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원짜리 ‘금’붕어빵 돼도 ‘추억’ 찾는 대기행렬 이어져

“붕세권 아시나요?” 국민간식 ‘붕어빵’ 열풍

등록 : 2023-01-0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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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국민간식인 ‘붕어빵’ 열풍이 불고 있다. 붕어빵 파는 매대와 가까운 곳을 가리키는 ‘붕세권’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서울 용산구 남영역 인근 ‘행복한잉어빵’ 매대에는 1인당 구매 제한 알림이 내걸려 있다. 이 점포는 ‘팥이 터질 듯한 붕어빵’으로 명성을 얻었다.

물가 급등과 단속 강화에 노점상 줄어

길거리 간식 ‘붕어빵’ 찾기 어려워져

붕어빵 쉽게 사는 곳, ‘붕세권’ 호칭

붕어빵 찾아주는 정보 공유 앱도 등장


피자 등 ‘독특한 재료’ 이색 붕어빵 인기

줄 선 손님들 “물가 너무 올라서 이해돼”


높은 가격에 1시간 이상 기다리고도

1인당 1~3개씩 개수 제한에 많이 못 사

“공덕 인근에 붕어빵 파는 곳 있나요?”

“역 근처에는 붕어빵 안 파나요? 너무 먹고 싶은데 주변에서 본 적이 없어요.”

“붕어빵 어디 가야 살 수 있죠? 용산에 붕어빵 맛있는 곳 추천 부탁드려요.” 붕어빵의 계절이 돌아왔다. 예전에는 오며 가며 붕어빵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최근 붕어빵 노점이 하나둘씩 모습을 감추면서 각종 커뮤니티와 중고거래 앱에는 ‘동네 붕어빵 노점 위치’를 묻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선 붕어빵 노점 근처에 사는 게 일종의 프리미엄이라며 붕어빵 가게에 인접한 주거지를 가리키는 ‘붕세권’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붕어빵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는 사람이 늘어나자 붕어빵 점포 위치를 알려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가슴속3천원’ ‘대동붕어빵여지도’ ‘붕세권’ 등 관련 앱의 출현은 붕어빵이 귀한 간식이 된 현실을 보여준다.

‘가슴속3천원’은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붕어빵 점포와 점포까지의 거리, 가격, 실구매자 평점과 리뷰 등을 볼 수 있는 앱이다. ‘가슴속3천원’ 개발자 유현식(31)씨는 2022년 12월28일 <한겨레> 서울&과의 전화 통화에서 “2019년 겨울 서비스를 시작했다. 붕어빵을 먹고 싶은데 어디서 파는지 알 수가 없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냈다”며 “타깃이 겨울 간식이다 보니 주로 겨울철에 유입이 증가한다. 누적 가입자 수는 60만 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요즈음 붕어빵 노점을 찾기 어려워진 이유는 고물가 탓이 크다. 업계에선 붕어빵 실종 현상을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로 해석하고 있다. 붕어빵 주재료의 가격이 모두 급등하며 수지타산을 맞추기 쉽지 않자 장사를 접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실제로 밀가루, 팥, 설탕, 식용유, 엘피지(LPG) 가스 등 가격이 5년 전보다는 평균 49.2%, 지난해보다도 18.4%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유씨는 이와 관련해 “물가가 많이 오르기도 했고 요즘엔 특히나 불법 노점상 규제가 강해진 측면도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12월26일 정오 ‘행복한잉어빵’ 앞. 전국이 꽁꽁 얼어붙은 강추위에도 줄이 길게 이어져 있다.

12월26일 정오, 앱을 통해 찾아간 용산구 남영역 인근 ‘행복한잉어빵’ 점포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영하 9도의 매서운 한파에도 이미 열댓 명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도 대기열 끝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자 뒤로도 줄이 점차 길어졌다. 털모자와 목도리로 중무장한 신춘자(68)씨는 주머니에 손을 푹 넣은 채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 있길래 나도 한번 서봤다. (붕어빵이) 맛있다고들 하니까 먹어보려고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붕어빵 파는 데가 많이 보여야 하는데 잘 안 보여서 아쉽다”고 덧붙였다.

20대 여성 윤아무개씨는 “추운 날씨에 오랜 시간 기다려서 사 먹는 이유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요즘 붕어빵 파는 데가 많이 없어져서 이렇게 줄을 서서라도 먹는 것 같다”고 답했다. 윤씨의 남자친구도 옆에서 “요즘은 (붕어빵 노점을) 찾아주는 앱도 있지 않냐”며 맞장구쳤다. 윤씨는 “여기가 팥을 많이 넣어줘서 유명하다.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학교 가는 길에 있어서 왔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추운 날씨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매대에는 ‘붕어빵 2개 천원’ ‘1인당 3천원 구매 제한’ 팻말이 걸려 있었다. 알고 보니 해당 노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미 붕어빵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구매 제한 규칙은 최대한 많은 손님이 붕어빵을 맛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장치다. 기자는 줄을 선 지 40여분 만에 붕어빵 한 봉지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봉지 속 붕어빵은 꼬리까지 가득 들어찬 앙금으로 거뭇한 빛깔을 띠어 겉모습부터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10년간 붕어빵 장사를 해온 행복한잉어빵 점주 김종식씨는 “재료를 이만큼씩 쓰면 남는 게 있냐”는 기자의 말에 “이익이 얼마나 남는지는 별로 신경 안 쓴다. 내가 좀 덜 가져가더라도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게 좋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옛날에는 붕어빵 장사가 이익이 꽤 남았는데, 수입이 이전 같지 않으니 기존에 (장사)하던 사람들이 많이 없어졌다”며 “가격이 올랐으니 그만큼의 서비스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나는 조금이나마 더 맛있게 굽자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12월27일 오후 종로구 광장시장에 있는 ‘총각네붕어빵’ 앞에도 붕어빵을 사려는 사람들로 줄이 길어졌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이색 붕어빵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슈크림은 기본이고 고구마·피자·치즈 등이 들어간 붕어빵도 등장했다. 12월27일 오전, SNS에서 인기라는 종로구 광장시장의 ‘총각네붕어빵’을 찾았다. 영업이 시작되는 정오가 가까워지니 점포 앞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대기 1번을 차지한 여성 두 명에게 다가가 “언제 오셨냐”고 묻자 “한 시간 전쯤 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 입구에 두 줄씩 두 겹의 줄이 만들어졌다. 기자에게 다가와 ‘무슨 줄이냐’고 묻는 행인도 더러 있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기자 바로 뒤에 있던 한 가족은 줄서기를 포기하고 돌아섰다.

‘총각네붕어빵’ 점원들이 붕어빵을 만들고 있다. 이 점포는 피자와 고구마 등 붕어빵 속 재료를 차별화해 경쟁력을 높였다.

오픈 20분 전 도착해 줄을 선 기자는 1시간이 지나서야 매대 앞에 섰다. 해당 점포는 팥+호두, 슈크림, 피자, 고구마+크림치즈, 팥+크림치즈 5가지 맛을 팔며 1인당 4개, 피자와 크림치즈가 들어간 메뉴는 1인당 1개씩만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 중년 여성이 왜 개수를 제한하는지 묻자 점포 쪽은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데 (모두에게) 골고루 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올겨울 붕어빵 가격은 2마리에 기본 1천원 수준이다. 강남 등 지역에 따라서는 마리당 1천원인 곳도 있으며, 재료가 추가로 들어간 프리미엄 붕어빵은 1마리에 3천원이나 하기도 한다. 총각네붕어빵도 팥+호두와 슈크림은 개당 1천원, 나머지 메뉴는 개당 2천원에 판다.

‘총각네붕어빵’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고구마 크림치즈 붕어빵’이 만들어지는 모습.

대기하던 손님들에게 가격이 다소 비싸다고 느끼지 않는지 물었다. 어머니와 함께 방문한 우지민(19)양은 “다른 데는 그냥 일반 재료밖에 안 들어가는데도 비싸서 사먹기 꺼려진다. 여기는 나름 색다른 메뉴라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20대 여성 김아무개씨도 “물가가 올라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총각네붕어빵 관계자 이아무개씨는 “지금은 밀가루값부터 해서 재료 가격이 다 올랐다. 또 우리는 그만큼 들어가는 게 많다. 재료를 다른 곳에서 받아서 하는 게 아니라 전부 직접 만들고, 그날 팔 건 그날 만든다”며 “낮 12시부터 구워서 보통 오후 4~5시쯤 되면 재료 소진으로 마감한다”고 말했다.

우스갯소리로 이젠 ‘금’붕어빵이 됐다고들 하지만, 각 점포 앞에는 여전히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 시절 추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겨우내 끊이지 않는 모습이다.

글·사진 이화랑 객원기자 hwarang_lee@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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