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석의 좋은 건축 나쁜 건축 이상한 건축

다정한 주변의 지세에 얹혀 세상 향해 열린 공간

이진아기념도서관(서대문구립도서관)

등록 : 2018-03-0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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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딸을 위한 부모의 건축

공모전 건축물처럼 요란하지 않고

붉은 벽돌, 서대문 형무소와 조화

이진아기념도서관 전경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고통스럽다.

부모를 잃은 슬픔을 천붕(天崩)이라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마음은 창자가 끊어지는 단장(斷腸)의 아픔이라 말한다. 누가 있어 자식을 먼저 보낸 아픔을 차마 이해한다 하겠는가?

예전에 딸아이와 얘기를 나누다 문득 물었다. 만약 위험에 처한 너를 아빠의 생명으로 구할 수 있다면, 아빠는 어떻게 할 것 같으냐고. 딸은 조용히 답했다. 아빠가 날 살릴 것을 안다고. 순간 절대적으로 나를 믿는 아이의 눈을 보며 콧등이 시큰했고, 고마웠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그런 끔찍하지만 행복한 선택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끊어진 애를 부여안고 살아가야 하는 힘든 날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책 좋아하던 딸에 대한 사랑

누구도 거들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온 세상 사람을 위한 사랑으로 승화해낸, 결코 쉽지 않은 소중한 건물이 하나 있다. 독립문을 지나 서대문 형무소에 이르기 바로 전, 울타리가 이끄는 길을 타고 돌아 옆으로 보이는 언덕을 따라 계단을 오른다. 그러면 형무소 끝자락의 붉은 벽돌 담 뒤로 숨었던 수줍은 듯 조용한 건물이 얼굴을 내밀며 마중 나온다. 서대문구의 구립도서관으로 마련된 이진아기념도서관이다.

2003년 6월 미국에서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이진아씨를 위해 부모와 언니가 단장의 아픔을 이겨내며 한 일은 책을 좋아하던 딸에 대한 사랑을 사회로 돌린, 도서관 마련이었다. 사고로부터, 2005년 9월15일, 이씨의 생일에 맞추어 문을 연 도서관의 개관까지 가는 길의 길목마다 눈물에 젖지 않은, 쓰리고 아프지 않은 날이 하루인들 있었을까? 보통 사람은 감히 생각하기 힘든 희생이고 큰마음이다.

산책로·작은공원과 이어져 주민 사랑방 구실

공모전을 통해 현실화된 도서관 건물은, 흔한 공모전 당선작처럼 건축적 이념이나 형태를 자랑하려는 욕심에 넘치기보다, 다행히도 앉은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임무에 주목하는 차분한 결과를 낳았다. 도서관을 안아주는 주변의 지세가 다정하고, 멀리서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인왕산, 북한산의 경관이 일상에서 쌓인 마음의 먼지를 훌훌 털어준다. 도심의 번잡함에서 한발 물러선 도서관 자리는 산책로와 작은 공원으로 연결되어 주민들의 사랑방, 커뮤니티 센터 역할로도 적당하다. 도서관 가장자리 여기저기에 지나침 없는 앉을 자리를 배치하고, 주변 조경에도 적당히 마음을 썼다.

뒤로는 건물이 기대고 선 오르막 지형과 주거단지가 있고 앞으로는 서대문 형무소를 턱 아래 둔 다소 높은 대지에서 멀리까지 조망되니 눈앞은 거침이 없다. 좋은 땅을 골랐다. 서대문 형무소를 이루고 있는 붉은 벽돌들은 참혹했던 건물 용도와는 달리 고와서 서글프다. 그 색과 모양을 이어 이진아기념도서관도 오렌지빛 도는 붉은 벽돌로 쌓아 올렸다. 커다란 금속 패널이나 매끈히 다듬은 돌판과는 달리 붉은 벽돌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한손으로 들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척도의 크기에, 흙으로 만들어 한장 한장 모르타르를 바르며 올리는 과정을 지닌 벽돌에서는 따뜻한 정성이 느껴진다. 벽돌로 쌓은 건물은 빳빳이 날 선 새 옷의 낯섦도 없고 오래되어도 콘크리트마냥 추하게 얼룩지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서 비와 바람을 맞으며, 자연에 선 한 그루 나무처럼 천천히 완성되어간다.

입구로 오르는 경사로의 벽과 뒤쪽을 두른 상부 벽의 모퉁이는 착색 처리된 목재 널판으로 마감되었다. 우리나라같이 날씨 변덕이 잦고 뚜렷한 사계절이 오가는 기후에서 외장으로 쓰인 얇은 목재 판은 오래도록 변치 않고 제구실하기가 어려워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나마 입구 쪽 나무 벽은 안으로 쑥 들어가서 위의 건물이 처마 구실을 해주니 다행이다.

진솔하고 가볍게 망자를 만나는 장소

계단과 엘리베이터

외부에서 시작된 경사로는 로비의 엘리베이터를 만나는 홀에 다다르기 전까지, 불편한 사람들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업고 가겠다는 듯 내부의 공간으로 끊김 없이 이어진다. 현관에서, 내부 경사로가 입구의 관리 데스크를 싸고 오르는 바로 그 자리, 뒷벽 가득한 동판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진아씨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 쓰였으되 ‘서울에서 태어나다 /무너지는 슬픔 /미국에서 영원한 나라로 가다 /마지막 선물을 준비하다 /책 좋아했던 딸을 그리며 /가슴에 묻는 대신 영원히 살리기로 결심하다 /아빠 엄마 언니가 건립 기증하다.’ 이 도서관은 세상의 그 어떤 기념관이나 추모관보다 진솔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망자와 함께하는 장소다. 슬픔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기보다 젖은 마음 맑은 볕에 널고 시원한 바람에 말리며 남은 사람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나누어주는 사색의 장소다.

이진아 기념 동판

내부는 가운데 길게 난 아트리움이 건물의 바닥들을 갈라 ㄷ자를 이룬 평면으로 구성되었다. 천창에서 중앙의 빈 공간으로 빛이 흘러넘친다. 아트리움을 가로지르는 계단을 유리로 만들어 쏟아지는 빛을 안으로 흘린다. 1층에서 최상층으로 길게 난 직선 계단을 따라 오르면 천국에 가 닿을 것 같다. 로비에서 반 층 정도 오른 나무 계단은 가운데 일부만 계단 기능을 하는 통로 용도이고, 나머지 부분은 언제든 걸터앉아 책도 읽고, 중앙 홀을 무대 삼아 객석으로도 쓸 수 있는 넓은 폭을 가진 벤치 같은 단으로 되어 있다. 섬세한 마음 씀이 느껴지는 헤르만 헤르츠베르거의 학교 건물을 떠올리게 한다.

작은 테라스서 내려다보는 특별한 경관

각층은 계단으로 오르는 중간중간의 참에서 가벼운 다리로 연결된다. 위로 올라 내려다보면 높게 뚫린 아트리움을 통해 내부가 훤히 보이고, 방문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한 로비가 즐겁다. 엘리베이터도 계단처럼 들어오는 광을 가리지 않으려 유리로 제작해서 도서관 내부에는 빛이 가득하다. 이 도서관에는 장애인들이 차를 만들어주는 따뜻한 카페가 있고 어린아이와 어머니들을 위한 수유실도 갖췄다. 열람실과 서고는 물론 주민들의 배움을 위한 강의실도 여럿 있다.

이 건물의 모든 창을 통한 바깥세상들이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지만 특히 상부층 복도와 연결된 두 개의 조그만 테라스에서 내다보는 경관은 특별하다. 거기서 맞는 것은 그날의 날씨가 몸으로 스며드는 살아 있는 세상이고, 서대문 형무소도 저 산들도 내 앞에 앉혀다놓고 크게 울고 난 뒤에 남겨지는 카타르시스다.

테라스

에이미 쿠벨벡은 <가브리엘을 기다리며>에서, 갓 태어난 가브리엘을 잃고 나서 “이미 수없이 흘린 눈물을 새삼 또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가브리엘을 계속해서 공식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위안이 된다는 걸 알았다”고 말한다. 비록 사랑하는 이는 곁에 없지만 도서관이 그녀를 대신해 우리 곁에 머무른다. 쿠벨벡이 그랬듯 우리는 이따금 평범한 대화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게 될 것이고, 가족의 바람처럼 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대화하며 배움을 얻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오래도록 함께 기억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가슴 아픈 사건들로 아까운 많은 이들을 떠나보냈다.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방식은 거창한 추모관이 아닌, 이렇게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여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문득 영화 <시티 오브 엔젤>(1998)에 흐르던 세라 매클라클런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이 영화에 나오는 천사들은 도서관에서 살고 있었지. 짧았지만 눈부신 삶이었을 이진아씨도 가족의 사랑으로 마련된 이 도서관 볕 좋은 어딘가에서 미소 짓고 있지 않을까?

글·사진 안준석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ㅣ건축가(AIA)·공학박사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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