 하지만 지난해 2학기부터 전국 학교의 현장 체험학습이 재개되면서 또다시 후미진 곳과 계단 등에서 학생들이 도시락을 먹는 일이 되풀이됐다. 이에 학생들을 비롯해 전국의 많은 선생님이 뜻을 모아 다시 편지 쓰기 캠페인을 펼쳤다. 10여 년 전 행동했던 제자들도 후배들과 함께했다.

편지 캠페인으로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미온적 태도였는데 박물관장이 직접 학생들 편지에 답장을 보내고 지난 3월 중순 도시락 먹을 장소를 다시 열었다. 박물관의 입장 변화는 환영하지만, 여러모로 아쉬움이 크다. 개방 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11~14시이고, 이용 인원도 60명 이내 학생 단체 관람객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는 단체 학생 수에 견줘 턱없이 모자랄 뿐만 아니라 시간과 대상에서 주말과 가족은 제외했다.

이런 운영은 기존 도시락 쉼터를 없애고 교육장을 임시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장소로 바꾸면서 생긴 한계다.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에 체험학습을 다녀온 선생님 중에는 아이들에게 부끄러웠고 박물관 쪽 운영이 아쉬웠다고 말한 이가 많았다. 학생 수가 많아 후미진 공간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했고 안내가 없어 정작 이곳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이와 같은 문제는 이미 10여 년 전 초등학생들이 편지에 제시했던 대안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당시 학생들은 국립중앙박물관 입점 식당이 외부 음식물 절대 반입금지 조항만을 앞세우며 비가 오거나 황사가 심할 때도 개방하지 않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른 박물관 사례를 비교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박물관 문화재단이 식당 입점과 운영 계획을 새롭게 모색할 것과 도시락 먹을 장소를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줄 것을 제안했다. 또한 박물관 운영위원회에 주 관람객인 학생과 교사가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을 넣었다.

우리나라 박물관 수준을 높여가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제는 바뀔 때가 됐다. 필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할 때 어린이 전시 시나리오 감수를 맡고 이후 박물관 교육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전시와 교육이 나날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기뻤지만 정작 주 관람객인 어린이, 청소년이 홀대받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안타까웠다. 학생들이 도시락 먹을 장소를 제대로 만들어달라는 요청은 단순히 식사 공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런 제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진정으로 우리나라와 세계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학생들과 현장 교사들의 당부와 애정이라는 점을 꼭 명심하길 바란다.

배성호ㅣ서울송중초 교사 · 전국초등사회교과모임 공동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