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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품은 동네 과학관의 고군분투

우리 동네 천체망원경은 ‘윈도XP’로 돈다
R&D 예산 3조원 시대 기초지자체 과학관

등록 : 2026-04-2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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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천문우주과학관 주요 시설 중 하나인 천체투영실. 노원구 제공

과학의 달 4월이 하순으로 접어들며 서울 자치구 행사가 우주를 향한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오는 25일 노원구 중계근린공원 일대에서는 ‘노원, 우주를 품다!’라는 주제로 노원천문우주페스티벌이 열려 30여 개의 체험 부스와 천체 관측 행사가 시민들을 맞이한다. 강서구 강서별빛우주과학관 역시 지난 18일 ‘액체로켓 발사 100주년 기념 특강’과 과학 마술 쇼를 성황리에 마친 데 이어, 25일 야간공개관측회, 26일 휴일가족천문특강(누리호 만들기) 등 다채로운 우주 축제를 쏟아낸다.

우리나라가 미국항공우주국(NASA) 주도의 국제 유인 달 탐사 프로그램인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우주항공청이 출범하는 등 국가적 우주과학 열기가 고조됨에 따라 최근 시민들의 행사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학교 밖에서 과학 교육을 대신 하는 ‘비형식 교육 기관’이자 풀뿌리 과학문화의 거점인 기초지방자치단체 공립과학관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서울시에는 광역 단위의 종합 거점 역할을 하는 서울시립과학관과 서울특별시교육청융합과학교육원 남산분원이 대형 인프라로서 운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자치구에서는 노원구의 ‘노원천문우주과학관’과 강서구의 ‘강서별빛우주과학관’ 단 두 곳만이 우주·천문에 특화된 전문 공립과학관으로서 지역 주민들의 과학문화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노원천문우주과학관의 천체망원경을 이용해 한 어린이가 하늘을 관찰하고 있다. 노원구 제공

카이스트 박사 키워낸 ‘별빛 사랑방’…신규 건립도 이어져

대형 국립과학관이 과학 전반의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인프라를 담당한다면, 아파트 숲과 근린공원에 자리 잡은 자치구 과학관들은 뛰어난 ‘직주근접성’을 무기로 모세혈관 같은 구실을 한다. 박대영 노원천문우주과학관장은 “과학관은 학교처럼 시험이나 성적을 올릴 걱정 없이 재미있게 놀다가 자연스럽게 ‘나중에 과학자가 될 거야’라는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2009년 개관(2017년 우주학교로 개편) 이래 매년 6만~7만 명 수준의 관람객이 꾸준히 방문하는 노원천문우주과학관은 20~30대 직장인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퇴근길 천문대’를 비롯해 천체투영실의 압도적인 시뮬레이션으로 사전에 별자리를 학습한 뒤 실제 관측으로 이어지는 밀도 높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강서별빛우주과학관. 강서구 제공

강서별빛우주과학관 또한 지역 주민들의 훌륭한 ‘별빛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23년 11월 개관 이후 올해 3월까지 7만1천 명이 넘는 누적 관람객이 다녀갔으며, 주말 관람객 절대다수가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생 자녀를 동반한 30·40대 부부일 정도로 가족 단위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강서 과학관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운영사업’ 등 다양한 외부 공모사업에 도전해 확보한 예산으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화 천문교실인 ‘로켓 타고 놀자’를 운영하며 누구나 우주를 경험할 수 있는 포용적 과학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동네 과학관의 가치가 이처럼 입증되면서 새로운 천문과학관도 생겨나고 있다. 중랑구는 지난 16일 면목동 용마폭포공원 일대에서 2027년 상반기 개관을 목표로 ‘중랑천문과학관’ 건립공사 착공식을 열고 첫 삽을 떴다. 지상 3층 규모에 600㎜ 고성능 망원경과 천체투영관 등을 갖추게 될 이곳은 도심 속 아이들에게 우주의 신비를 선사할 예정이다.

동네 과학관의 가장 큰 역할은 미래 우주 인재들의 ‘시작점’이 된다는 점이다. 노원구에서 자라며 어린 시절 지역 영재교육원과 천문우주 과학관을 다닌 뒤 현재 카이스트(KAIST) 전기전자공학부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정현수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 박사는 “어린 시절 집 근처에서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었던 공간들이 과학적 탐구와 호기심을 기르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며 “멀리 가지 않고도 일상 가까이에서 아이들이 과학자의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앞으로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원 과학관 탐구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중평초등학교 6학년 정우선 학생 역시 “빌딩이 많은 서울에서 망원경으로 별을 본 것이 너무 신기해 장차 과학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고 눈을 반짝였다. 특히 정 학생은 언제든 걸어 다닐 수 있는 뛰어난 ‘직주근접성’ 덕분에 무려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꾸준히 노원 과학관의 심화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기본 2개월 단위 프로그램에 지속 참여해 6개월∼1년 이상 다니는 학생들이 적지 않아 동네 과학관만이 가질 수 있는 확고한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과학관의 설명이다.

노원천문우주과학관의 천체망원경 건물. 노원구 제공

망원경은 2014년 단종된 ‘윈도XP’로 제어…지자체 100% 의존의 한계

노원천문우주과학관은 최근 몇 년간 주요 전시관, 천체관측실, 천체투영관을 순차적으로 리모델링해 최신 기술과 과학 정보를 담은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주관측실의 대형 천체망원경은 놀랍게도 2014년 단종된 ‘윈도우XP’와 연동돼 운영되고 있었다. 박대영 관장은 “제어시스템을 교체하려면 망원경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데 시급성에 비해 예산 규모가 너무 커서 구청에 우선순위로 요구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 노원천문우주과학관의 올해 예산은 약 8억3천만원 수준으로 고가의 기자재를 교체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전국적으로 지방재정 여건이 어려워지는 추세에 다른 공립과학관도 비슷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강서별빛우주과학관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심재현 관장은 “급변하는 우주과학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기에는 현실적인 예산의 벽이 너무 높다”고 털어놨다. 강서 과학관의 2026년 기준 연간 운영비는 약 4억3천만원 수준인데, 이 중 인력 운영과 시설 관리를 위한 고정비 3억4천만원을 제외하고 신규 콘텐츠 구매나 체험 장비 업그레이드에 쓸 수 있는 예산은 9천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심 관장은 “지속적인 방문 동기를 제공하기 위해 핵심 프로그램인 천체투영실의 영상 프로그램을 새로 구매하거나 관측기구를 추가 도입하려면 상당한 예산이 수반되지만 열악한 지자체 예산만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랑천문과학관 착공식 모습. 중랑구 제공

직주근접의 눈부신 활약에도 16배 예산 격차가 현실

운영예산 100% 기초지자체가 감당
미래 인재 양성 위해 국가 지원 절실

이는 우리나라 과학관의 구조적인 예산 불균형에서 기인한다. ‘2025년 과학관 운영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4개 국립과학관의 1관당 평균 수입은 약 100억9천만원에 달하는 반면, 94개 공립과학관의 평균 수입은 약 6억1천만원에 불과해 그 격차가 무려 16.3배에 이른다. 더욱 큰 어려움은 공립과학관의 전시·교육 프로그램 개발 예산이다. 기초지자체가 운영하는 공립과학관은 건립 당시에만 국비가 매칭 지원될 뿐, 이후 시설 보수와 인건비, 프로그램 개발 등 모든 운영비는 100% 지자체의 일반회계에 의존해야 한다. 2024년 공립과학관 평균 수입 중 ‘지방비’ 항목은 전년 대비 무려 13.6%나 삭감되며 지자체의 열악한 주머니 사정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러한 예산 부족은 전시물 노후화와 전문 인력 부족으로 직결된다. 실태조사에서는 국내 과학관의 93.5%가 아예 ‘전시품 교체주기 규정’조차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나아가 2024년 발표된 학계의 ‘국립과학관 운영 효율성 증진방안 연구’에서도 과학관 전시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와 전시 전문 인력 확충이 시급하지만, 공공기관의 경직된 예산 구조 탓에 질적 향상에 한계를 겪고 있다고 지적됐다.

R&D 예산 3조원 시대…‘과학문화 인프라’ 위한 정부 매칭 시급

우주항공청 시대, 정부의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3조원을 훌쩍 넘지만 이 거대한 성과를 대국민 소통이나 청소년 교육 등 ‘과학문화’로 확산하는 연결고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우주항공청이 주최한 공청회에서도 이러한 지역 과학관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진단과 제도 개선안이 화두로 올랐다. 당시 발제자로 나선 박대영 노원천문우주과학관장은 국가 과학기술 R&D 예산 투자가 지방의 과학문화 활동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 예산 구조의 한계를 지적했다. 특히, 공립과학관이 창의적 인재 육성과 과학문화 창달을 위한 ‘국가 과학문화 인프라’로서의 특수성을 띠고 있음에도 행정적 지위가 모호해 일반 ‘문화시설’로 묶이며 제대로 된 예산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공립·사립과학관의 자생 역량 강화를 목표로 국립과학관처럼 공립과학관 운영비에도 국비를 보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신설하고, 예산과 인력을 공유하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주 탐사라는 거대과학은 대중의 열광적인 관심과 일상 속 호기심이라는 넓은 저변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돼야만 비로소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동네 아파트 숲 사이, 낡은 윈도XP 컴퓨터로 별을 보면서도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의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할 시점이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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