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볼만한 전시&공연

캔버스를 입체 공간으로 바꾼 ‘고령토 화가’의 60년 작품세계 조명한 ‘정상화’전

정상화(~9월26일)

등록 : 2021-06-0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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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한 노인네이자 작가예요. 나 살고 싶은 대로 살아왔는데 뭐가 대단해요?”

이우환, 박서보와 함께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정상화 화백이 자신의 이름을 딴 전시를 앞두고 한 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정 화백이 걸어온 길을 재조명하는 ‘정상화’전이 9월26일까지 열린다. 구순의 작가가 걸어온 60여 년 화업을 되돌아보는 ‘정상화’전은 작가의 20대가 담긴 1953년 <자화상>에서 시작해 2000년대 300호 대형 추상회화에 이르기까지 100여 점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관에는 큰 작품이 가득해, 몇몇 작품은 시야에 모두 담으려면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감상해야 한다.

대부분 전시장에 들어설 때 작가와 관련한 영상물을 작품만큼 집중해서 보진 않지만 이번 전시는 조금 특별하다. 모두 합쳐 20분은 족히 이어지는 정 화백의 인터뷰 영상 앞에서 젊은 관람객이 한동안 발을 떼지 못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아마도 글머리에서 언급한 그의 말 때문인 듯하다. ‘그저 평범할 뿐’이라는 작가의 겸손과는 달리 전시관은 온통 지난한 노동을 집약한 작업 과정이 낳은 예술로 채워져 있기 때문일 테다.

정 화백은 고령토를 반죽해 캔버스 위에 바르고 또 바른 뒤 다시 주름 잡듯이 접어 균열을 낸다. 이 ‘뜯고 메우는’ 작업을 길게는 1년 동안 여러 차례 반복했다. 캔버스 너머를 찾기 위해 조형된 면과 공간에서 작가 자신이 설득되면 비로소 이 단조롭고 수고스러운 반복을 그만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선 이런 단색조 추상 작품과 캔버스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표면을 긁어 베끼는 프로타주 기법으로 선보인 작품을 비롯해 전후 1세대 청년작가로서 시대적 상실과 불안을 반영한 초기 표현주의적 작품까지 망라했다. 일본 고베에서도, 프랑스 파리에서도 매일매일 그리고 그려왔다는 작가는 지금까지 작업을 돕는 조수도 둔 적이 없었단다.

이번 전시를 통해 빠른 속도와 가성비가 미덕인 시대에 묵묵한 수행으로 이루어진 예술을 전하는 한 어른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장소: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시간: 화~일 오전 10시~오후 6시(수·토 오후 9시까지) 관람료: 무료(사전 예약제) 문의: 02-3701-9500

김영민 서울문화재단 홍보아이티(IT)팀 대리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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