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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마을에 뜬 맥가이버

등록 : 2017-04-1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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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손재주를 활용해 이웃을 돕고, 마을을 가꾸는 장양훈씨. 은평구 산골마을을 화사한 꽃으로 꾸미기 위해 지난 7일 마을회관에서, 버려진 탁자를 재활용해 나무화분을 만들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 7일 오후 마을회관 ‘응암산골 드림e’(은평구 통일로 579-20)에서 만난 장양훈(62)씨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목장갑을 낀 채 절단기로 목재를 자르고, 잘린 목재에 아교를 바른 뒤 타카로 못을 쏴 원하는 모양으로 고정했다. 도면 없이도 작업 10분 만에 나무상자 하나를 뚝딱 만들어냈다.

“여기다 초록색을 칠하면 예쁜 나무화분이 되지요. 이런 거 몇 개면 돈을 들이지 않고도 마을 골목을 화사하게 꾸밀 수 있어요.” 장씨는 버려진 탁자를 재활용해 나무화분을 만들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에 2만~3만원 하는 나무화분이 12개로 늘어났다.

타고난 손재주가 있는 장씨는 경력 40년이 넘는 나전칠기 전문가다. 공사 현장 등에서 전기와 미장 기술도 틈틈이 어깨너머로 익혀 못하는 게 없다. 그래서 산골마을 주민들은 전기 누전이나 수도 막힘 등 집수리가 필요하면 맨 먼저 장씨부터 찾는다.

부서진 담장과 깨진 유리창을 보수하고 미끄럼 방지턱을 설치하는 등 마을 곳곳에 장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방범 활동을 하며 집수리 등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다는 걸 알게 됐죠. 부족한 제가 이웃과 마을에 보탬이 된다니 기쁘죠.” 장씨가 17년째 집수리 등 이웃돕기를 이어온 이유이다.

장씨는 도움이 필요한 곳을 직접 찾아나서기도 했다. “어르신들이 미안해하며 부탁을 잘 못해요. 특히 차단기가 없거나 전기선이 오래된 집을 방문했을 때는 유심히 살펴보죠.” 장씨는 누전으로 인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주변과 힘을 합쳐 어르신들의 집에 전기공사 등을 해주고 있다 한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주변에 수소문해 일을 해결하죠.” 마을 곳곳의 벽화와 미니태양광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탁월한 장씨가 주변에 수소문해 설치한 것이다. 마을 주민 김영태(79)씨는 장씨에 대해 “언제나 제일 먼저 나서고,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산골마을 맥가이버”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엘이디(LED) 등이 시력에 좋고 전기료도 많이 아낄 수 있죠. 서울시 전체 가구 가운데 30% 정도만 교체해도 원전 하나를 줄일 수 있어요.” 산골마을의 엘이디 등 설치율은 응암산골 90%, 녹번산골 30%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장씨가 주민들을 설득하고, 재료만 사오면 직접 엘이디 등을 설치해준 결과다.

마을회관에는 망치와 톱, 전동드릴 등의 공용 공구가 마련돼 있다. 주민들이 비싼 공구를 사지 않고도 쓸 수 있도록 장씨가 갖고 있던 것을 마을회관에 가져다놓은 것이다. “서로 돕는 마음이 많아져 더 살기 좋은 마을이 되면 좋겠습니다.”


김정엽 기자 pkjy@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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