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서울 성북구 주민들을 위한 마을방송 ‘와보숑’ 운영진이 ‘함께살이성북 사회적협동조합’의 3차 조합 총회를 취재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성북구 마을방송 ‘와보숑’ 마을뉴스가 올해로 벌써 61회에 접어들었다. 3년 남짓 와보숑을 시청한 주민들이 인상 깊었던 뉴스로 꼽는 것 중 하나는 6회에서 아기를 안고 뉴스를 진행한 엄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기의 특성때문에 촬영이 중단된 것이 여러 차례. 아기가 집중할 만한 물건들을 손에 쥐여주고 안아주며 어렵게 촬영했지만 아기의 출연은 마을뉴스에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15회 중증장애인 ‘율만씨의 수능 도전기’는 한 편의 감동적인 휴먼다큐였다. 불편한 몸 때문에 누워서 시험을 치른 김율만씨는 시험을 치르느라 거의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그는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도 하기 어려운 대입 공부를 했다. 대학에 진학해서 중증장애인의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25회 가정의 달 특집으로 ‘그리운 그 이름, 엄마’ 편을 제작했다. 60대 이상 어르신들이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자신들의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담았다. 어르신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 다소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살아생전 엄마에게 마음만큼 잘해드리지 못한 걸 가슴 아파했다.
이 뉴스는 특히 마을 어르신들에게 공감을 많이 받았다. 이밖에도 그동안 와보숑에서는 복지관에서 포켓볼로 여가활동을 하는 어르신,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하는 어르신 등 다양한 어르신들의 일상도 카메라에 담았다.
성북마을방송 와보숑은 명색이 방송국이지만 마땅한 사무실이 없다. 물론 방송장비도 거의 없다. 블루스크린은 파란색 색상지로, 반사판은 은박 돗자리로, 프롬프터는 A4용지로 대신한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은 마을방송. 그러나 마을 현장 곳곳을 누비는 와보숑은 단연 ‘가성비’가 월등한 지역밀착형 방송이다.
2012년 영화 한 편 만들어보고 싶어서 미디어교육을 받았던 주민들이 겁도 없이 다음해 덜컥 ‘성북마을방송 와보숑’을 만들었다. 첫 방송으로 성북지역 마을뉴스를 제작하기로 했다. 취재와 촬영, 편집은 어설프게 배운 실력으로 제작비를 메울 수 있었다. 하지만 앵커 인건비를 마련할 수 없었다. 고심 끝에 나온 ‘모든 주민은 앵커다’란 슬로건 덕분에 마을 주민들이 뉴스의 주인공이 되었다.
“제 어릴 적 꿈이 아나운서나 성우였어요. 마을방송 덕분에 잠시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어서 좋네요.” 와보숑 뉴스 17회 주민앵커였던 김은화씨의 말이다. 어릴 적 꿈을 잠시나마 실현해보고 싶거나 방송에 관심 있는 주민들에게 와보숑 뉴스 앵커는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어린이부터 중고생, 청년, 시니어, 장애인, 전직 아나운서에 이르기까지 마을뉴스 앵커는 주민들의 몫이었다. 마을 곳곳을 취재하다 보면 재미난 에피소드가 생겨난다. “‘여러분의 새해 결심을 지켜드립니다’라는 콘셉트로 마을의 신협, 어린이집, 봉제공장 등을 돌며 주민들의 새해 다짐에 대해 취재했어요. 어느 미혼여성 출연자가 새해에는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한 방송을 본 20대 청년이 와보숑을 통해 소개를 요청했어요. 아쉽게도 그 여자분은 지나친 동안이어서 청년이 무척 아쉬워했지요.” 와보숑 운영자인 이경숙씨가 전하는 말이다. 와보숑이 마을을 누비면서 수백명의 주민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고 소통하려 노력한 덕분에 주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와보숑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경숙씨는 앞으로가 고민이라고 한다.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은 와보숑을 창립하고 성장하는 데 촉진제 역할을 해줬어요. 하지만 마을미디어에 대한 지원을 무한정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을뉴스를 몇년 뒤에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돼요.” 북미와 유럽 공동체방송처럼 정부의 지원정책이 제도화되지 못한 현시점에서 와보숑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무얼까? 그 해결책으로 2015년 5월 ‘미디어협동조합 와보숑’을 설립했지만 외주 영상제작의 수익사업만으로 자립 방안을 모색하기에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경숙씨는 현재의 어려운 여건에도 주민들이 마을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쌓고 성장하리라 믿는다. “나를 키운 것은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었다고 말한 빌 게이츠처럼 ‘우리를 키운 건 8할이 마을미디어’가 아닐까요? 앞으로도 주민들의 방송인 와보숑을 통해 주민들 간의 공감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따뜻한 마을을 만들수 있을 거예요.” 김해경 ‘성북마을방송 와보숑’ 주민기자 성북마을방송 ‘와보숑 뉴스’는 블로그(www.sb-wabs.net) 또는 페이스북(www.facebook.com/wabosyongtv), 유튜브(www.youtube.com/user/wabosyongtv)에 접속해 검색창에서 ‘와보숑’을 입력하면 볼 수 있다.
“제 어릴 적 꿈이 아나운서나 성우였어요. 마을방송 덕분에 잠시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어서 좋네요.” 와보숑 뉴스 17회 주민앵커였던 김은화씨의 말이다. 어릴 적 꿈을 잠시나마 실현해보고 싶거나 방송에 관심 있는 주민들에게 와보숑 뉴스 앵커는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어린이부터 중고생, 청년, 시니어, 장애인, 전직 아나운서에 이르기까지 마을뉴스 앵커는 주민들의 몫이었다. 마을 곳곳을 취재하다 보면 재미난 에피소드가 생겨난다. “‘여러분의 새해 결심을 지켜드립니다’라는 콘셉트로 마을의 신협, 어린이집, 봉제공장 등을 돌며 주민들의 새해 다짐에 대해 취재했어요. 어느 미혼여성 출연자가 새해에는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한 방송을 본 20대 청년이 와보숑을 통해 소개를 요청했어요. 아쉽게도 그 여자분은 지나친 동안이어서 청년이 무척 아쉬워했지요.” 와보숑 운영자인 이경숙씨가 전하는 말이다. 와보숑이 마을을 누비면서 수백명의 주민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고 소통하려 노력한 덕분에 주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와보숑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경숙씨는 앞으로가 고민이라고 한다.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은 와보숑을 창립하고 성장하는 데 촉진제 역할을 해줬어요. 하지만 마을미디어에 대한 지원을 무한정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을뉴스를 몇년 뒤에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돼요.” 북미와 유럽 공동체방송처럼 정부의 지원정책이 제도화되지 못한 현시점에서 와보숑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무얼까? 그 해결책으로 2015년 5월 ‘미디어협동조합 와보숑’을 설립했지만 외주 영상제작의 수익사업만으로 자립 방안을 모색하기에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경숙씨는 현재의 어려운 여건에도 주민들이 마을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쌓고 성장하리라 믿는다. “나를 키운 것은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었다고 말한 빌 게이츠처럼 ‘우리를 키운 건 8할이 마을미디어’가 아닐까요? 앞으로도 주민들의 방송인 와보숑을 통해 주민들 간의 공감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따뜻한 마을을 만들수 있을 거예요.” 김해경 ‘성북마을방송 와보숑’ 주민기자 성북마을방송 ‘와보숑 뉴스’는 블로그(www.sb-wabs.net) 또는 페이스북(www.facebook.com/wabosyongtv), 유튜브(www.youtube.com/user/wabosyongtv)에 접속해 검색창에서 ‘와보숑’을 입력하면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