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목소리’ 연기하면 ‘원형과의 만남’ 이어져”

현대인을 위한 힐링 ② 연극치료 : 김지선 한국연극치료연구소장 인터뷰

등록 : 2023-02-2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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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한국연극치료연구소장이 지난 7일 대학로에 있는 연구소에서 연극치료의 원리와 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극치료는 가면 속에 감추어진 듯한 내면의 목소리를 끌어낸다. 이때 “자기 안의 억누른 내면을 다른 외부의 것에 전가하거나 발견하는” ‘투사’를 통해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

무대미술로 연극과의 인연 시작됐지만

“마음 아픈 이 함께하려” 연극치료 배워

미술·음악치료보다 늦게 전파됐으나

종합예술적인 성격 덕에 빠르게 확산


연극치료의 핵심 원리는 ‘투사와 역할’

투사, 억압된 내면을 작품 속에서 발견


역할, 창작된 배역 맡으며 몸으로 느껴

아침마다 ‘간단한 나만의 연극’ 꿈꿔봐

“가부장적 아버지상으로 굳어진 어르신이 외로움을 느끼는 소년 그리고 청년의 모습을 연기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지난 7일 ‘연극치료’의 특징과 효과를 물었을 때 김지선 한국연극치료연구소장이 답한 내용 중 일부다.

한국연극치료협회 부설 연구소인 한국연극치료연구소를 맡고 있는 김 소장의 연극과의 첫 만남은 ‘무대미술’이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이 무대에 구현될 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이 끝나고 나서는 ‘허함’이 찾아왔다고 한다. “사람들과의 교류가 아닌 나 자신의 만족이 더 크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부터였다.

30살이 되던 2006년에 큰 방향전환을 했다. 한국연극치료협회에서 개최한 ‘장애 비장애 형제를 위한 연극치료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것이 이후 연극치료를 배우고 상담하고 연구하는 삶으로 이어졌다. “아픔을 느끼는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조금 더 따뜻한 삶을 지향하고 싶었습니다.” 무대미술을 위해 공부했던 대본 분석 등이 큰 도움이 됐다. 2022년에는 연극치료를 주제로 용인대에서 예술치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소장은 2021년부터 대학로에 있는 한국연극치료연구소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김지선 한국연극치료연구소장이 기자에게 연극치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소장이 설명을 이어갔다.

“가부장적 어르신의 마음속에도, 차마 얘기를 꺼내지는 못했어도, 여러 가지 목소리가 존재할 겁니다. 청년뿐 아니라 소년의 목소리도 있을 거예요.”

김 소장은 “연극이라는 형식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를 표현하면 결국 ‘은유와 상징을 통한 원형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며 “이를 통해 참여자는 자신도 미처 모르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연극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연극치료는 영국의 수 제닝스와 미국의 로버트 랜드에 의해 1960~1970년대에 시작됐지만 사실 그 기원은 오래된 것”이라며 “원시시대 제의의식이 그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거나 사냥감을 많이 잡았으면 좋겠다거나 아픈 곳이 나았으면 좋겠다는 등의 바람을 집단으로 모여 제의 형태를 띠어 나타낸 데서 연극치료의 원형이 출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화된 연극치료는 그 출발이 늦었기 때문에 국내에 들어온 것도 다른 치료 기법들에 비해 늦었다. 미술치료가 1980년대 들어오고, 음악치료가 1990년대 들어온 데 반해 연극치료는 2000년대 들어서야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김지선 한국연극치료연구소장이 기자에게 연극치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소장은 하지만 연극치료의 확산은 상대적으로 빨랐다고 말한다. 한국연극치료협회가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것이 2005년이지만, 지금까지 연극치료사 교육과정에 등록한 인원이 누적 1천 명을 넘어섰고 자격증을 딴 사람도 200명이 넘었다. 또 용인대에 연극치료 박사과정이 개설되는 등 전국 3~5개 학과에 연극치료 석·박사 과정이 마련됐다.

김 소장은 이렇게 연극치료가 빠르게 확산하는 이유로 “연극 자체가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극에는 음악·무용·움직임·이야기·미술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매체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치료 효과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연극치료의 경우 다양한 요소가 결합해 있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발생하는 원리도 다양하다. 하지만 김 소장은 그중에서도 ‘투사와 역할’을 핵심적인 것으로 꼽았다. 투사는 “자기 안의 억누른 내면을 다른 외부의 것에 전가하거나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투사는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가령 하늘빛 상태를 자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좀더 흐리게 보거나 밝게 보는 것이 한 예일 수 있습니다. 연극치료에서는 햄릿 등 기존 작품 속 역할이나 혹은 창작한 역할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김 소장은 “가령 학교폭력 문제를 다룰 때도 피노키오가 학교에 가서 왕따를 당하는 모습을 상황극으로 표현한다면, 학교폭력 가해자나 피해자가 모두 상황을 이해하고 자기 내면을 투사하고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현재 상태를 인식하며 치유 효과를 얻는다”고 말한다.

김 소장이 내담자가 자신의 소망을 인형들에 투사하는 연극치료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투사는 연극치료에만 해당하는 치료 원리는 아니다. 다른 많은 치료 기법도 투사를 사용한다. 하지만 김 소장은 연극치료에서의 투사와 역할이 강력한 이유로 “직접 몸을 쓴다”는 점을 꼽았다.

“몸은 거짓말을 못합니다. 말은 과하게 꾸밀 수도 있지만 몸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 상태가 몸으로 바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걸을 때 ‘덩실덩실’ 가볍게 걷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는 것이 한 예입니다.”

문학 등은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간접적 만남이지만, 연극치료의 경우 내담자가 직접 몸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더 직접적이라는 것이다.

김 소장과 인터뷰를 마치면서 바쁜 현대인이 아침·저녁으로 간단한 ‘자신만의 연극’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제목은 ‘나를 위한 목소리’다. 아침 혹은 저녁에 자신을 위해주고 편들어줄 것 같은 다양한 사람들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위해 해줄 것 같은 말을 실제로 ‘1분 정도 낮은 목소리로’ 내어보는 것이다. 그 ‘실제적인 목소리’를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면 어쩌면 하루가 더 따뜻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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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감정과 욕구 자연스레 나와”

김지선 소장이 들려주는 ‘6조각 이야기’

김지선 소장은 현대인이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연극치료 요법으로 ‘6조각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스라엘 출신 심리학자이자 연극치료사인 물리 라하드(1953~)가 개발한 ‘6조각 이야기’는 A4 용지 한 장과 간단한 필기구로 자신의 마음을 투사해볼 수 있는 기법이다.

방법은 우선 A4 용지를 6등분으로 접는 것으로 시작한다. 만들어진 6개의 칸에는 차례로 ① 주인공 ② 주인공의 꿈 혹은 목표 ③ 주인공을 돕는 것 ④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것 ⑤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⑥ 목표 달성 이후 이야기를 차례로 그려 넣는다. 이어 이 ‘6조각 이야기’를 작성자가 직접 말로 설명하거나 혹은 동료들과 함께 간단한 상황극으로 만들면 된다.

가령 ① 보육원 아동의 경우 ② 10년 뒤의 자립을 꿈꾸며 ③ 좋은 선생님을 만나지만 ④ 주변의 편견에 시달릴 수 있다 ⑤하지만 선생님과 함께 수동성을 극복하여 ⑥ 대학 진학과 함께 자립에 성공하게 된다.

김 소장은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은 6조각 이야기에서 시공간도 사건도 모두 뒤죽박죽으로 얽힐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주인공의 감정과 욕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며 “이렇게 드러난 감정과 욕구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해결책을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글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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