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가둘 수 없는 뜻이 모인 곳, 서대문독립공원

유관순, 안창호, 김구, 여운형, 한용운 등 주요 독립운동가 수감
주 청사, 옥사, 취사장, 구치감과 공장 부지 등 복원 과제 남아

등록 : 2026-02-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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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옥사 내부 모습.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백성들의 국적은 일본이다.” “광복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다”라는 말로 독립운동가들을 국가전복을 꾀하는 ‘테러리스트’이자 광복의 ‘무임승차자’로 만든 황당한 수준의 역사 왜곡으로 비판받아온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여러 비위 의혹으로 107주년 3·1절을 코앞에 둔 지난 20일 해임됐다. 이에 독립기념관 노조는 즉시 환영 입장을 냈고 시민들은 이제야 정상을 찾아간다는 반응이다. 역사 왜곡 정상화 과정에서 다가오는 107주년 3·1절이라 서대문형무소가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어느 해보다도 각별하다.

해마다 3월1일이면 서대문독립공원(통일로 251, 현저동)에서는 기념행사로 태극기가 휘날리고 만세 함성이 울려 퍼진다. 서대문형무소의 후신인 서울구치소가 1987년 경기도 의왕으로 옮긴 뒤 이곳은 1992년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조성됐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구.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 인근 통일로변에 조성된 약 11만㎡ 규모의 이 공원에는 독립협회가 중심이 돼 국민모금으로 1897년 건립한 독립문과 서재필 동상,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신 독립관, 유관순 동상, 3·1독립선언기념탑, 순국선열추념탑 등이 자리하고 있다. 2022년 3월에는 공원 오른쪽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통일로 279-24)이 개관하면서 일대는 자주독립의 역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청소년들이 전시관(보안과청사)에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유관순, 안창호, 김구, 여운형, 이회영, 조만식, 강우규 등 주요 독립운동가들과 한용운, 이승훈,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이들만이 아니다. 105인 사건부터 의열단 활동, 조선어학회 사건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거의 모든 독립운동 연루자가 이곳을 거쳐갔다. 1908년부터 1945년까지 수감된 독립운동가는 최소 6만여 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 500여 명이 사형당했다. 이들 외에도 고문, 영양실조, 질병 등으로 숨을 거둔 이도 많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이런 수난의 역사에 대해 민아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학예사는 “알려진 독립운동가 외에 훨씬 많은 이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서대문형무소에 끌려와 고초를 겪고 숨을 거뒀다”며 “관련 자료가 거의 없어 후손들의 증언에 의존해 기록을 정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옥상에서 보이는 서대문독립공원과 형무소 모습. 왼쪽 아래 주차장은 과거 수감자들이 노역을 한 공장 부지이고, 구치감 발굴 조사 현장은 주 청사와 옥사 건너편에 있다.

최초 서대문형무소는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 경성감옥은 일제의 노골적인 국권침탈에 저항하는 한국민이 점점 늘어나자 이들을 대거 체포해 구금하기 위해 1908년 약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목조건물 형태로 건립됐다.

이후 수감자가 늘어나자 1912년 마포구 공덕동에 새로운 감옥을 만들어 경성감옥이라 하고 기존 시설은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을 바꿨다. 1923년 다시 서대문형무소로 이름을 바꿔 수용 규모를 3천 명으로 늘렸다.

광복 이후에는 서울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었고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이 수용됐다. 이후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로 바뀌어 1987년까지 운영됐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순국한 장소인 1923년 지어진 목조건물 사형장 입구에 선 민아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학예사.

민아란 학예사는 “광복 이후 서대문형무소에는 진보당 사건(1958), 민족일보 사건(1961), 동백림사건(1967), 인혁당재건위 사건(1975) 등 치열한 이념 공세 속에서 희생된 인사, 유신정권에 맞서서 반독재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인사가 수감되거나 사형당했다. 이후에도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 많은 민주화운동가가 수감됐다”고 설명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와 불과 2㎞도 채 안 되는 거리에 감옥을 세운 배경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무악재를 넘는 의주대로(지금의 통일로)를 왕래하는 조선인들에게 공포심을 갖게 할 의도였다. 나아가 서대문형무소 뒤편은 안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인왕산과 마주 보는 형세인데 조선시대부터 이곳은 무악재 아래 양지바른 터로 꼽혔다. 특히 ‘영천’이라는 샘이 있어 생기가 흐르는 명당으로 명성이 높았는데 일제는 이 같은 조선의 명당에 감옥을 세워 민족의 기운을 근본적으로 억누르고자 했다.

민아란 학예사는 “일제는 서대문형무소에 독립운동가들을 가뒀지만 그들의 의지까지 가둘 수는 없어 감옥 안에서는 3·1운동을 전후해 수년간 만세운동이 이어졌다”며 “감옥 밖에서 울려 퍼진 만세 소리에 수감자들이 호응해 함께 외치며 연대의 뜻을 잇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과 염원은 1919년 4월10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의회인 임시의정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임시의정원은 국호를 ‘대한민국’이라 정하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선언하는 임시헌장을 제정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다.

구치감 발굴 현장 중 독방이 있던 곳의 모습.

서대문형무소 입구에는 현재 전시관으로 사용 중인 보안과청사와 중앙사, 옥사, 취사장이 있으며 일부 시설은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 민 학예사는 “아직 복원이 이뤄지지 않은 구치감은 독립운동가를 독방에 가둬 특별 감시하던 공간으로 안창호와 윤봉길 등이 수감됐던 장소”라고 설명했다. 283개 감방 가운데 242개가 독방으로 구성된 시설로 사상범으로 분류된 독립운동가를 격리 수용했다는 것이다.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공장 부지는 재소자들이 하루 최대 14시간 노역을 한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는 군수물자 생산에도 동원됐다.

4.1m의 서대문형무소 담장 옆에 3·1절 기념 ‘1919 서대문 그날의 함성‘ 행사 개최 깃발이 보인다.

서대문구, 3·1절 맞아 ‘1919 서대문 그날의 함성’ 개최

기념음악회, 독립운동 재현
근현대 역사테마파크 제안

서대문구(구청장 이성헌)는 2009년 수립한 ‘서대문형무소 보존 및 활용 종합계획’에 따라 단계별 복원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동안 보안과청사, 취사장, 기타옥사와 담장·망루, 여옥사를 복원했고, 독립운동가를 특별 감시하던 구치감 부지의 발굴 조사는 2024년 초 완료됐다. 구는 올해 안으로 구치감 복원 계획을 수립해 올해 말이나 내년 중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하지만 현재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장 부지는 복원을 위한 기본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실정이다. 구 관계자는 “서대문형무소가 지닌 역사적 무게를 고려할 때 온전한 복원은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했다.

한편 서대문구는 지난해 광복 80주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다. 공원 일대에 산재한 유적들을 하나로 묶어 청소년과 외국인 관광객이 체감할 수 있는 ‘근현대사 역사테마파크’로 조성하는 방안이 핵심이다. 이는 흩어진 역사의 조각들을 통합 연계해 교육과 관광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오는 3월1일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서대문구는 서대문독립공원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일대에서 ‘1919 서대문 그날의 함성’ 행사를 개최한다. 하루 전인 2월28일에는 감리교신학대 웨슬리채플관에서 기념음악회도 열린다. 행사 당일에는 독립운동 재현 퍼포먼스, 어린이합창단 공연, 독립선언서 낭독, 만세삼창이 이어지고 독립문까지 약 350m 구간에서 시민 행진이 진행된다. 또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전시가 마련돼 시민 참여를 확대할 계획이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도 3·1절을 맞아 특별전과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전시는 임시의정원에서 국회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을 조명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의회 민주주의의 출발을 보여준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독립선언서 낭독과 작성 체험 등이 마련됐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불의한 법 아래에서 정의로운 사람의 자리는 감옥이다”라며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에 대해 언급했다. 자유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다는 점과 행동하지 않는 다수가 억압을 지속시킨다는 점을 환기하는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2일 엑스(X·옛 트위터)에 안중근 의사가 1910년 중국 뤼순감옥에서 남긴 유묵 ‘빈이무첨 부이무교’(貧而無諂 富而無驕·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다)가 지난 20일 116년 만에 한국에 온 것을 두고 “독립과 자주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강고한 의지와 끊임없는 투쟁으로 성취되고 지켜진다”고 강조했다.

긴 겨울을 지나 봄이 시작되는 3월 첫날 서대문독립공원은 자주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았던 이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공간으로 다시 살아난다. 이들의 희생과 신념은 오늘의 자유와 번영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글·사진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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