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고시촌에서 레드카펫 주인공이 돼보세요

325편 응모한 관악구 주최 제2회 고시촌단편영화제 허경진 집행위원장

등록 : 2016-10-1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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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젊음에 말을 거는 ‘고시촌단편영화제’가 열린다, 올해로 두 번째다. 영화제 기획을 맡은 허경진 집행위원장이 개막식 날 누구라도 레드 카펫 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코스프레 행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는 11월4~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인근 ‘고시촌’(대학동·서림동 일대)에서는 영화 축제마당이 펼쳐진다. 관악구가 주최하는 제2회 고시촌단편영화제다.

옛 행정지명과 함께 흔히 ‘신림동 고시촌'으로 알려져온 이곳은 ‘고시생들의 메카'였다. 고시생이 많았을 때는 8만~10만 명이 북적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등장하고, 사법시험 합격 정원이 축소되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육법전서나 어울릴 법한 고시촌에서 뜬금없이 영화제라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고시촌단편영화제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허경진(53)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영화제의 시작이 궁금하다.

“4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시촌 공동화를 문화 차원에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관악구와 함께 ‘고시촌 스토리텔링 작가하우스'를 시작했다. 구청의 지원 아래 작가들에게 안정적인 생활공간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영화, 연극,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영역의 작가 10여 명이 고시촌에 입주해 있는데, 지역을 활성화하고 주민들의 문화역량을 높이는 데 기여할 방안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영화제를 시작했다.”


-하필이면 왜 ‘비(B)급 영화제’를 자처하나?

“일종의 틈새시장 전략이다. 주류가 아닌, 대안을 모색하자는 뜻도 있고. 따지고보면 고시촌은 책과 노트 몇 권, 볼펜 몇 자루로 고시라는 관문을 통해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관문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이들의 인생 역시 ‘비급'이 아닐까?”

-지난해 주제는 ‘나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였는데.

“고시촌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주제가 ‘시험'이라 생각했다. 첫해인데도 100편이 넘는 작품들이 몰렸다. 고시촌영화제를 마이너 영화들이 세상과 만나는 통로라고 인정해준 것 같다.”

1회 대상 작품인 이승주 감독의 <죽부인의 뜨거운 밤>은 독창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뜨거운 어느 여름날, 혼자 사는 총각 소설가 ‘성재'가 집 앞에 놓인 죽부인을 우연히 발견한 뒤 벌어지는 일들을 다뤘다. 코미디와 멜로, 호러, 에로 등이 30분이 채 되지 않는 영화 속에 잘 섞였다는 호평을 받았고, 다른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 주제는?

“‘아 유 오케이?'(Are You OK?)다.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살기 힘든 세상인데, 어려울수록 관심 어린 시선이 필요한 것 아니겠나. 그래서 ‘괜찮지?’ 하고 물어봐주자는 취지로 정했다.”

-영화제는 어떻게 진행되나?

“지난해의 3배 이상인 325편이 응모됐다. 30분에서 35분을 넘지 않는 단편작들이다. 짧은 것은 2~3분짜리도 있다. 10명의 심사위원이 이 가운데서 본선 진출작으로 고른 20~25편을 상영할 계획이다. 고시촌 어귀에 있는 관악청소년회관 소극장이 주상영관이고, 고시촌 학원 강의실과 카페 등도 상영 공간이 된다. 본선 진출작 중에서 대상 500만 원을 비롯해 모두 9개 작품에 1400여 만 원의 상금과 상품을 준다.”

- 어떤 작품에 주목하는가?

“심사위원회가 크게 3가지 기준을 정했다. 뚜렷하게 자기 색깔이 있는 영화, 거칠어도 똘기(에너지)가 넘치는 영화, 청년 문제를 주제로 표현한 영화다. 물론 웰메이드 영화를 거부한다는 건 결코 아니다.”

- 지난해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경쟁 부문은 아니지만, 아시아 섹션이라는 이름의 비경쟁 부문에서 외국 작품들을 상영한다. 대만 롄젠훙 감독의 <가랑비>(毛毛雨) 등이다. 또 이들 아시아 감독과 청년 문제 등을 주제로 한 포럼도 개최할 예정이다. 포럼 주제는 ‘헬로 아시아, 아 유 오케이!’(Hello Asia, Are You OK?)다.”

- 규모가 커진 셈인데.

“올해 외국 작품을 경쟁 부문에 참여시키지 못해 아쉬움이 있다. 내년부터는 외국 작품 상영이 크게 늘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꿈꾸는 모델은 (미국의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니까. 하하.”

-시민들은 어떻게 즐기면 되나?

“고시촌 곳곳에 프로그램북을 비치할 예정이다. 맘에 드는 영화를 골라 공짜로 편하게…. 관악청소년회관에서 열리는 개막식(11월4일 저녁 7시)에 조금 일찍 오면 ‘레드 카펫’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레드 카펫이라니?

“레드 카펫을 깔아놓고 ‘영화 주인공 코스프레 사진전'을 개최한다. 누구든 영화 주인공처럼 레드 카펫을 밟고, 그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사진전을 연다. 재밌는 사진에 상도 준다. 상상해보라, 송강호나 마릴린 먼로가 되는 자신의 모습을.”

허 위원장은 젊은 시절부터 시나리오 집필, 각색 등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일들을 했다. 2011년 예비 사회적기업인 ‘사람과 이야기'를 설립했고, 고시촌 스토리텔링 작가하우스의 운영자가 되면서 고시촌과 인연이 깊어졌다고 한다. 그는 “이젠 꼼짝없는 영화제 기획자가 됐다”며 고시촌단편영화제에 애정을 표시했다.

글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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