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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리로 육아·일 두 마리 토끼 잡아요”

제약회사 그만두고 집수리 회사 창업한 권나영 세컨라이프 대표

등록 : 2022-12-2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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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나영 세컨라이프 대표가 14일 영등포청년건축학교 실습장에서 전동 드릴을 손에 들고 밝게 웃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집수리에 관심 많아 창업 결심

5월 영등포청년건축학교 수료

수리 후 좋아하는 모습에 뿌듯

“신뢰할 수 있는 회사 만들게요”

“원래 집수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5년 뒤에 창업하자고 마음먹었는데, 조금 일찍 했죠.”

권나영(38) 세컨라이프 대표는 영등포청년건축학교를 수료하고 지난 7월 자본금 1천만원으로 집수리 전문 회사를 창업했다. 권 대표는 창업하기 전 코로나19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외국계 제약회사 화이자 등에서 12년 동안 마케팅을 담당했다. 관리자여서 일도 많고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도 컸다. 그래서 지난해 9월 육아휴직을 끝내고 퇴사를 결심했다. 권 대표는 14일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무엇보다 40대에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권 대표는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영등포청년건축학교에서 집수리 인테리어 정규반 수업을 들었다. 도배, 장판, 타일, 전기, 배관, 미장, 욕조·변기 수리 등 집수리 전반에 대해 배웠다. 석 달 동안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집수리를 배우는 데 전념했다. 한 달 반 동안 영등포구 내 주거 취약계층 12가구를 찾아 집수리 봉사 겸 실습도 마쳤다.


5월 말 영등포청년건축학교 수업이 끝나갈 무렵 강서구에 사는 지인한테서 집수리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지인이 급하게 에스오에스(SOS)를 보냈어요. 곰팡이가 심하다며 도배, 장판을 해달라더라고요.” 권 대표는 첫 집수리 의뢰를 받아 동기 5명과 함께 이틀 동안 18평 빌라를 수리했다. 내부 단열, 살균, 곰팡이 제거 작업이 많았다. “곰팡이가 많아 번거롭고 시간은 많이 드는 데 비해 돈은 안 되는 일이었죠. 일반 업체는 잘 안 하려고 해요.” 배우는 과정이라 최소 금액만 받았더니 인건비와 자재비를 빼고 남는 게 없었다. 하지만 첫 의뢰인 만큼 최선을 다해 일을 마무리했다. 권 대표는 “지인한테서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11월까지 3천만원 정도 매출을 올렸어요. 영등포청년건축학교로 문의가 오면 저희를 추천해주기도 하죠.” 권 대표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30건 넘는 집수리 공사를 했다. 8~9월에는 수해 피해 가구의 도배와 장판 등 집수리를 했다. 지난 10월 말과 11월 초에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센터 건물 수리도 맡았다. 일거리가 생기면 영등포청년건축학교를 나온 각 분야 전문가들이나 학생들도 추천받아 함께 일한다. 1인 기업이지만 뭉쳤다 흩어지는 ‘아메바 조직’인 셈이다.

“지금은 큰 수익을 내기보다는 투자하면서 경험을 쌓는 기간이라고 생각해요.” 권 대표는 의뢰가 들어오면 직접 해결하기 힘든 분야는 업계 전문가의 컨설팅을 다시 받는다. 한 번은 수도 배관이 없는 곳에 싱크대를 설치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벽을 뚫어 배관을 연결해야 하는데 경험이 부족한 권 대표는 조심스러웠다. 우선 영등포청년건축학교에 도움을 요청해 컨설팅을 받은 뒤 설비 전문가를 섭외해 배관을 연결하고 싱크대를 설치했다. “하기 힘든 부분은 제외하거나 영등포청년건축학교에 연락해 선배 등 전문가를 섭외합니다.” 권 대표는 영등포청년건축학교는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권 대표의 손등에는 칼에 베인 상처가 있다. “도배하다 커트칼에 베였죠. 훈장처럼 생각해요.” 권 대표는 “무슨 일이든 급하게 하면 다치기 쉽다”며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꼼꼼하게 천천히 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런 권 대표를 보는 가족들의 시선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가족들도 갑자기 왜 그런 험한 일을 하냐며 이해할 수 없다고 해요. 하지만 잘되길 바라죠.” 권 대표는 “허름하거나 불편했던 집을 수리하면 삶의 질이 좋아진다”며 “그분들이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성취감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권 대표는 하자가 발생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지난여름 폭우 때 수해로 3일 동안 물이 찼던 가구를 일반 가구처럼 수리했다가 다시 수리한 일이 있었다. 당시 집주인이 집에 없어 전후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잠시 물이 찼던 것으로 생각했죠. 3일 정도 물이 찼으면 적어도 한 달 정도 물을 말리고 수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경험의 차이겠죠.” 권 대표는 “최선을 다했지만 예상 못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당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집수리 업계의 미래가 마냥 밝은 것은 아니죠. 집수리 업체도 많아 블루오션도 아니에요.” 하지만 권 대표는 작은 집수리 의뢰를 꾸준히 잘 진행하면서 평판을 쌓아나가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첫 1~2년은 성장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해요. 3년차부터는 실적을 내야겠죠.” 권 대표는 “정상 궤도에 올라서려면 최소 3년 정도 걸릴 것 같다”며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작은 일이라도 최대한 많이 하려 한다”고 했다.

“새롭게 바뀐 집을 보면 나 자신이 뿌듯해요.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권 대표는 “집수리 분야에서 신뢰할 수 있는 업체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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