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닿기 힘든 마음도 ‘몸짓’에는 쉽게 문을 연다

현대인을 위한 힐링 ⑩ 무용동작치료 : 남희경 한국신체심리인스티튜트 소장

등록 : 2023-11-09 17:15 수정 : 2023-11-0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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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종로구 사직동 ‘한국신체심리인스티튜트’에서 만난 남희경 소장이 두 손으로 ‘심리적 싸개’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한 손으로 뒷머리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마를 감싼 뒤 약간의 압력을 주면 우리 몸은 ‘모성의 기억’을 다시 찾는다고 한다.

내성적 아이, 춤을 출 때면 끼 발현 경험

무용 전공 뒤 미국서 ‘움직임 치료’ 공부

귀국 뒤 박사 되고도 쉼 없이 학습 지속

“몸 움직임 통해 건강한 사회 보탬” 소망


샤먼이 무용동작치료의 원형적 모습

무용동작치료 효과, 뇌과학 통해 입증


신체 접촉 잃은 현대인 감정표현 못해

건강성 약해진 사회…몸 중요성 높아져

“내 몸은 적이 아니에요. 몸과 너무 싸우지 말아야 해요.”

지난 3일 종로구 사직동 ‘한국신체심리인스티튜트’에서 만난 남희경 소장이 한 말이다.

“우리가 몸을 다루는 방식은 너무 파괴적이에요. 몸을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으로 여기거나 몸을 굉장히 학대하기도 해요. 이렇게 몸을 대하는 것은 몸을 도구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인데, 몸은 도구나 대상이 아니라 바로 존중받아야 할 자기 자신입니다.”

‘한국신체심리인스티튜트’는, 이름에서 ‘신체’와 ‘심리’가 들어간 데서 알 수 있듯이 몸 움직임에 바탕을 두고 마음을 치료하는 기관이다. 남 소장은 ‘무용동작치료’라 불리는 이 치료에 대해 “바로 이렇게 몸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하는 치료법”이라고 강조했다.

남 소장에 따르면 무용동작치료는 “언어를 통해 감정을 파악하는 기존의 ‘하향식 치료’와는 구별되는, 몸을 움직이면서 감정이 느껴가는 ‘상향식 접근’”이다. 남 소장은 때로는 ‘하향식 치료’가 효과적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상향식 치료’가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모든 심리치료는 내면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질문이나 대화 등 말을 통해 치유할 수 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나 말조차 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종의 언어상담의 한계인 셈입니다.”

남 소장은 이때 몸 움직임을 통해 말로는 할 수 없는 아픈 트라우마를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한다. 몸 움직임은 우리가 말을 배우기 전부터 이미 가지고 있었던 ‘몸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남희경 소장(오른쪽)이 제자인 박보현 한국신체심리인스티튜트 책임연구원과 함께 음악을 틀어놓고 손끝, 발끝을 털듯이 춤추고 있다. 남 소장은 “목욕하고 개가 터는 것처럼 야생동물이 몸을 털기 때문에 트라우 마가 없다”고 설명한다.

남 소장과 무용동작치료의 인연은 그가 학부 때 무용을 전공하면서 출발한다. 어릴 때 내성적이었던 그는 “춤은 제 삶의 구원이었다”고 말한다. “우울한 저를 깨우고, 춤을 출 때면 다른 인격이 나타나는 것처럼 끼를 발휘하게 했다”는 것이다.

남 소장은 대학 때 장애인을 위한 무용 공연 등을 한 것이 무용의 치료적 효과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200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데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미국에서 무용동작치료를 전공으로 하고 상담심리를 부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뉴욕의 정신과 병동에서 정규직 심리치료사로 일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공황장애를 겪는 등 어려움도 겪었지만, 티베트 명상과 요가를 배우면서 극복해냈다고 한다. 2006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가톨릭대 심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21년 ‘한국신체심리인스티튜트’를 열었다.

무용동작치료는 남 소장이 유학을 갈 때는 물론 지금도 새로운 학문이다. 하지만 남 소장은 무용동작치료의 근원은 오래된 것으로 본다. 바로 샤머니즘이다.

“샤먼은 춤을 통해 ‘불안’과 ‘우울’을 다루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샤먼의 춤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실존 불안을 다루기 위한 방식이었어요. 가령 풍랑을 겪을 수 있는 바다로 떠나는 고기잡이 선원들을 위한 춤이 그것입니다. 샤먼의 춤은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고통의 근원인 죽음과 상실을 경험했을 때 우울과 연관이 있는 그런 한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가 대표적이죠.”

남 소장이 자신의 저서 <몸이 나를 위로한다>(생각속의집 펴냄)를 가슴에 안은 채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다.

남 소장은 샤먼의 이런 치유 활동이 현대 무용동작치료의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현대 무용동작치료가 학문적으로 탄생한 것은 현대에 들어선 1940년대 미국이었다.

“무용교육가인 매리언 체이스(1896~1970)가 1940년대 초 워싱턴에 있던 성엘리자베스병원에서 조현병 환자의 치료에 춤을 이용한 것이 최초입니다. 이분들에게는 언어로 소통이 안 되는 상황이니까, 리듬적인 움직임을 통해 와해된 행동과 사고를 조직화하는 등 무용치료를 발전시킨 것입니다.”

남 소장은 또 1950년대 초에는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무용가 메리 화이트하우스(1911~1979)가 융 심리학에 기반을 둔 움직임 치료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남 소장은 “이에 따라 1966년 미국에서 협회를 만들었을 때 무용(매리언 체이스)과 동작(메리 화이트하우스)이라는 두 방향성을 모두 넣어서 ‘무용동작치료협회’로 출발했다”고 한다.

남 소장은 무용동작치료가 근래 들어서 더 큰 관심을 얻게 된 배경으로 뇌과학의 발전을 꼽았다.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무용동작치료가 막연히 좋다는 것을 넘어서 자율신경계나 미주신경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이 밝혀지면서 더 큰 신뢰성을 주게 된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 소장은 무용동작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데 제일 크게 작용한 요인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는 현대인의 생활’을 꼽았다.

“현재의 세계는 ‘몸을 잃어버린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손가락 끝 하나만으로 다 할 수 있어요. 이에 따라 직접 만남, 눈 맞춤, 피부 접촉 등이 줄어들게 되면서 ‘몸의 언어’를 잃어버리게 되고, 자연히 감정의 교감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남 소장이 싱잉볼을 쳐서 무용동작 치료 활동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남 소장은 그 결과 사람들이 좋은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학교 붕괴를 얘기하는 현 상황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남 소장은 본다.

“요즘 아이들이 몸 놀이를 안 하면서 공격성 조절 등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울증이 늘어나는 등 심리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학교뿐만이 아니다. 남 소장은 “기업이나 군대 등 사회 곳곳에서 무용동작치료를 찾는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고 전한다. 남 소장은 이렇게 무용동작치료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는 것이 꼭 반갑지만은 않다. 그만큼 사회가 건강성을 잃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대한무용동작심리치료학회의 학회장까지 지낸 남 소장은 박사학위를 받고도 다시 2020년부터 다시 한국융연구원의 연구원으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그가 이렇게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은 아마도 ‘무용동작치료를 통해 사회의 건강성을 다시 찾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소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불안할 땐 그라운딩, 우울할 땐 털기춤 효과”

남희경 소장이 추천하는 치료적 몸 움직임

남희경 소장은 “불안할 때 몸을 움직이면 불안을 진정시키는 브레이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추천하는 심신 안정용 몸 움직임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그라운딩’과 ‘심리적 싸개’ 만들기다. 그라운딩은 바닥에 접촉하는 것이다. 불안이 과도할 때 바닥과 발바닥을 접촉하면 마음이 안정될 수 있다고 한다. 남 소장은 “불안할 때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도망가기 위해 바닥에서 뜨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며 “바닥과 그라운딩을 하면 의식이 도망가지 않고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다시 몸으로 돌아오는 것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손으로 뒷머리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마를 감싼 뒤 약간의 압력을 주는 것도 불안 감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런 감싸기와 압력을 통해 우리 몸은 모성의 기억을 다시 찾기 때문이다.

둘째 우울감을 느낄 때는 ‘몸 전체로 하는 심호흡’을 하거나 ‘털기 중심의 춤’을 추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몸 전체로 하는 심호흡’은 몸이 하나의 풍선이 된 것처럼 느끼며 크게 부풀어오르는 느낌이 들도록 심호흡하는 것이다. 남 소장은 “풍선이 된 느낌으로 90초 이상 심호흡하면 자율신경계의 회복이 일어나면서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음악을 틀어놓고 손끝, 발끝을 털듯이 춤추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남 소장은 “목욕하고 개가 터는 것처럼 야생동물은 긴장과 압력을 스스로 털어내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없다. 하지만 이성을 가진 인간은 털어내는 충동을 억압하기 때문에 긴장을 안고 살아간다”며 “사람들은 쑥스러움에 터는 행동을 잘 못하지만, 음악 속에서 자연스럽게 털기춤을 추면 마음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글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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