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탄생

“연출, 구조적으로 특권 가져…‘소통 중심’ 새 연출 지향”

연극의 탄생 ④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부문 선정 강보름 연출이 들려주는 ‘새로운 연출’론

등록 : 2021-07-0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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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고통 크고 돈 안 되는 연극이지만

‘청년’ ‘장애인 차별’ ‘여성’ ‘노동’ 배우고

소수자 목소리 내게 해주는 강력 무기


외부 향했던 질문, 2018년 미투 겪으며

연극 내부 문제에 대해서도 던지게 돼

‘권력자 연출→소통자 연출’ 전환 시험중



국립극단 무대에 장애인 배우 세우고

“그들과 함께 새 연출로 무대 완성” 꿈꿔

국립극단이 올해 작품개발 사업으로 진행하는 ‘창작공감’의 연출부문에 선정된 강보름 연출이 지난 6월24일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밝게 웃고 있다. 강 연출에게 연극은 사회의 차별을 비판하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이지만, 강 연출은 그 연극이 만들어지는 구조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적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저는 기존의 정형화된 연출가 역할에 부합하지 않고, 부합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연출을 ‘물꼬를 트는 사람’ 정도로 소박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립극단이 올해 작품개발 사업으로 진행하는 ‘창작공감’의 연출부문에 지난 3월 말 선정된 강보름(29) 연출의 ‘연출론’이다. 지난 6월24일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만난 강 연출이 밝힌 연출론은 ‘젊은, 신진, 여성 연출가’가 불평등한 세계와 역시 불평등한 연극계에 던지는 ‘외침’으로도 들렸다.

강 연출은 2010년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연극을 접했다. 1학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계속된 연극반 활동은 그 당시에는 “재미있는 취미활동 중 한 부문”이었다. 그러나 강 연출은 졸업 뒤 그 ‘취미활동’을 ‘직업’으로 삼았다. “그래도 졸업하고 나니 제일 관심이 가는 진로가 연극이었다”고 한다.

모두 다 아는 사실이지만 경제적 요인은 아니었다. 강 연출도 “연극은 정신적인 고통은 큰데 돈은 안 되는 작업”이라고 연극을 설명했다. 그런데도 그가 연극 연출가가 된 것은 “그런 어려움을 보상할 만큼의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무얼까? ‘배움’이었다. 강 연출은 졸업 뒤 쉼 없이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작품에 도전했다. 그는 2017년 서울문화재단의 ‘최초예술지원사업’ 지원으로 채만식의 소설을 극화한 <레디메이드 인생>을 무대에 올렸다. 1930년대 고학력 청년의 실업 문제를 다룬 원작은 오늘의 청년 문제를 다시 되돌아보게 했다.

2018~2020년에는 장애 문제를 다룬 ‘제로셋 프로젝트’와 극단 애인의 작업에 스태프로 참여했다. 차별받고 소외돼온 장애인 문제를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2018~2019년에는 근현대 시기 여성노동자를 다룬 <모던걸 타임즈>를 연출하면서 페미니즘 문제에 접근했다. 또 이달에는 <여기, 한때, 가가>라는 작품을 연출한다. 성 소수자들의 일상생활을 다룬 내용이다.

이렇게 강 연출은 하나하나 작품을 해나가면서 ‘청년’ ‘장애인 차별’ ‘여성’ ‘노동’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한 세상의 대응과 차별을 깊이 생각했다. 그에게 연극은 부조리한 사회에 대항해 소수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였다.

그런데 강 연출은 이렇게 연극계에서 경력을 쌓아가면서, 점차 자신에게 ‘무기’를 제공해준 연극계를 되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특히 2018년 터져나온 연극계 내부의 ‘미투 운동’이 큰 계기가 됐다. 그 일을 계기로 “기존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에 대해 질문하고 싶어서 연극을 했는데, 연극이라는 구조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구나” 하는 자각이 커졌다고 한다.

그는 이를 계기로 우선 자신이 연극계 내에서 맡은 역할인 ‘연출’을 되돌아보았다.

“연출은 연극계에서 구조적으로 특권을 가진 포지션입니다. 이는 곧 잠재적 ‘위계폭력 가해자’라는 위치성을 갖는다는 걸 말합니다.”

연극계 일부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연출가’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소통이 부재한 카리스마는 어떤 경우에는 ‘폭력’이 돼서 연극을 같이 하는 동료에게 다가오는 게 현실이다.

‘젊은, 신진, 여성’ 연출가로서 강 연출은 이와는 다른 모습의 연출을 하고 싶다고 한다. ‘지시하는 연출’이 아니라 ‘대화와 소통’을 중심에 두고 하는 연출이 그것이다.

“연출은 연극의 전반적인 것을 다 총괄하는 역할이어서 무게감이 큽니다. 저는 오랫동안의 자기 고민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소통해나가는 연출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그는 이런 역할의 연출을 ‘물꼬를 트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강 연출은 “그를 위해서는 권력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 같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공연에 올라가서까지도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강 연출은 또 연출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더 나아가 “내가 속한 연극계 공동체가 비장애 중심적이라는 문제의식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이런 강 연출의 문제 제기는 올해 ‘창작공감’ 연출부문에 낸 <미스핏 하우스>(가제)라는 기획안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미스핏’은 개인과 그를 둘러싼 환경의 물질적 배치가 상호 불일치할 때 발생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미스핏하우스>는 관객참여 형식으로, 극장과 공연예술을 둘러싼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 차원의 경계를 경험하는 것을 목표로 기획되었다.

<미스핏 하우스>는 배우들이 국립극단 안팎의 공간을 이동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관객들은 한 공간에서 20분을 머문 뒤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비장애 등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배우들의 일상과 고민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과정에서 어쩌면 국립극단 내의 ‘미스핏’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강 연출은 더 나아가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본인 또한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고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강 연출은 올해 ‘창작공감’ 연출부문에 선정된 것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해보지 않은 작업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국립극단 무대에서 장애인 배우가 공연한 적이 없습니다. 장애인 창작자와 비장애인 창작자들이 이 곳에서 함께 공연을 만드는 것이 갖는 의미가 저에게도 정말 큽니다.”

강 연출의 작품은 올해 12월 쇼케이스 형태로 무대에 오른 뒤 내년에 정식 작품으로 다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물꼬 트기’를 강조하는 그의 연출이 장애인 배우들과 함께 어떤 결과물을 낳을지 기대된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환자들의 목소리’ 연극에 담기

“완전한 치유가 아니라 완전한 치유로부터의 자유를 원한다.”

지난 6월24일 오후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스튜디오 하나’에서 상영된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끝부분에 나온 대사다. 2020년 7월 대학로 무대에 올려졌던 이 연극은 실제 질병을 앓는 환자들이 직접 ‘시민배우’로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됐다.

이날 스크린 앞에는 ‘창작공감’ 연출부문에 선정된 연출가들과 국립극단 관계자들이 자리를 지켰다. 이번 공동체 상영은 ‘창작공감’ 선정 연출가들이 매달 진행하는 워크숍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올해 ‘창작공감’ 연출부문의 공통주제가 ‘장애와 예술’이어서, 장애인처럼 사회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대표적인 존재인 환자들의 목소리를 연극을 통해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상영이 끝난 뒤에는 이 연극 기획자인 조한진희 시민단체 ‘다른몸들’ 대표와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조한 대표는 “우리 사회 중증 장애인의 어려움을 잘 알지만,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도 역시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심한 질병을 앓으면서 재발을 반복하는 환자의 경우, ‘멀고 먼 완치 상태’만 바라보는 생활보다는 환자인 상태에서 그의 목소리를 사회에서 들어주는 것을 더 원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날 스크린으로 본 연극 속 환자들의 외침이 올해 ‘창작공감’ 연출부문에 선정된 강보람·김미란·이진엽 연출을 통해 어떻게 ‘장애와 예술’이라는 주제 속에 통합될지 궁금해진다.

글 김보근 선임기자, 사진 정용일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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