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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머리 깎은 뒤 샴푸해요”…장애 배려 미용실이 안겨준 행복

전국 첫 장애인 친화 미용실, 노원구 상계동에 23일 정식 문 열어
1층 35평에 맞춤 의자, 장비 갖추고 커트·파마·염색 등 서비스

등록 : 2022-09-29 14:45 수정 : 2022-09-2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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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와의 동행을 선도해온 노원구가 최근 상계동에 장애인 친화 미용실 ‘헤어카페 더휴’를 선보였다. 미용실은 장애 배려 편의시설을 갖추고 다양한 장애 유형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는 여러 유형의 장애인들이 안전하고 편하게 미용 서비스를 받고, 차 한잔 하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 시범운영 기간인 9월16일 오전 더휴에서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오성환씨(왼쪽)가 머리를 깎은 뒤 샴푸대로 옮겨지고 있고, 지체장애인 우화숙씨(오른쪽)는 염색 시술 뒤 앉은자리에서 대형 태블릿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장애인 생활 편의와 권익 증진 위해 이용료는 시중가 절반”

장애 이해 교육받은 미용사 2명이

예약제로 운영하고 복지사도 상주

취약계층에겐 50% 할인 혜택 줘


“태어나 처음으로 미용실에서 머리 깎고 샴푸해 정말 시원하다.”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오성환(54)씨가 전동휠체어에 앉은 채 온 힘을 다해 한마디씩 짜내듯 힘겹게 말했다. 그는 9월16일 오전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헤어카페 더휴’에서 커트를 했다. 더휴는 노원구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장애 유형별 편의시설을 갖춰 만든 장애인 친화 미용실이다. 정식 개소에 앞서 시범 운영 중이었다.

더휴 실내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노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 소장인 오씨는 활동지원사, 직원과 함께 센터 차량으로 미용실을 찾았다. 1층 노상 주차장에서 전동휠체어로 미용실 안까지 편안하게 들어왔다. 약 35평 규모의 미용실은 휠체어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실내 공간이 넉넉했다.

오씨는 미용사 안혜영(33)씨를 보자마자 알아듣기 힘든 언어로 말을 건넸다. 같이 온 직원이 다가와 ‘많이 움직이는데 깔끔하게 커트가 될지’ ‘머리를 감겨주는지’ 등을 물어본 거라고 알려줬다. 안씨가 “좀 움직여도 괜찮고 머리 깎고 샴푸도 해드려요”라며 “불편한 데가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라고 친절하게 말했다.

오성환씨가 타고 온 전동휠체어에 앉아 커트 서비스를 받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20여분 꼼꼼하게 머리를 깎은 뒤, 안씨는 휠체어를 뒤로 젖혀 바로 옆 샴푸대로 조심스레 돌렸다. “머리를 말끔히 깎고 감겨주기까지 하니 너무 좋다”며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미용실을) 알려줘야겠다”는 오씨의 말을 활동지원사 박병원씨가 전했다. 그는 “4년 넘게 (오씨를) 봐왔는데 오늘 표정이 가장 밝은 것 같다”고 했다.

장애인 친화 미용실 ‘헤어카페 더휴’는 지난 23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노원구는 서울 자치구 가운데 두 번째로 장애인 인구가 많은 곳으로 2020년 기준 등록 장애인 수가 2만7천여 명이다. 주민의 5%를 넘는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개소식에 참석해 “‘약자와의 동행을 선도하는 노원구’라는 이름에 걸맞게 구정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하나로 장애인 친화 미용실을 선보여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노원구가 앞서 시작한 장애인 친화 시설들이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나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미용사 안혜영씨가 커트가 끝난 뒤 이동 샴푸대에서 오성환씨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노원구는 지난해 12월 ‘장애인 친화 이·미용시설 설치 및 운영’ 조례를 만들었다. 올해 2월 장소 임대차 계약을 마치고 ‘장애인 등 편의법’에 맞춰 공간을 설계하고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운영은 민간 전문기관이 위탁 방식으로 맡는다. 3월 심의를 거쳐 마들종합사회복지관이 선정됐다. 노원구는 구비로 예산을 편성해 운영비와 인건비를 보조금 방식으로 지급한다. 박미향 노원구 장애인친화도시팀장은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이 안전하고 편하게 미용 서비스를 받고 차 한잔 하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고 말했다.

헤어카페 더휴는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이다. 도로변에서 바로 이어지는 1층인데다 6개 면의 노상 주차장도 갖췄다. 미용실 입구 오른쪽엔 급속충전기가 있는 전동휠체어 보관 공간을 마련했다. 자동문을 갖춘 장애인 전용 화장실도 있다. 휠체어에서 의자로 옮겨주는 장애인 전동이동 리프트가 마련됐고, 고강도 자재를 쓴 바닥엔 점자 블록도 설치했다.

헤어룸 3곳 가운데 2곳엔 맞춤형 의자가 있고, 한 곳에선 전동휠체어에 그대로 앉아 서비스를 받는다.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샴푸대도 하나씩 딸려 있고, 탈의실엔 누워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게 침대도 있다. 휴게공간엔 커피머신에 기다란 우드슬랩 테이블이 있어 편안한 카페 분위기가 느껴진다.

노원구의 장애인 친화 미용실 조성은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이뤄졌다. 그간 미용실을 이용하며 겪는 불편과 불안을 호소하는 장애인이 적잖았다. 우화숙(64)씨도 이들 중 한 사람이다. 2살 때 소아마비에 걸린 뒤 평생을 지체장애인으로 살아온 그는 미용실에 갈 때마다 불안했다. 전동휠체어는 밖에 두고 들어가야 했고, 실내에서 목발을 짚고 이동하다가 머리카락에 걸려 미끄러진 적도 있었다. 머리를 감는 곳은 턱이 있고 물기가 많아 이용이 어려웠다.

16일 오전 우씨는 파마를 하기 위해 더휴를 찾았다. 중계동에 사는 그는 지하철 7호선을 타고 마들역에서 내려 전동휠체어로 15분 정도 걸려 도착했다. 그는 “수락산역이 더 가깝지만, 엘리베이터가 있어 마들역이 더 편하다”고 했다. 전동휠체어를 실내 보관 공간에 두고 우씨는 목발로 헤어룸 의자에 가 앉았다. 이애리(48) 실장이 반갑게 인사하고 머리 상태를 점검했다. 우씨는 파마 대신 염색을 하기로 했다.

노원구 장애인 친화 미용실은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이동 편의를 위한 시설도 갖췄다.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다. 도로변에서 바로 이어지는 1층에 있고, 6개 면의 노상 주차장도 마련했다. 사진은 9월16일 오성환씨가 미용실을 나오는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염색 시술이 끝난 뒤 우씨는 의자 앞 대형태블릿으로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서 들었다. 20여분이 지난 뒤 이 실장은 의자를 완전히 뒤로 젖힌 뒤 옆 샴푸대에서 그의 머리를 감겨줬다. 우씨는 “앉았던 의자에서 그대로 누워 샴푸를 하니 공주가 된 기분이다”라며 “다른 손님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우씨는 “더 많은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장애인이 많이 사는 월계동, 중계동 등에도 미용실이 생기길 기대했다.

미용사 2명은 공채로 뽑았다. 위탁운영 기관인 마들종합사회복지관은 장애를 배려한서비스를 할 수 있는 미용사 선발에 공을 들였다. 박종두 마들종합복지관 부장은 “채용단계에서 장애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폈다”고 했다. 채용 뒤 장애 인식과 서비스 교육도 진행했다. 사회복지사 1명도 상주한다. 예약 업무를 맡고 복지 서비스 안내와 연계를 돕는다.

이애리 실장은 경력 25년이 넘는 베테랑 미용사다. 그는 올해 장애인활동지원사 교육에 참여한 뒤 채용 정보를 보고 지원했다. “활동지원사를 바로 하기는 부담스러워 미용 경력을 살려 일하는 쪽으로 알아봤다”고 했다. 일반 미용실에서 장애인들이 겪는 불편을 많이 봐 이들의 불편을 최대한 덜어줄 수 있게 서비스하려 한다. 그는 “실수 없이 하고 싶은 마음에 긴장도 되지만, 난생처음 커트 뒤 샴푸를 하거나 파마·염색을 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안혜영씨의 미용 경력은 3년 남짓이다. 그는 미용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7월부터 두 달 동안 장애 이해 교육, 장비 이용 방법을 익혔지만 막상 시범 운영 땐 장애 유형이 다양해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안씨는 “어떤 유형의 장애인이 올지 예상하기 어려워 좀 힘들지만, 서비스를 받고 기뻐하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헤어카페 더휴는 장애인 편의시설로 노원구 등록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다. 이용료는 사전에 장애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희망 가격대를 반영해 정했다. 양인모 장애인친화도시팀 주무관은 “장애인의 생활편의와 권리 증진을 위한 사업인 점을 고려해 시중 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책정했다”고 전했다. 커트 6900원, 염색 1만5900원, 파마 1만9천원, 클리닉 2만2천원, 열 파마 3만9천원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에게는 50% 할인 혜택이 있다.

더휴는 10월4일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 노원구 등록 장애인은 전화나 구청누리집에서 사전예약해 이용할 수 있다. 휴무일인 매주 수요일과 공휴일을 빼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한다.

한편 노원구는 장애인 편의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앞서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 자치구 최초로 장애인 전동보장구 보험 가입을 시행했으며, 올해부터는 장애인 이동기기 수리비 지원 한도를 큰 폭으로 상향했다. 전동휠체어 운전연습장 설치, 장애아동을 위한 놀이 공간 조성 등 맞춤형 정책을 지속해서 펼칠 예정이다. 오승록 구청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장애인과 그 가족이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장애인 친화 사업을 확대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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