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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공사, 스티브 잡스의 차고 같은 ‘도전숙’ 제공 4년

서울 자치구와 손잡고 무주택 청년 창업 공간 15곳으로 확대

등록 : 2018-05-31 15:11 수정 : 2018-06-0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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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성북구에 1호 공급

강동드론마을 등 특화형 속속

청년들 수도권 이탈 막기 위해

싼값에 공급하는 매입임대주택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도전숙 2호. 2015년 상반기에 입주한 도전숙 2호는 15명의 1인 청년 기업가가 입주했으며, 그보다 1년 전에 입주를 마친 도전숙 1호점과 1분 거리에 있다. 성북구는 “창업자들 간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물리적 거리를 가깝게 한 것”이라고 한다. SH공사 제공

“젊은 창업자에게 ‘스티브 잡스의 차고’ 같은 공간을 만들어주겠다.”

2013년 11월11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와 서울지방중소기업청, 성북구청이 ‘1인 창조기업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내건 모토다. 이 협약은 넉 달 뒤인 2014년 3월17일 성북구에 21세대 규모의 ‘도전숙 1호점’이 공급되면서 결실을 얻는다. 도전숙은 그 뒤 올해 2월12일까지 성북을 넘어 성동·강동·은평·금천 등지의 15곳으로 확산됐다. 올해도 광진구와 동작구에 새롭게 도전숙이 건립되고, 강동드론마을 등 특화형 도전숙도 잇따라 생겨나는 등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도전숙은 서울시가 청년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만든 ‘수요자 맞춤형 매입임대주택’이다. 수요자 맞춤형 매입임대주택은 SH공사가 이미 있는 주택을 사들여 청년이나 창업자,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싼값에 공급하는 주택을 가리킨다. 도전숙은 이 가운데 ‘무주택 청년 창업자’를 위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서울에서 경기·인천 등 지역으로 떠난 30대 순 이동자(전출자에서 전입자를 뺀 순수 전출자 수)는 3만6865명이나 된다. 이렇게 서울을 빠져나가는 30대가 많은 주된 이유는, 서울의 주거비용이 청년 세대가 감당하기에 버겁기 때문이다. SH공사 쪽은 “이런 현상은 언제나 문제였지만,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그 심각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청년들의 소득은 별로 늘지 않았는데, 서울의 주거비 부담은 빠른 속도로 높아지면서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20~30대 젊은층 중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세난 등으로 청년층이 이탈함으로써 서울시 인구는 2016년 5월, 1천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당시 주민등록인구 기준 999만5784명으로, 1988년 인구 1천만 명의 ‘메가 시티'가 됐던 서울이 28년 만에 다시 1천만 명 이하 도시로 떨어진 것이다.

더욱이 이런 청년 세대의 서울 이탈 현상은 서울시의 장기적 성장 동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청년들의 이탈은 서울을 더욱 빠르게 ‘고령사회’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65살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로 인식된다. 그런데 2015년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민 중 고령자는 122만1006명으로 전체 서울 시민의 12.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5년의 4.2%에서 20년 만에 8.1%포인트가 급등한 것이다. 이렇게 노인 인구가 늘고 청년 세대는 서울을 떠남으로써, 서울이 고령사회에 더욱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청년들이 살기 좋은 서울’을 만들기 위해 여러 정책을 내놓았는데, 도전숙도 그중 하나로 출발했다. 기본 모델은 ‘직장과 주거가 하나가 된 형태’로, ‘스티브 잡스의 차고’를 지향하고 있다. 1976년 스티브 잡스는 동료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자신의 집 차고에서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따로 사무실 임대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당시 21살이었던 잡스는 여기서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Ⅰ(원)컴퓨터를 탄생시켰다.

잡스는 애플Ⅰ컴퓨터의 주문이 들어오면 자신의 집 차고에서 컴퓨터를 제작했다고 한다. 차고가 임대료 없는 사무실이 돼 애플 신화가 만들어지는 요람 구실을 한 것이다. 도전숙도 주거 공간과 사무 공간이 함께 있어서 청년 창업자들이 낮은 가격에 주거와 사무 공간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구상한 것이다.

이런 취지가 공감을 얻으면서 그동안 도전숙이 여러 자치구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올해도 도전숙의 확산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은평구가 오는 6월 2호점을 내는 데 이어 성북구도 오는 10월 10호점을 낸다. SH공사에 따르면, 광진구와 동작구도 처음으로 각각 16세대와 36세대의 도전숙 1호를 준비하고 있다.

도전숙의 기능과 형태도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다. 우선 강동구는 ‘강동드론마을’(2017년 5월16일 공고)이나 ‘청년가죽창작마을’(2017년 9월11일 공고)처럼 도전숙에 입주하는 1인 창조기업인의 성격을 좀더 전문화함으로써 입주자들 사이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있다.

강동드론마을의 경우 15개 입주기업 중 절반 이상이 드론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드론사업 관련 입주자들끼리 서로 정보 교환 등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더욱이 강동드론마을은 ‘드론 비행 자유지역’인 광나루 한강드론공원 근처에 있어 입주자들이 드론 시험 비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입지까지 갖추었다.

성북구는 부부형 도전숙에 관심을 쏟아왔다. 지금까지 마련한 총 9개의 도전숙 가운데 3곳의 도전숙을 부부형(4호점, 2016년 8월3일 공고)이나 부부형 포함(8·9호점, 모두 2018년 2월12일 공고) 도전숙으로 꾸렸다.

지역 특화산업과 연관성을 높이는 도전숙도 늘고 있다. 금천구의 도전숙인 G밸리하우스(2017년 3월15일 공고)는 금천구에 위치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 사업장을 둔 청년 창조기업인에게 가산점을 준다. G밸리하우스는 복합단지다. 복합단지 형태란 한 건물에 도전숙과 함께 예술인 주택, 노동자 주택 등이 같이 있는 것이다.

은평구는 올해 6월 공고 예정인 2호점에 지역 전통시장과 새싹점포 청년상인들을 우대할 예정이다.

서울 각 자치구로 다양하게 확산되는 도전숙에서 ‘스티브 잡스의 차고’ 같은 신화를 만들 청년 기업인이 얼마나 많이 탄생할지 기대된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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