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50만 강동의 도전…“어디 살아도 쾌적한 삶”

고덕·명일·강일·상일·둔촌동 vs 천호·성내·암사·길동 격차 커
‘2040 강동 그랜드 디자인’ 수립해 균형발전 도시 청사진 제시

등록 : 2026-04-09 11:53

크게 작게

둔촌주공 아파트를 철거하고 들어선 1만2천 가구 규모의 올림픽파크프레온 단지 전경.

부자는 세금을 덜 내려 하고, 힘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만들려 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손해 보려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에 관여하는 관료 중 다주택자와 비거주 고가 주택 소유자, 부동산 과다 보유자를 업무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정책 담당자들에게 ‘공정한 선택’을 기대할 순 없는 걸까. 미국의 정치 철학자 존 롤스는 그의 책 ‘정의론’(1971)에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자신이 사회 속에서 어떤 위치에 놓일지 모르는 가상의 장막 뒤에 서 있다고 가정해보자는 것이다. 내가 내일 당장 신도심의 아파트 거주자가 될지, 원도심의 노후 주택 주민이 될지 모른다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느 곳에 살더라도 최소한의 삶의 질이 보장되는 규칙'을 선택하게 된다. 롤스의 이 통찰은 도시개발 현장에서 ‘균형발전’의 강력한 명분이 된다. 개발의 성과가 화려한 곳이 아닌, 가장 소외된 곳부터 닿도록 설계하는 것이 바로 공정한 도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원도심 천호동의 다세대 주택 단지 모습.

도시의 균형발전 전략은 세 층위에서 이뤄진다. 국가는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방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두고, 광역단체는 기초단체 간 격차 해소에 방점을 두며, 기초단체는 지역 특화사업, 도시재생과 생활환경 개선, 일자리와 지역 산업 육성, 취약층 보호에 비중을 둔다.

실제로 정부는 지방 우대 재정 정책과 공공기관·기업 이전, 지방 권한 확대, 메가시티 조성과 초광역 경제권 구축, 생활 인프라 균형 등의 정책을 적극 추진 중이다. 서울시도 5년마다 ‘서울시 지역균형발전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선사시대 한강 유역의 삶을 만날 수 있는 암사동 유적 전경. 강동구 제공


이런 가운데 서울 자치구 중 강동구(구청장 이수희)가 지난 2월 인구 50만 명을 돌파하며 균형발전 도시 비전을 담은 ‘2040 강동 그랜드 디자인’을 내놨다. 2023년부터 주민토론회·포럼, 주민 설문, 전문가 자문그룹 회의 등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이다.

강동구는 지난 2월 기준 송파구(64만9천 명), 강남구(55만5천 명), 강서구(54만9천 명)에 이어 서울에서 네 번째로 인구 50만 명을 넘겼다. 구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주거 공급과 도시개발이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교통·일자리·생활 인프라를 함께 확충하고 도시 기능 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며 “‘2040 강동 그랜드 디자인’은 구 전역의 발전 방향을 하나의 틀 안에서 제시하는 장기 청사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주거·교통·일자리·자연·생활 인프라가 특정 지역에 편중되지 않게 해 주민이 어디에 살아도 쾌적하고 안정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불균형을 사전에 조정하기 위한 구조적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강동구 5대 권열별 비전. 강동구 제공

현재 강동구의 9개 법정동 중 고덕·명일·강일·상일·둔촌동은 계획적 신도심이지만, 천호·성내·암사·길동은 자연발생적 원도심으로 중·소규모 개발사업이 진행 중이다. 확연히 구분되는 두 지역은 자연스럽게 다른 입지, 환경에 따른 생활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신도심은 고덕비즈밸리, 첨단업무단지, 일반산업단지 등 대규모 상업과 업무 지역으로 일자리가 발달해 있고 재건축과 개발제한구역 해제 등을 통해 대단지 신축 아파트와 도로, 공원, 교육, 문화 등 기반시설이 계획적으로 조성되고 있다. 이 지역은 재건축과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통해 도로와 공원이 격자형으로 짜였고 권역별 거점 도서관과 대형 공연장 등 복합문화기반시설이 주거단지와 유기적으로 결합해 있다.

반면, 원도심의 경우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천호대로 변을 제외하고 대부분 전통상권인데 대규모 낡은 저층 주거지인 탓에 도로 폭은 좁고 노상주차 공간과 커뮤니티시설은 물론 동 주민센터 중심의 편의시설 등 공간이 부족하다.

구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원도심과 신도심으로 이원화된 도시공간구조의 지역균형발전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먼저 지역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도록 베드타운이 아닌 ‘일하고 머무는 도시’로서 역동적인 자족도시의 면모를 갖춘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고덕비즈밸리, 첨단업무단지, 일반산업단지 등 대규모 상업과 업무시설, 주거, 교통, 교육, 문화생활 등 지역·주민 간 생활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5대 권역별 발전 방안으로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행사업 약 100개를 마련했다.

천호동 주택가 공원에서 휴식 중인 어르신들.

경제, 일자리, 상업, 주거, 역사 테마로 성장 견인

“생활 인프라 확충해
일과 여가, 자연 조화”

천호·성내권은 천호대로를 중심으로 서울 동남권의 성장 거점으로 키우고 강동대로·양재대로 일대는 일자리와 상업, 관광 기능이 함께 살아나는 지역으로 육성한다. 명일·고덕권은 고덕역 주변의 업무·상업·문화 기능을 강화하고, 고덕천 일대를 문화와 휴식을 즐기는 수변 거점으로 조성한다. 암사권은 선사유적과 지역 문화자원을 살려 특색 있는 거리와 한옥마을을 조성해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관광 중심지로 발전시키고, 강일·상일권은 고덕천 재정비와 문화·여가 공간 확충을 통해 쾌적한 수변 생활권을 조성한다. 길동·둔촌권은 대규모 주거단지 개발과 함께 일과 삶, 자연이 조화를 이루도록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조성한다.

구는 주민 삶에서 가장 피부로 와닿는 주거환경 격차 해소를 위해 낙후된 구도심 지역을 대상으로 역세권 활성화 사업, 재건축 재개발·모아타운·신통기획 등 정비사업과 도심 복합개발사업, 특별계획구역 개발 등 노후주거지 개선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2022년 하반기부터 재개발·재건축 등 신·구 도심 주거지에 대한 36건, 4만여 가구의 주거정비사업이 진행 중이다.

경제 격차 해소를 위해 업무시설 유치 등 거리 활성화, 고덕차량기지 입체복합개발과 원도심 내 상업·업무 등 비주거시설을 고밀 복합 개발할 수 있는 사업도 발굴하고 있다. 특히 대규모 주거지 재개발 사업으로 세입자와 원주민이 밀려나지 않도록 상생 방안도 마련 중이다.

광역 교통 체계도 구축 중이다. 대표적으로 2024년 1월 GTX-D 노선 강동구 경유가 확정됨에 따라 김포~강남~강동을 연결하는 미래 교통 기반으로 한 단계 성장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9호선 4단계 연장이 완공되면 강남까지 환승 없이 20분대 진입이 가능해지고, 고덕비즈밸리에 지하철역이 신설돼 입주 기업 출퇴근교통혼잡 해소와 이용 편의 증가가 기대된다. 버스 노선 신설·조정·증차 등을 통해 생활 교통 개선도 추진하고 있다.

대규모 주거단지 입주가 이어지면서 학급 과밀, 학교 부족 등 교육 인프라 문제에 대응할 필요성도 커졌다. 이에 구는 학교 신설을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교육부, 서울시교육청, 강동송파교육지원청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고덕강일3지구 내 (가칭) 서울강솔초등학교 강현캠퍼스, 올림픽파크포레온 단지 내 (가칭) 둔촌동 중학교 도시형캠퍼스, 고덕강일2지구 내 (가칭) 서울강율초등학교 설립(안)을 확정시켰다.

보육 인프라 개선에도 나선다. 보육의 질 향상을 위해 교사 1인당 아동 수를 법정 기준보다 낮추는 ‘강동형 보육 정책’을 추진 중이다. 2023년부터 교사와 아동의 비율을 만 0살반 1:3→1:2, 만 3살반 1:15→1:10 이하로 기준을 개선하고 해당 어린이집에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다. 육아 지원 공간인 ‘아이맘강동’은 현재 11곳을 운영 중이다. 국공립어린이집 확충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 8곳이 개원했고 올해 천호동 2곳도 추가 개원했다.

실질적인 생활권 격차를 줄이기 위한 인프라 확충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강동중앙·숲속도서관이 문을 열어 지역의 독서문화 사랑방 구실을 하고 있으며, 특히 천호동 최초의 공공수영장인 천호어울림수영장과 강일구민체육센터는 생활체육 거점으로 자리 잡으며 원도심 주민들의 문화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신노년층을 위한 문화·여가 인프라도 확충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개관한 ‘강동숨;터’는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로,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강동시니어문화센터를 비롯해 어린이집, 키움센터, 강동문화원이 함께 입주한 세대 통합 복합시설이다.

이수희 구청장은 “5대 권역 개발로 얻는 개발이익이 구민의 전반적인 삶의 수준을 끌어올림은 물론, 주변부나 저소득층의 삶 개선으로 연결되게 할 것”이라며 “어디에 살더라도 삶의 만족도가 높을 수 있도록 주거환경, 교육, 문화, 생활편의 등 모든 혜택을 모든 주민이 고르게 받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도시는 함께 성장할 때 지속 가능하다. 개발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방향이며 그 기준은 언제나 도시 안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균형발전은 선택이 아니라 바람직한 도시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강동구의 ‘균형발전 도시’ 비전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