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새롭고 다양한 맛에 도전해보기

서울, 이곳 l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

등록 : 2026-04-23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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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 중국으로 불리는 대림중앙시장.

1995년에 촬영차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한-중 수교를 맺고 몇 년 지나지 않았던 터라 당시엔 중국을 다루는 방송이 봇물 터지듯 제작되고 있었다. 나는 삼국지 기행이라는 기획으로 허난성, 산시성 일대를 여행하게 되었다. 총 석 달 정도 중국에 체류하며 방송을 찍었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이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그건 바로 음식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식이라고는 짜장면, 탕수육밖에 몰랐던 내가 정통 중국요리를 언제 맛보았겠는가. 원탁에 깔린 화려한 요리엔 젓가락도 못 대고 오직 미판(米飯, 쌀밥) 한 가지에 한국에서 가져간 조미김과 고추장만으로 깨작깨작 석 달을 버텼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그때 나는 다양한 맛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비빔면의 일종인 량피는 포장해 집으로 가져가서 먹어도 면이 퍼지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요즘은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서울에서 다양한 ‘세계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이태원 모스크 근처에 가면 이슬람 문화권의 음식을 마치 현지처럼 즐길 수 있고, 동대문 중앙아시아 거리에서는 여행프로그램에서나 보던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현지 방식 그대로 맛볼 수 있다. 낯선 재료와 생소한 향 때문에 처음엔 주저할 수 있지만, 세계 각국을 여행 다녀본 경험이 누적될수록 타 문화에 대한 장벽은 낮아지고 새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강렬해진다.

서울 안의 외국으로 불리는 이색 거리 중 가장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대림중앙시장이다. 어쩌다 하나씩 중국 식자재를 파는 가게가 섞여 있는 수준이 아니라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완벽하게 이국적이다.

짧고 단단한 중국오이와 단콩 등 중국 채소를 살 수 있다.


중국에 여행 갔을 때 먹어봤던 바로 그 음식, 현지의 생생한 맛을 경험하기 좋은 작은 여행지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귀, 코, 혀, 꼬리 등 육안으로도 이게 어느 부위인지 확연히 알 수 있는 음식의 모양새를 보며 약간의 거부감과 신기함 그 사이 야릇한 감정을 느끼며 탄성을 지르다보면 흡사 멀리 여행 온 듯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대림중앙시장에서 제일 인기 있는 음식은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에 콩기름을 부은 뒤 막대로 밀어 쟁반만큼 커다랗게 부쳐낸 유빙과 중국인의 대표적인 아침 메뉴인 유탸오를 들 수 있다. 중국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가리켜 ‘유탸오’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우리말로 하면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의 식감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기다란 꽈배기 모양으로 튀겨내 바삭한 유탸오를 따뜻한 두유에 담가 먹으면 고소함이 배가 되어 호불호가 있을 수 없다.

유빙과 바오쯔, 유탸오 등 아침 메뉴는 대림중앙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호불호 없는 음식이다.

조금 더 새로운 맛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량피를 추천하고 싶다. 량피는 가라앉힌 전분을 부쳐서 마치 우리나라 칼국수처럼 똑똑 잘라낸 면을 양념장과 고수를 넣어 비벼 먹는 일종의 비빔면이다. 새로운 음식에 선뜻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처음엔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한번 먹고 나면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 면의 쫄깃한 식감이 별미로, 포장해 집으로 가져가서 먹어도 면이 퍼지지 않는다.

설명해주지 않아도 모양으로 어느 부위인지 확연히 알 수 있는 돼지고기.

새로운 맛에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냉면 구이도 재미있는 도전이 될 수 있다. 면을 뽑아 차가운 육수를 부어 먹는 평범한 냉면이 아니라 냉면을 철판에 구워 소스를 부어 비벼 먹는 요리인데, 마치 누룽지탕의 식감처럼 바삭함과 촉촉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독특한 식감이 포인트다. 그 밖에도 씨 부분이 적고 과육이 많아 식감이 좋은 중국오이, 볶아 먹으면 맛있는 단콩 등 고급 중식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는 중국 채소를 사보는 것도 대림중앙시장의 재미 중 하나다.

어쩌면 첫 방문부터 대뜸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울 만큼 맛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즐거움은 경험에 비례하는 법. 별 한 개부터 다섯 개까지 스스로 난이도를 정해 다양한 맛에 하나씩 도전해보면 어떨까. 거창한 해석일지 모르지만 타 문화에 대해 나도 모르게 세워둔 장벽을 허무는 묘한 성취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인디언 격언 중에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오래 걸어보기 전까진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음식은 타인을 이해하고 타 문화권에 대한 경계를 허무는 가장 쉬운 도전이 될 수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을 대림중앙시장에서 찾아보자.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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