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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관장님의 ‘고기맛’ 나는 변신

돼지고기 1t 기탁한 독산3동 별빛남문시장 ‘친절한 정육’ 주인 신경호씨

등록 : 2023-03-0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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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호씨가 금천구 독산동 별빛남문시장에 있는 ‘친절한 정육’ 앞에서 밝게 웃고 있다. 이 정육점 주인인 신씨 는 지난 2월 취약계층에 전달해달라며 돼지 등심 1t을 독산3동 주민센터에 기탁했다.

태권도장 운영하다 5년 전 직업 바꿔

선배 도움으로 지난해 정육점 창업

잊지 않고 찾는 주민들 항상 고마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선뜻 기탁

“금천구에서 일도 배우고 터도 잡고, 금천구민 덕분에 먹고살고 있습니다. 동 주민센터에서 도움을 줄 수 없냐고 묻길래 좋다고 했죠.”

금천구 독산3동 별빛남문시장에서 정육점 ‘친절한 정육’을 운영하는 신경호(41)씨는 지난 2월9일 독산3동 주민센터에 돼지고기 1t을 선뜻 기탁했다. 모두 등심 부위로, 돼지 100마리에서 나오는 분량이다. 소비자 판매가로 따지면 1천만원어치가량 된다. 신씨가 기탁한 돼지고기는 금천구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보육원, 무료급식소 등에 전달됐다. 신씨는 3일 “개업한 지 1년도 안 됐지만 단골도 생기고 주민들도 많이 찾아온다”며 “늘 고마운 분들에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고 했다.

신씨는 10년 정도 태권도장을 운영하다 지난해 6월 친절한 정육을 창업했다. “직업 전환을 했죠.” 태권도 4단인 신씨는 2011년 선배 권혁태씨가 관장으로 있던 성북구 월곡동 태권도장에서 사범으로 일하다 그해 마포구에서 태권도장을 열었다. 자신의 도장을 운영한 지 3년째 되던 2014년, 친형의 권유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동에 새로운 태권도장을 열었다. “형도 태권도장을 운영하던 터라 둘이 합쳐 크게 한번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두 사람은 따로 하던 태권도장을 정리하고 200평 가까이 되는 규모가 큰 태권도장을 시작했다. 신씨는 관원은 많았지만 저출산으로 태권도장의 미래가 걱정됐다. “이대로 나이를 먹으면 몸이 따라주지 않아 태권도를 가르칠 수 없을 것 같았죠.” 그래서 신씨는 형과 상의한 뒤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어떤 쪽으로 직업을 전환하면 좋을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주위에 함께 얘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 답답했다. 마침 태권도장에서 만났던 선배 권씨가 직업 전환을 한 뒤 2017년 금천구 시흥동 현대시장에서 정육점을 개업했다. “상당히 가능성이 있겠다 싶더라구요.” 신씨는 선배가 개업할 때부터 정육점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기술을 배우고 자금을 마련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신씨가 직업을 바꿔 정육점을 개업하기까지 꼬박 5년이 걸렸다.

친절한 정육은 선배 권씨가 운영하는 정육점 상호다. 고맙게도 상호를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권씨의 허락을 받았다.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고 선배 정육점에서 일을 배웠더니 같은 시스템으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덕분에 아주 편하게 개업했죠.” 친절한 정육은 체인점 ‘냄새’가 나는 상호지만 체인점은 아니다.

신씨는 이런 권씨가 “인생의 멘토”라고 했다. 신씨는 권씨가 경기도 하남시에서 태권도장을 할 때도 사범으로 함께 일했다. 당시 권 관장을 따라 연탄 배달, 도배 등 봉사활동도 자주 했다. “선배가 자주 ‘봉사활동 한 번 하자’고 말하죠. 그러면 두말없이 따라나섰습니다.” 신씨는 이때부터 틈틈이 봉사활동을 해왔다.

신경호씨가 돼지고기 해체 작업을 하고 있다.

신씨는 최근 기탁한 돼지고기 1t 외에도 지난해 9월부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돼지고기 6㎏을 매달 후원한다. “1근씩 10명에게 나눠줘요.” 이처럼 이웃에 대한 나눔을 실천하는 친절한 정육은 ‘나눔가게’로 지정됐다. 신씨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남을 배려하고 생각하며 살아라’라는 얘기를 자주 듣고 자랐다. “부모님 영향도 있는 듯합니다.” 신씨는 “부모님이나 주위 상인들이 돼지고기 기탁 사실을 알고 잘했다고 칭찬하더라”며 “후원할 당시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주변에서 좋은 일 한다고 하니 뿌듯하다”고 했다.

별빛남문시장 안쪽 모퉁이에 있는 친절한 정육은 진열대 안에 상품이 반듯하게 진열돼 있어 깨끗해 보였다. “선배한테서 깨끗하고 밝은 느낌을 줘야 한다고 배웠어요. 고기 색깔도 좋고 깔끔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기합니다.” 신씨는 “여기저기 가게를 알아보러 다닐 때 정육점이 깨끗하지 않은 느낌을 많이 받아서 나는 다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위생과 품질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쓴다”고 했다.

신씨는 새벽 5~7시에 일을 시작해 저녁 9시에 마친다. 직원과 함께 몸뚱이째 들어온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해체해 손질과 포장까지 한다. 개업할 때부터 세 명이 일하다 최근 한 명이 그만둬 힘들다고 했다. “쉬운 일이 없겠지만, 사람 상대해야 하고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니 힘들죠.” 신씨는 “직원은 근무시간을 오전 오후 편한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며 “직원이 빨리 구해지면 좋겠다”고 바랐다.

“직업을 바꾼 걸 후회하지 않아요. 아직 오픈한 지 1년도 채 안 돼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죠.” 친절한 정육은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주위 식당에도 납품한다. 올해부터 직접 개발한 소스를 활용해 만든 ‘양념육’도 판매해 단골손님을 늘려갈 계획이다. “앞으로 3년 정도 자리잡는 기간으로 생각합니다. 올해는 착실하게 내실을 다져야겠죠.” 신씨는 “올해는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다”며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기부를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글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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