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볼만한 전시&공연

상처받은 숯덩이와 침목에 ‘인간의 본질’을 새기다

시간의 초상: 정현(~12월4일)

등록 : 2022-11-1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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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탄 나무를 서로 기대 쌓아둔 대형 작업(사진), 2019년 강원도 고성 산불로 숯이 된 나무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빛이 나도록 열처리를 해두었고, 갈라진 자리에 작은 못들을 설치해 반짝인다.

조각가 정현은 침목, 석탄, 잡석, 아스콘 등 비전통적인 재료의 물질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는 신작을 포함한 100여 점의 작품이 출품돼 그의 30여 년에 걸친 작업 변천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프랑스 유학 시절인 1980년대 후반 제작한 작품들은 사실적인 인체 표현에서 점차 반구상적인 표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보관했을 법한 투박한 선반에 수십 점의 작품이 전시돼, 직접 그 변화를 눈으로 비교하며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익숙한 인체 모양을 한 초기 석고 작품들이 철근을 활용해 앙상한 뼈만 남은 모양으로 변화했다가 인체의 세부 형태를 생략한 투박한 모양의 작품들로 이어진다. 2000년대부터는 시련을 겪어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재료로 다양한 모양의 사람을 표현해냈다. 작가의 개입은 줄어드는데도 조각 자체의 힘과 본질을 추구함으로써 오히려 존재감은 강해지는 모양새다.

정현은 평생 인체를 화두로 삼아 인간과 조각의 본질에 대한 작업을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조각 도구와 제작 방식의 과감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작품뿐만 아니라 함께 전시된 작업도구, 작업방식 설명 영상을 통해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벽면에 전시된 드로잉 작품들도 색다른 매력을 뽐낸다.

성북구립미술관 앞 외부 공간인 ‘거리갤러리’에는 작가의 신작인 <침목> 연작이 늘어서 있다. 철길에 누워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가 일어서 사람의 형상을 이뤘다. 길 끝에는 2014년 제작한 커다란 파쇄공이 수없이 땅에 떨어진 흔적을 담은 채로 놓여 있다. 실내전시장에서 영상으로 작업 과정을 확인하고 감상할 수 있어 감흥을 더한다.

작품들은 전시 종료 뒤에도 2024년까지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매일 오전 11시에 전시해설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고, 관람 뒤에는 스탬프 책갈피에 작가의 작품들을 담아갈 수 있다.

장소: 성북구 성북동 성북구립미술관 시간: 오전 10시~ 오후 6시(월 휴관) 관람료: 무료 문의: 02-6925-5011


이준걸 서울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 대리

사진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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