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동네에 남은 역사, 숲과 나무 찾는 발걸음 재촉하다

(57) 종로구 선희궁터 옛 나무, 동작구 용양봉저정공원, 용마우물과 용마산

등록 : 2022-08-2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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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양봉저정공원 하늘전망대에서 본 풍경. 한강으로 치닫는 서달산의 한 줄기가 도로에 의해 끊긴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도세자 생모 신주 모신 선희궁터엔

은행나무 고목이 옛이야기 들려주고

용양봉저정공원에 심은 어린 소나무

‘아버지 향한 정조 효심’ 미래에 전한다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신주를 모셨던선희궁터에 들어선 서울농학교에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고목이 있어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왕산 청풍계의 김상용과 무궁화동산 회화나무 고목 옆에 살았던 김상헌의 이야기가 비장하다. 동작구 고구동산에서 용양봉저정공원까지 걸었다. 산비탈과 고갯마루까지 들어선 집들을 없다고 생각하면 그 길은 한강으로 뻗은 서달산 줄기의 능선길이다. 용양봉저정공원 옆에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찾아가던 정조가 쉬었던 용양봉저정이 있다. 용마의 전설이 전해지는 대방동 용마산에는 우리나라 공군 역사의 한 뿌리가 남아있다. 역사를 품은 숲과 나무를 돌아봤다.


서촌 선희궁터 옛 나무와 청풍계

경기상고에 있는 청송당터 숲을 뒤로하고 교문을 나왔다. 길을 건너 청운초등학교쪽으로 걷다가 자하문로33길을 따라 골목길을 올라갔다. 그곳에 백세청풍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이곳은 인왕산의 한 골짜기로, 경치가 좋았던 청풍계다. 겸재정선은 청풍계를 그렸다. 그림 속 커다란 나무들과 골짜기, 바위절벽이 조화롭다. 옛 풍경은 다 사라지고 지금은 백세청풍 각자바위만 남았다.

백세청풍 각자바위에서 직선으로 약 130m 떨어진 곳에 조선시대 사람 김상용이살았다.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에 그가 살던 집에 대한 기록이 남았다. ‘청풍계에 이르러 태고정에서 잠깐 쉬었는데, 이 집은 바로 고(故) 재상 김상용의 집이다’라고 적혀 있다.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피란했다가 강화도가 함락되자 자결한 인물이다.

무궁화동산 김상헌 집터 주변에 있는 회화나무 고목(2020년 가을 촬영).

그의 동생이 병자호란 때 청과 끝까지 싸우기를 주청했던 김상헌이다. 김상헌의 집은 종로구 궁정동 무궁화동산 자리에 있었다. 무궁화동산에는 그의 집터를 알리는 푯돌과 그의 시를 새긴 시비가 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시비 부근에 있는 480년 넘은 회화나무는 울분과 결기에 찬 김상헌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백세청풍 각자바위에서 돌아 나와 청운초등학교 담장 옆을 걷는다. 담장 아래 조선시대 사람 송강 정철의 작품을 새긴 비석이 줄지어 놓였다. 성산별곡, 사미인곡, 관동별곡, 훈민가… 마지막 비석 앞 그늘에서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일꾼들이 쉬고 있었다. 땡볕을 이기며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휴식시간이다. 그들이 쉬는 그늘 앞 도로 가에 정철 선생 나신 곳이라는 제목의 푯돌이 보였다. 조선시대 최고의 가사문학을 일구어냈던 송강 정철이 이 부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서울농학교에 있는 느티나무 고목.

발길은 필운대로를 따라가다가 서울농학교 앞에서 멈춰졌다. 학교 안에 260년 넘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고목이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학교 출입을 금지해 볼 수 없었다. 다만 교문에서 보이는 느티나무 고목만 멀리서 보았다. 서울농학교 안에는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이씨의 신주를 모셨던 선희궁터도 있다.

정조의 용양봉저정과 용양봉저정공원

역사를 품은 숲은 동작구 본동에도 있다. 조선시대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가던 길에 쉬었던 용양봉저정이 용양봉저정공원 옆에 있다. 용양봉저정으로 가는 길 시작 지점을 고구동산으로 잡았다.

서달산 꼭대기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중앙대 후문에서 잠시 도로에 끊긴 뒤 다시 이어지면서 고구동산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고구동산 숲길은 배드민턴장과 농구장이 있는 너른 운동장을 지나 매봉로6길을 만난다. 매봉로6길로 내려서기 전에 운동장 한쪽 모퉁이 깊숙한 곳에 있는 우수조망명소를 들른다. 우수조망명소라고는 하지만 숲에 가려 한강과 한강 북쪽 풍경이 겨우 보인다. 백련산, 안산, 인왕산, 백악산(북악산)이 한강 북쪽에서 줄줄이 이어지고 그뒤에 북한산 줄기가 늠름하게 버티고 있다.

매봉로6길로 내려서서 동양중학교 쪽으로 걷는다. 봄이면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어우러져 피어나고 마을 놀이터 한쪽에 이팝나무꽃이 풍성하게 피어나는 꽃동네다.

동양중학교 정문을 왼쪽에 두고 고갯마루를 넘으면 산동네 작은 가게인 이레마트가 나온다. 이레마트 앞에서 왼쪽으로 돌아 걷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멘트로 포장된 짧고 가파른 오르막길로 오른다. 흑석동작가정교회 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용양봉저정공원 꼭대기가 나온다. 전망데크에 서면 시야가 사방으로 트인다.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마포구 앞 한강까지, 북쪽으로 북한산 능선이 보이고 남쪽으로 관악산 정상까지 풍경이 펼쳐진다.

내리막길로 가다 보면 하늘전망대가 나온다. 전망이 좋아 잠깐 쉰다. 나뭇가지가 감싼 데크길을 따라 걷는다. 가지 사이로 여의도 63빌딩이 빼꼼 보인다. 틈새전망대를 지나 더 내려가면 산비탈 숲에 안긴 둥지 같은 공원 풍경이 펼쳐진다. 어린 소나무 몇 그루를 보았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는 정조 임금의 효심을 기리며 수원의 노송 군락지에 있는 소나무의 후계목을 이곳에 심었다고 한다. 어린 소나무 잎이 맑게 푸르다. 숲에 안긴 공원 한쪽 언덕 위, 커다란 느릅나무 몇 그루가 품은 찻집에 앉아 지나온 길을 생각하며 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찻집에서 용양봉저정까지 직선으로 약 130m다.

용마우물과 용마산

용마우물의 옛이야기가 내려오는 동작구 대방동 용마산은 우리나라 공군 역사의한 뿌리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용마산에 오르기 전에 성남중고등학교에 있는 용마우물을 찾아보기로 했다. 용마우물에 얽힌 전설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옛날에 이 우물에서 용이 나와 학교 뒷산인 용마산으로 날아갔다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이 우물에서 머리는 용의 모습이고 몸은 말의 모습인 전설 속 생명체, 용마가 났다는 이야기다.

운동장 한쪽 모퉁이 등나무 옆에 용마우물이 있다. 우물 둘레에 시멘트로 높은 턱을 만들고 그 위를 시멘트 뚜껑으로 덮었다. 뚜껑 위에 물을 긷는 수동펌프가 고정됐다. 전설이 깃든 우물이라기보다 수십 년 전 마을사람들이 모이던 공동우물 같다.

성남중고등학교에 있는 용마우물.

전설 속 우물의 용이 날아갔다는 용마산으로 향했다. 성남중고등학교 북쪽 삼거리에서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대방배수지 위잔디광장을 지나 숲길로 접어들었다. 용마산 정상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랐다. 도로에 끊긴 숲을 잇는 생태통로를 건너 용마산숲길을 걸었다. 이리저리 난 길을 다 훑고 다니다가 정자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정자에 앉은 아저씨께서 이곳이 꼭대기라신다. 정자 바로 위에 체력단련장이 있고 그 위는 철조망이 있는 담벼락이다. 더 올라갈 곳이 없다. 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산 아랫마을 사람들은 쉴 수 있는 정자를 꼭대기로 여기는 듯 싶었다. 담벼락 옆길을 따라가다가 계단으로 내려서면 올라올 때 걸었던 데크길을 만난다. 생태연못이 있는 쉼터를 지나 배드민턴장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가서 견우와직녀교가 0.1㎞ 남았다는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용마산 견우와직녀교. 도로에 의해 끊긴 숲을 잇는 다리다.

견우와직녀교 부근 숲이 햇살을 받아 형광초록색으로 빛난다. 숲속 의자에 앉아 숲에 퍼지는 온화한 초록빛을 흠뻑 받는다. 초록빛 햇볕 알갱이가 숲을 물들인다. 다리를 건너 숲길을 걷다가 사람들이 공군기념탑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조형물을 만났다. 그순간 성남중고등학교에서 봤던 비석이 떠올랐다. 1950년 10월10일부터 12월15일까지 성남중고등학교 교정은 공군사관학교 보라매들의 배움터였다. 공군본부는 학교 뒷산인 용마산에 1956년부터 1989년까지 있었다. 공군본부를 이전하면서 탑을 세웠다.

1949년 대한민국 공군이 창설됐고, 한국전쟁 때 연락기 20여 대를 타고 맨손으로 폭탄을 던지며 싸웠으며, 휴전까지 118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8495회 출격했다는 글이 탑에 새겨졌다. 마을로 내려가는 넓은 숲길을 걸으며 거대한 공군기념탑의 위용과 용마우물의 전설을 묶어 생각해보았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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