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예능

협찬 여행 프로 봇물

등록 : 2018-05-3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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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빼면 한국 예능이 심심해질 판이다. tvN의 <짠내투어>, KBS 2TV의<배틀 트립>처럼 여행이 소재인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SBS의 <동상이몽> 같은 일반 예능에서도 출연자들이 틈만 나면 외국에 간다.

여행 예능들은 용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곳을 가기도 한다. 한동안 동시다발적으로 일본을 찾더니 중국이 단골 여행지로 등장했다. 요즘은 싱가포르다. 서로 염탐이라도 하는 걸까.

여행 예능은 대부분 협찬 예능이다. 제작진이 여행지를 선택한 뒤 여행사의 협찬을 받거나, 역으로 여행사에서 특정 나라에 가달라고 제안한다. 나라마다 여행사마다 집중 홍보 시기에 맞춰서 여러 프로그램에 다양한 제안을 넣는 것이다. 여행사는 제작비를 지원해주고 미디어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여행 예능을 보면, 저렴한 곳 찾기 경쟁이나 패키지 등 방식은 다르지만, 관광지를 둘러보고 맛있는 것을 먹는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출연자들은 대부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너무 맛있다!” “너무 좋다!”를 외쳐댄다. 섞어놓으면 같은 프로그램처럼 보일 정도로 변별력이 없다.

이 역시 사전에 합의된 그림인 경우도 있다. 여행사나 각 나라 문화원 등에서 협찬을 할 경우 사전에 반드시 소개할 것을 논의하기도 한다. 제작진도 조건 없이 수용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합의된 곳이 한두 곳 이상은 된다.

과거에는 협찬받으려는 제작진 경쟁이 더 치열했지만, 요즘은 여행사들이 더 발로 뛴다. 방영 전에 협의하지만, 정규 프로의 경우 방영 중에도 협찬 제안은 끊이지 않는다.

여행사와 제작진을 연결해주는 피피엘(PPL) 회사도 있다. 어떤 여행사는 여행지를 결정하는 방송사 핵심 담당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려고 관련 기사를 쓴 기자에게 연락해 묻기도 했다. 결정권자에게 직접 제안하면 조금 더 유리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만큼 방송을 타면 여행 문의가 느는 등 효과를 톡톡히 본다.

여행 예능은 물리지만, 안방에서 다양한 나라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올 때마다 인기가 있다. 삶이 더 팍팍해진 요즘에는 여행을 더 갈구한다. 하지만 교육방송의 <세계테마여행> 등 교양이나 다큐가 아니라 예능에서 협찬을 담아 앞다투어 다루면서, ‘여행사 홍보 영상’으로 전락한 것도 사실이다. 변별력 없이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여행 예능은 이대로 좋은 것일까.


남지은 <한겨레> 문화부 대중문화팀 기자 myviollet@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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