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코등이 꽃문양, ‘죽음’의 칼날 뒤에서 ‘생’을 노래하다

서울의 작은 박물관 ㊲ 종로구 관훈동 나이프 갤러리

등록 : 2024-01-2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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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관훈동 ‘나이프 갤러리’에서는 시대와 지역을 달리하는 각종 ‘칼’들을 2천 점 정도 살펴볼 수 있다. 보이스카우트 출신인 한정욱 관장이 중·고등학교 때부터 모아온 것이다. 한 관장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외국 나갈 기회가 생기면 그 나라 전통의 오래된 칼을 구입했다고 한다. 한 관장은 또 전통 방법으로 우리 칼 만들기도 병행하고 있다.

수직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칼날 길이만 85㎝였다. 칼 전체 길이는 116㎝, 무게 1.5㎏의 사철검 앞에서 ‘이것이 칼이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강한 아름다움이었다. 힘 있는 부드러움이었다. 차가울 것만 같았던 칼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한국도, 일본도, 중국도, 서양검, 장식검, 영화와 게임에 등장했던 칼, 세계 여러 나라의 검, 그 많은 칼을 하나하나 눈에 넣었다. 평생 칼을 수집하고 우리 전통 방식으로 칼을 만들고 있는 ‘나이프 갤러리’ 한정욱 관장을 만나 칼 이야기를 들었다.

종로구 관훈동 나이프 갤러리

칼을 모으다

그는 보이스카우트였다. 또래보다 칼을 일찍 접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오래되지 않은 1960년대에는 남대문시장에 군용 칼을 파는 곳이 꽤 있었다. 중학교 보이스카우트 활동 중 캠핑할 때 칼을 사용하게 됐는데, 그는 남대문시장에서 산 군용 칼을 썼다.

당시 중동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가 선물해준 장식용 중동 칼은 칼에 대한 호기심을 더 높였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칼에 대한 관심은 계속됐고 수집한 칼도 적지 않았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검도에 입문하게 된 건 그에게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검도 또한 칼을 수집하는 마음처럼 계속 이어졌고, 대한검도회 중앙도장 사범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칼 수집에 대한 그의 활동범위는 국외까지 넓어졌다. 1980년대 중반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은 칼 문화가 세분화되고 전문화됐다는 걸 알았다. 직장 생활하면서 외국 나갈 기회가 생기면 그 나라 전통의 오래된 칼을 구입했다. 외국을 오가는 지인의 도움도 적지 않게 받았다.

사인 쌍용활인검에 새겨진 두 마리 용.


그렇게 수집한 칼이 수백 점에 이르렀다. 그가 살던 집 방 하나는 통째로 칼을 모아두는 보관 장소가 됐다. 전시관을 만들 생각을 하면서부터 국외를 다니며 칼에 대한 전문적인 견문을 넓혔다. 그렇게 600여 점의 칼을 모았고 전시관을 열게 됐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허가가 나지 않는 거였다. 그렇게 몇 번 신청서가 반려됐으나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결국 2000년 전시관 허가를 받아냈다.

인사동 거리에서 문을 연 나이프 갤러리가 소문을 타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창때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관람할 정도였다. 2008~2009년에는 소장품이 5천 점 정도 됐다. 나이프 갤러리에서는 검을 팔기도 해서, 지금은 2천 점 정도 남았다고 한다.

칼코등이.

2024년 갑진년 용의 해, 용과 관련된 칼 두 자루를 보다

나이프 갤러리는 칼의 보물 창고다. 그곳에서 ‘사인 쌍용활인검’을 보았다. 사인이란 연월일시에 모두 인(寅)이 들어간 것을 이르는 말로, 그때 양의 기운이 가장 크다고 하며, 그때 만든 칼을 ‘사인검’이라고 부른다. 그 기운을 담은 사인검이 삿된 음기를 물리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왕실에서 나쁜 기운으로부터 왕실을 지킨다는 의미로 사인검을 소장했다고 한다. ‘사인 쌍용활인검’은 사인검에 용 두 마리를 새겨 넣은 것이다.

전시관에 용과 관련된 칼이 하나 더 있다. 사진검(四辰劍)이라는 이름의 칼이다. 사진검은 연월일시에 모두 진(辰)이 들어간 때 만든 칼이다. 음력 2012년 3월23일 진(辰)시, 그러니까 임진년(壬辰年), 갑진월(甲辰月), 갑진일(甲辰日), 무진시(戊辰時)에 제작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 용의 해에 용과 관련된 칼 두 자루를 그곳에서 보았다.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리치왕의 검.

전시관에는 오래된 칼도 많다. 1870년, 1600년대, 14세기 중반에 제작된 일본의 옛 칼이 있다. 칼날 부분이 60㎝가 넘는 것을 대도라고 한다는데, 세 자루 칼 모두 대도다. 칼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었다. 곡선을 이룬 칼은 1813년 프랑스 사브르 칼도 마찬가지다. 전시된 중동의 칼도 그랬다.

인도, 페르시아 지역의 옛 칼과 도끼도 있다. 100년이 넘었다는 도끼는 자신의 날 반대쪽을 작은 코끼리 모양으로 장식했다. 카자흐스탄의 기념품 칼,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서 선물로 준 칼은 칼의 형태와 장식이 화려하다.

오래된 총검이 전시관 한쪽 벽면에 가득하다. 나기나타라고 불리는 300년 전 일본 창과 사슬낫 등 일본 무기도 볼 수 있다.

영화와 게임 속 칼도 있다. 영화 <하이랜더> <반지의 제왕>,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리치왕의 검 등이 전시됐다.

사철검.

칼코등이와 사철검

전시관에는 칼만 있는 게 아니다. 칼을 이루는 여러 부속품 가운데 칼날과 손잡이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끼워 칼날로부터 손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칼코등이(일본말은 ‘쓰바’)가 눈에 띈다. 일본 에도시대(1603~1867년) 것이 많다.

칼코등이에 다양한 문양이 새겨졌다. 새, 개구리, 학, 나무, 꽃 등 생명이 있는 것들과 산수화 같은 풍경을 작은 칼코등이에 새긴 것도 있다. 칼날이 ‘죽음’과 관련한 부분이라면 칼코등이에 새겨진 문양은 ‘생’과 관련한 것으로, 칼은 한 몸에 생과 사를 품고 있다고 한 관장은 설명한다.

‘金家’(김가)라는 한자가 새겨진 칼코등이도 있다. 일본 성씨 가운데 김(金)가가 있다고 하지만, 만에 하나 임진왜란 때 김(金)씨 성을 가진 조선인 칼 만드는 장인이 일본으로 끌려가서 만든 칼코등이는 아니었을까? 그 칼코등이에는 겸재 정선의 산수화처럼 강물에 작은 나룻배 한 척이 떠 있고 물가 절벽 위에는 구불거리며 아무렇게나 자란 소나무가 한 그루 있는 풍경이 새겨졌다. 그 풍경이 꼭 조선의 풍경 같아, ‘그가 일본에서 고향 산천을 그리며 그런 문양을 새긴 건 아닐까?’ 등 오래된 일본도 칼코등이에 새겨진 문양에 상상은 이어진다.

조선에는 조선 칼, 환도가 있었다. 한정욱 관장은 칼 만드는 기술이 삼국시대에 일본으로 전해졌고 일본은 그 기술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 명맥이 끊어졌다고 한다.

한 관장이 칼을 수집하고 검도를 수련하는 것과 병행하는 게 우리의 전통 방법으로 칼을 만드는 것이다.

모래에서 철을 얻고(사철), 사철과 숯을 섞어 제련해 강철 덩어리를 만든다. 강철 덩어리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련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얻은 강괴를 두드려 늘리고 접고 다시 펴고 두드려 늘리고 접는 단조·접쇠 과정을 반복한다. 도검의 대략적인 형태가 만들어지면 담금질하고 부분별로 차등 냉각시킨다. 마지막으로 날을 세운다.(2020년, 이 기술로 만든 주방용 칼과 골프 퍼터는 발명특허를 받고 특허청에 등록됐다.)

전시관에 자연상태의 사철, 강원도 소나무 숯(백탄), ‘사철강괴접쇠도검’ 제작과정을 순서대로 정리한 전시품을 볼 수 있다. 그 순서의 끝에는 사철강으로 만든 칼이 있다. 칼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알려준 사철검을 그렇게 보았다.

관람 정보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휴관일: 없음 관람요금: 없음 문의전화: 02-735-4431~2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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