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G밸리 노동자들의 든든한 수호자

금천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 상담 1400건, 이용자 7천여 명
상담 넘어 노동청 진정, 노동위 구제 신청까지 무료 대리

등록 : 2026-05-0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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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G)밸리에는 1만5천여 개의 크고 작은 기업이 입주해 있다.

“수습 기간이라며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았습니다.” “경영 악화로 모든 직원 급여를 10% 낮춘 새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라고 합니다.” “해고 위로금을 요구했더니 (본인이 동의한) 권고사직이라서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주말 부업이 본업에 전혀 지장을 안 주는데 징계를 받았습니다.” “(프리랜서) 영어강사인데 임금을 못 받았습니다.” “팀장은 단둘이 있을 때만 제게 폭언과 모욕적인 말을 합니다.” 금천구의 ‘2025년 노동상담사례집’에 실린 상담 요청 내용 중 일부다. 상담을 요청한 이들은 대부분 ‘지(G)밸리’에서 일하는 노동자거나 거주자다. 금천구는 2024년부터 노동자종합지원센터를 위탁을 주지 않고 직접 운영하고 있다.

휴(休)서울이동노동자 가산쉼터.

G밸리의 뿌리는 1960년대 이후 서울 서남권 제조업 생산기지인 ‘구로공단’이다. 1970~1980년대까지 섬유·의류 등 국내 최초의 수출산업공업단지로서 한국 산업화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산업구조 변화로 1990년대 정보기술(IT)·벤처·지식산업 단지로 재편됐고, 2000년 말 공단의 공식 명칭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고 도시형 첨단산업클러스터로 성장했다. 이후 산업단지가 모여 있는 구로동(Guro)과 금천구 가산동(Gasan)을 묶어 ‘G밸리’로 불리게 됐다. G밸리에는 넷마블과 컴투스, 웰크론, 엠씨넥스, 롯데정보통신 등 게임·IT·소프트웨어, 정보통신, 패션·디자인, 정보통신기술(ICT)·지식서비스, 전자·부품 제조 대표 기업을 포함해 1만5천여 개의 크고 작은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곳 종사자들은 대부분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설계·연구, 디지털 콘텐츠 기획·제작·편집, 패션디자인과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금천구의 G밸리 고용 인원수는 지난해 말 기준 13만5319명으로 구로구의 약 2.5배 수준이다.

금천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가산동 퍼블릭가산 A동 511호) 입구 모습.

일자리가 모여 있으니 분쟁도 많다. 부당노동행위 여부는 사용자나 가해자의 행위가 정당한 인사권 행사인지 노동자의 권리 침해인지에 따라 결정되는데 사회 인식과 조직문화, 고용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현실에서는 경계가 모호해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에서도 판단이 엇갈리는 사례가 나온다. 이러니 회사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노동자는 선뜻 나서기를 주저하기 마련이다.

2024년 가산디지털단지 가산퍼블릭 A동 5층에 문을 연 금천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이하 센터)는 G밸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든든한 수호자다. 상담은 평일 낮, 야간, 지하철역 상담 등 모두 552회, 1475건을 진행했다. 금천구에 사는 주민이거나 사업장을 둔 이가 55%이니 타지의 상담 요청도 절반에 가깝다. 전화상담이 53%, 방문상담이 33%, 온라인 9%, 지하철 5% 수준이다.


상담과 공간대여, 쉼이 가능한 센터 실내 전경.

내담자 특성에 대해 전은영 금천구 일자리청년과 주무관은 “건설업, 제조업(포장·배송), 디자이너, 개발자, 사무·서비스업 종사자가 많고, 고용형태는 정규직·계약직·일용직·프리랜서 등 다양하다”며 “정규직은 임금 체불, 부당해고, 과로 등을 주로 호소하고, 계약·일용직은 계약 갱신·연속성이나 실업급여 문제를, 프리랜서는 근로자성 판단 관련 상담이 주를 이룬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서 “구제 기관 안내나 증거 수집방법, 진정이나 구제절차 등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정보를 주고 해결책을 함께 찾는다”고 강조했다. 이런 노력으로 센터는 문을 연 이후 임금체불, 부당해고 8건을 해결했다. 그는 이어서 “노동 약자를 위해 ‘노무상담 권리구제 원스톱 서비스’를 적극 운영 중이다. 공인노무사가 기본·심층 상담 후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노동청 진정과 노동위원회 구제신청까지 무료로 대리한다. 지원 대상은 월평균 임금 300만원 이하의 노동자나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인 금천구 주민”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 센터는 고용노동부의 ‘노동약자 교육 및 법률구조지원사업’에서 전국 대표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은영 주무관은 센터 활동으로 결실을 얻은 눈에 띄는 사례들을 소개했다.

금천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 운영 전반을 챙기며 각종 공모사업도 유치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전은영 금천구 일자리청년과 주무관.

“상담·권리구제 넘어 노동자 커뮤니티 공간으로 진화”

노동자 인권, 건강, 법률 교육
프리랜서·배달노동자 지원도

#1 “환경 관련 기업에서 일한 ㄱ씨는 노사협의회 노동자 쪽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노동자 의견을 모아 사용자에게 전달하자 바로 징계받고 해고 통보까지 받았다. 이에 지원센터가 부당해고 진정을 넣어 결국 금전 보상과 화해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2 “회사 근처에 집까지 얻은 20대 ㄴ씨는 수습 기간이 끝나자 갑자기 지방 근무를 하라고 통보받았다. 센터가 나서서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절차를 진행해 해고 기간 임금 상당액을 보상받았다.”

#3 “옷 판매점에서 일당을 받던 60대 ㄷ씨는 센터의 도움으로 퇴직금 지급을 거부하는 사장을 대상으로 진정해 퇴직금을 받았다.”

#4 “타이 여성 ㄹ씨는 제조공장에서 2년이상 근무했으나 사업주가 변경됐다는 이유로 근로계약서를 재작성하게 해 퇴직금을 받지 못하게 되어 금천외국인주민센터와 협업해 통역사와 노무사가 함께 권리구제 절차를 진행 중이다.”

금천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는 상담과 권리구제만 돕는 곳이 아니다. 전은영 주무관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사회초년생 재테크교육, 인문학 강의도 진행한다. 필수노동자를 위한 근골격계 예방 운동 프로그램, 육아 휴직, 노동법 교육을 운영하고, 프리랜서를 위해 세무, 저작, 계약 등 필수교육도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특히 배달노동자를 위해 배달이륜차 무상안전점검과 소모품 교체 행사를 열고 안전교육, 안전장비 구매비, 생수 지원도 한다. 다양한 문화프로그램도 있다. 감정노동자 싱잉볼 명상, 원예 심리치유 프로그램과 이뿐만 아니라 뮤직브런치, 라탄공예, 유리공예, 반려동물 소품 만들기 등으로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우리 센터는 인근 일터 노동자들의 쉼터이자 놀이터가 됐다. 점심 도시락을 가져와서 드시고, 공유공간을 빌려 커뮤니티 행사도 연다. 오가며 들르는 카페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노동인권 의식이 몸에 스며들고 어느새 가깝고 든든한 친구가 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센터가 문을 연 지 채 2년이 안 됐지만 누적 방문객이 벌써 7천 명을 넘어선 이유다.

1929년 1월부터 4월 초까지 진행된 ‘원산총파업’은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다. 당시 일제는 대륙 침략을 위해 군사작전에 필요한 인원·물자를 보급하고 지원하는 병참기지를 건설하면서 공업화를 추진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주로 항만 하역, 운반, 제유공장, 인쇄, 양복·양화 제작, 우차 운송 같은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사건발단은 1928년 9월 당시 영국계 석유회사였던 문평제유공장의 일본인 관리자가 조선인 노동자를 폭행하고 폭언과 차별 대우를 하면서 발단이 됐다. 일제 폭압 속에 저임금과 부당한 대우까지 감수했던 노동자들의 저항이 원산노동연합회 소속 부두 노동자들의 연대 파업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원산지역 전체가 참여하는 총파업으로 확대됐다. 당시 요구 내용은 단순한 감정적 항의가 아니라 노동조건 개선을 포함했다. 문평제유 노동조합과 원산노동연합회는 최저임금제, 8시간 노동제, 감독 파면, 대우 개선, 단체계약권 등을 요구하며 싸웠다. 이 소식은 유럽과 일본, 러시아에도 전해져 국제적인 지지연대를 이끌어냈다.

노동운동 100년을 앞두고 노동자의 위상과 권리, 노동환경은 일제강점기나 전태일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다. 하지만 지구촌 경제가 되면서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 양산과 특수고용직 문제에 더해 로봇의 노동 대체, 외국인 노동자 폭행 사망, 쿠팡의 미국 정관계 로비, 성과급 지급 관련 삼성전자 등의 노사 갈등 같은 새로운 이슈가 떠올랐다. 소년공이 대통령이 되고 철도기관사가 노동부 장관이 되는, 국가와 공공부문이 ‘노동인권’을 더 챙기는 시대. 노동자의 위상과 권리보호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글·사진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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