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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의 덫, 혼자 고민 마세요

눈물그만 상담센터 40% 대부 민원, 서울시 4만3000여 건 피해 구제

등록 : 2016-09-29 15:36 수정 : 2016-09-2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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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한 달 전에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중랑구 면목동에서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는 강 아무개(47) 씨는 가게 문을 열면서도 불안하지 않게 된 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강 씨는 지금도 사채의 덫에서 빠져나온 자신의 처지가 믿기지 않는 듯했다.

강 씨를 사채의 덫에서 구해낸 건 용기였다. 강 씨는 사채업자의 공갈과 협박을 뒤로하고, 지난 8월 말 서울시가 운영하는 ‘불법 대부업 피해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불과 한 달 뒤, 채무자 강 씨는 사채업자에게 더 낸 돈을 돌려받아야 하는 처지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 사채를 쓴 게 지난 3월이에요. 갑작스럽게 장사가 잘 안되면서 아르바이트 급여조차 줄 수 없게 된 탓에 500만 원을 빌린 게 시작이었지요.” 사채업자는 수수료, 교통비 등의 명목으로 35만 원을 공제하고 강 씨에게는 465만 원만 건넸다. 날마다 10만 원씩 두 달 동안 갚으면 된다는 일수대출이었다. 장사는 나아지지 않았고 중도에 일수를 갚지 못하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강 씨는 사채를 갚기 위해 또 다른 사채를 써야만 했다. 그러기를 일곱 차례. 처음 빌린 465만 원은 6개월 만에 강 씨를 4300만 원이나 되는 빚더미에 앉게 했다.

햇살론, 미소금융 등 정부가 홍보하는 서민을 위한 대출을 해 준다는 금융기관 문도 수차례 두드렸다. 그러나 안정적인 수입을 증명할 길 없는 자영업자에게 정부가 지원한다는 서민 대출은 그림의 떡이었다. 여러 기관을 돌며 파산과 회생 등 각종 구제 방법도 찾아봤지만 허사였다.

암담한 처지에서 서울시가 운영하는 ‘눈물그만 상담센터’를 알게 됐고, 강 씨는 문을 두드렸다. 이러다가 공연히 사채업자에게 테러나 당하는 건 아닌지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지만, 강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처지였다. 강 씨의 사례를 접수한 센터는 강 씨의 부채 내용을 먼저 파악했다.

강 씨가 받은 명목상의 사채 원금은 3600만 원. 그러나 선이자와 수수료 등 공제 금액을 빼면 실제로 받은 돈이 2290만 원이다. 사채업자가 말한 채무액 4300만 원은 연 534%의 이자율이 적용된 결과였다. 법정 최고이자율을 적용하면 강 씨가 그동안 갚은 2800만 원은 오히려 480만 원을 더 낸 것이었다.

서울시는 강 씨를 대신해 이 사실을 사채업자들에게 통보했다. 그리고 지난 5일 강 씨는 190만 원을 사채업자에게 돌려받았다. 강 씨를 괴롭히던 빚 4건도 모두 청산됐음은 물론이다. 여전히 더 낸 돈을 돌려주지 않는 한 사채업자에 대해서는 서울시가 마련해 준 고소장을 접수시켰다. 그제야 사채업자는 강 씨에게 돌려줘야 할 금액과 조건을 제시하며 합의를 요청했다. 시와 자치구를 비롯한 공공부문이 사채 등의 불법 대부업 피해 구제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불법 대부업자들이 이러저러한 함정을 파고 거둬들이는 높은 이자가 서민의 삶을 파탄 내기 때문이다.

서울시 전체 가구의 48.4%가 빚을 안고 있다고 한다(2016년 서울서베이 도시정책지표조사). 가구당 평균 빚도 2015년 기준으로 9366만 원(서울연구원, 2016 서울경제)으로, 2014년에 8924만 원보다 5%나 늘었다. 부채 원인으로는 주택 구입과 임차 등 주거 관련이 66%로 가장 높고, 다음으로는 교육비(12.1%) 순이다. 높은 부채율과 금액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많은 시민이 강 씨처럼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없어 이자율이 높은 미등록 사금융을 이용한다는 데 있다.


지난해 6월 한국갤럽이 시민 5026명에게 조사한 결과, 미등록 사금융 이용 추정액은 전국 기준으로 10조5000억 원 규모다. 이 가운데 36.5%를 수도권 시민이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캐피털을 비롯한 등록 대부업체의 법정 최고이자율은 대부업법에 따라 연 27.9%이며, 미등록 사금융 즉 사채의 최고이자율은 이자제한법에 따라 연 25%를 넘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러나 현실의 사금융 평균이자율은 법정 최고이자율의 3배가 넘는 연 114.6%에 이른다.

서울시가 서민의 삶을 돕기 위해 2012년 문을 연 ‘눈물그만 상담센터’는 서울시 전역에 19개 소의 상담소와 온라인 누리집(economy.seoul.go.kr/tearstop)에서 대부업과 임금 체불, 취업 사기 등 총 민생 침해 10개 분야에 대해 상담과 구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2014년부터 지난 7월까지 접수한 민원은 총 15만3000여 건. 대부업 관련 상담이 전체의 40%인 6만1000여 건으로 가장 높다. 이 가운데 4만3000여 건이 강 씨의 경우처럼 피해 구제를 받았다. 지난 7월에는 불법 사금융 피해에 대해 전문적으로 상담과 사후관리가 가능한 ‘불법 대부업 피해상담센터’도 개소했다.

‘눈물그만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려면 다산콜센터(02-120), 혹은 누리집에 접속해 ‘대부업 피해 상담’ 메뉴를 선택하면 된다. 답변은 3일 안에 들을 수 있다.

김정엽 기자 pkjy@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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