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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 간섭에 괴물로 변해버린 김중업의 유작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상징물 ‘평화의 문’

등록 : 2017-11-02 14:10 수정 : 2017-11-0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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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만평 올림픽공원 입구에

기념비적인 거대 조형물

조선의 처마선 살리려 했으나

중력을 거스른 처마의 선

평화의 문 전경

송파구에는 올림픽공원이 있다. 축구장 200개는 너끈히 들어가고도 남는 43만평의 넓이에 문화 시설과 스포츠 시설들이 널찍하게 터를 잡았다. 혹자는 미국에 센트럴 파크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올림픽공원이 있다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하지만, 설렁탕과 스파게티를 비교하는 것처럼 비슷하다고 막무가내로 견주기엔 무리가 있다.

잠실대로에서 공원의 입구를 여는 상징성 짙은 커다란 문이 ‘평화의 문’이다. 1988년에 올림픽을 서울에서 개최하며 우리의 자긍심을 세우고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마련한 기념비적 조형물이다. 전쟁으로 망가진 땅에서 가난에 찌든 시절을 지나 세계의 축제를 열 만한 나라로 성장했으니 얼마나 가슴 벅차고,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을까? 그 큰 임무를 김중업 선생이 맡아 마지막 작품으로 남겼다.


김중업의 마지막 작품 ‘평화의 문’

김중업은 김수근과 함께 한국의 현대 건축을 연 사람으로, 누구나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음 직한 큰 건축가고, 젊은 시절엔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사무실에서 3년여 일하며 영향을 받았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많지만 서울에 있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프랑스 대사관과 종로의 31빌딩, 서강대 본관 등이 있다. 안양의 유유산업 공장은 지금은 김중업박물관으로 쓰이고 있고, 주변 환경도 예술 전시장으로 개축되었으니 그의 자취를 따라 가보고 싶다면 한번 들러볼 만하다.

1985년 평화의 탑 공모전에는 여러 건축가가 참여했지만 선생만큼 심각한 자세와 뜨거운 열망으로 도전한 이는 드물어, 역사적 프로젝트는 그의 손에 맡겨졌다. 그는 생전에 전통 기와지붕의 후덕하고 완만한 가벼운 처마 선과 버선 끝처럼 상큼하게 올라간 추녀를 좋아했고 불교 사찰의 입구와 오르는 길목을 지키는 문을 언급하곤 했다. 많은 이들이 조선의 처마 선을 현대 건축으로 표현하려 애썼지만 그의 노력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가 사랑하고 감탄해 마지않았던 전통적 모티브는 그의 작품 여기저기에 흔적을 남겼고 평화의 문은 프랑스 대사관과 함께 그런 노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평화의 문 안쪽 모습

“크다, 작다” 간섭 끝에…

가벼운 비상을 꿈꾸던 그의 평화의 문은 커다란 열망만큼이나 무거운 시련을 안긴다. 관이 주도하는 건설 사업이 전문가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군사정권이 주도하는 호기로운 프로젝트였으니 건축은 기념비이고 주변은 광장이어야 했다. 너도나도 삿대를 쥔 문화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뱃사공들이 그 무거운 문을 산마루에 걸어놓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최초의 디자인은 24m 높이에 74m 폭을 지녔고, 곡선의 철골조 지붕은 폭 37m에 한쪽 날개만 400톤에 가까운데, 캔틸레버(한쪽 끝만 고정되어 달아맨 구조)로 중앙의 기둥에 묶였다. 광화문 높이가 20m, 폭이 30m가량 되니 상상해보시라. 애초에 사뿐히 떠오르기는 힘든 엄청난 계획이었다.

그걸 스케일이 남달랐던 뱃사공들께선 작다셨단다. 완전히 새 디자인이 되어버린 수정 작업 결과 높이 90m에 폭 130m의 괴물이 탄생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이번엔 크다고 강짜를 부렸다. 그러자 건축가는 그 괴물을 모양은 그대로 둔 채 45m높이에 75m폭으로 딱 절반으로 축소 복사해버렸다. 무슨 생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한 판단이었는지는 짐작도 안 되나 어쨌든 그 안이 통과되었다. 조삼모사가 따로 없다. 결국 선생은 생전에 완공을 보지 못했고, 우여곡절 끝에 규모는 처음 안과 유사하게 마무리되었다.

평화의 문 처마선

환경조각, 가장 알맞은 크기 맞춰야

오래전에 하던 일에, 신축 건물 예산의 일정 부분은 반드시 공공예술 마련에 써야 한다는 재미있는 법을 지키느라 당시 행세 꽤나 하던 예술가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긴 파마머리를 출렁이며 그 양반이 내민 명함에는 분식집 메뉴판처럼 온갖 직함이 빽빽이 박혀 있었다. ‘작품’ 설명 중 내 귀에 와서 꽂힌 것은 규모에 관한 그의 제안이었다. 그가 만들어온 모형의 실제 크기는 어떠하고 가격은 얼마인데, 크기를 두 배로 하면 조각품의 가격도 두 배이며,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동료가 신호를 보내고 나서야 나도 모르게 그를 쏘아보던 무례한 눈빛을 거두었다.

환경조각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미술관의 전시장이 아닌 일상의 환경에 놓이는 조각을 말한다. 놓일 자리 부근에 있는 모든 사물과 멀리 보이는 배경에다, 사람들의 동선과 시선, 계절의 변화까지 마음 쓰며 가장 알맞은 크기와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물론 그 크기가 작가가 원하는 작품의 가장 효과적인 표현을 보장하는 스케일이어야 함은 물론이고 유지 관리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도 돈만 더 주면 두 배로 만들어주겠다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상 모든 사물은 존재하기 위한 ‘적확한 규모’(스케일)라는 것이 있다. 스케일이 변하면, 본성은 그대로인데 단순히 크기만 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건 마치 미쳐 날뛰는 녹색 괴물 헐크가 지적인 배너 박사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고, 엠파이어 스테이트를 기어오르던 킹콩이 서커스에서 재롱떠는 원숭이와는 전혀 관계없는 동물인 이치와 같다. 당신 창가에서 짹짹이던 참새가 수백 배 커져 가마솥만 한 눈알을 번득이고 사람 몸통만 한 발톱을 방 안으로 들이밀어도 여전히 귀엽겠는가 말이다.

적당한 스케일 무시한 괴물 건축들

건축가들이 스케일을 무시해 터무니없어진 건물은 사방에 널렸다. 조그만 모형으로 만들어 들여다보면 예쁘고 마음에 쏙 드는 그럴듯한 물건도 백배, 천배 튀겨놓으면 끔찍한 괴물이 따로 없는 일이 숱하다. ‘가든 파이브’나 ‘서울 시청사’ 등은 설계자가 작은 모델 보고는 좋아라 하다 완공 후에 뜨끔했을 성싶은 물건이고, 처음부터 무작정 큰 규모를 상정하고는 넓은 캔버스 제대로 채우지도 못한 ‘롯데 타워’도 허탈하다.

모두가 잘 아는 친숙한 형상을 표현한답시고 스케일을 부풀리면 꼭 사달이 난다. 예술의 전당이 부채와 갓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얘기는 누구나 다 아는 개그다. 조선백자의 선을 표현했다던 잠실 주경기장을 가장 한국적인 체육시설이라 이르는 사람도 있으니 어이없다. 전통 건축에서 모티브를 땄다며 강아지를 코끼리로 만들어놓은 ‘독립기념관’과 ‘세종문화회관’ 등은 우리 시대의 전통을 만들기보다 옛것을 베끼려다 우스운 꼴을 면치 못했다.

김중업 최고의 건축 프랑스대사관

김중업 선생의 프랑스 대사관은 전통의 선과 형태를 당시의 기술과 모습으로 구현한 최고의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고심했지만 외부의 압력과 허튼 참견으로 평화의 문은 전통 처마 선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스케일적 한계를 벗어나 버렸다. 또한 기념비는 영원을 말하고, 영원하려면 중력에 순응하는 형태여야 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부피가 커지며 중력을 거스르는, 그늘지고 부담스러운 형태를 어떻게 가볍게 날아오르는 형상으로, 행복과 평화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겠는가? 파리의 에펠탑도, 워싱턴 기념탑, 심지어 피라미드도 그렇지 않다.

평화의 문은 기념비적 의미로 조성된 환경이다. 풍경을 반사하고 몸가짐을 차분히 하라는 리플렉팅 풀(반사연못)에서는 왁자지껄 물 튀기며 카약 체험이 한창이다. 알록달록 천막 치고 음식 냄새 피워 호객하며 주변의 온갖 무대에 고성방가가 가득하다. 건물이 의도된 느낌을 가지려면 스케일과 형상이 적절해야 하듯, 관계 기관들도 앞뒤는 재며 행사를 기획해야 할 것이다. 사람 냄새 나는 공원은 좋지만 평화의 문과 연못 주변 최소한 공간은 선생의 생각과 염원의 흔적이라도 남았으면 싶다. 그들이 이곳에 원하는 것이 단순히 행락과 유원지뿐이라면 ‘평화의 문’은 개 발에 편자다.

그리도 애쓰신 선생의 마지막 수가 참으로 안타깝다.

글·사진 안준석ㅣ경기대 건축학과 교수ㅣ건축가(AIA)·공학박사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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