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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쓰레기 배달 왔습니다!” 유쾌한 ‘새활용 자원순환’ 실험

등록 : 2022-02-1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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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구독 프로젝트는 업사이클링 전문 사회적기업 ‘터치포굿’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진행한 실험 프로그램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소재들을 수거, 소독해 구독 방식으로 제공했다. 자녀를 둔 30~40대 부모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어린이집, 복지관 등 단체 신청도 꽤 있었다. 총 107명이 참여해 버려지는 자원을 되살리는 경험을 했다. 구독 서비스 참여자 장서연씨의 딸 연서(8), 아들 유근(3)과 김소린씨의 딸 시유(8)가 지난 3일 장씨 집 거실에서 재활용되지 않고 버려지는 소재를 활용해 놀잇감을 만들어 가게 놀이를 하고 있다.

새활용 전문 사회적기업 ‘터치포굿’, 쓰레기 구독 프로젝트 추진중

렌즈통 등 5개 소재, 어린이·어른 107명 구독해 놀잇감으로 활용

“포도 맛 솜사탕 주세요~.”

8살 난 시유가 친구 연서네 집에서 가게 놀이를 한다. 시유 엄마 김소린씨와 연서·유근엄마 장서연씨가 식탁에 앉아 아이들 노는 모습을 지켜봤다. 연서와 3살 난 동생 유근이는 가게 주인, 시유는 손님이다. 연서는 사각통의 작은 구멍에 꽂혀 있는 색색깔 솜사탕 가운데 보라색을 골라 시유에게 건넸다. 유근이는 계산대 앞에서 시유가 내민 종이돈을 받았다. 아이들은 자못 진지한 표정이다.

지난 3일 오후 종로구 무악동 한 아파트 거실에서 아이들이 색다른 놀이를 하고 있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정형화된 장난감을 제쳐두고 재활용되지 않아 버려지는 소재들로 놀잇감을 직접 만들어 놀았다. 컴퓨터 키보드 키의 플라스틱 조각을 하나씩 박스 골판지 위에 접착제로 붙여 계산대 모양을 만들었다. 검은색, 흰색을 적절하게 섞어놓았다.

가게에서 파는 물건 역시 쓰레기로 버려질 뻔한 것으로 만들었다. 여러 색이 섞인 양말솜(양말 생산 뒤 버려지는 부분)은 조금씩떼 돌돌 말아 꼬치 막대를 끼우자 솜사탕이 됐다. 색깔 따라 딸기 맛, 포도 맛, 멜론 맛, 초콜릿 맛으로 나눠 팁통(실험실에서 사용한팁을 꽂아놓는 뚜껑이 있는 플라스틱함)에 꽂았다. 색색깔의 물감물과 구슬을 담은 컬러 콘택트렌즈 포장용 작은 유리병은 주스가 되고 구슬 아이스크림이 됐다.

“아! 맞다! 돈이 있어야지.” 시유와 연서가 이면지로 돈을 만들었다. 연서는 초록색 1만원, 파란색 1천원 등 실제 돈 색깔에 맞춰 정성스레 그렸다. 시유는 돈을 담을 종이 지갑을 부지런히 만들었다. 어린 유근이가 “나도 돈 있어” 하며 방에 가 저금통을 들고 나와 엄마에게 꺼내달라 졸랐다. 모두 빵 터졌다.


2 박스 골판지에 키보드 키캡을 붙여 만든 계산대. 3 컬러 콘텍트렌즈 포장용기에 물감물, 구슬을 넣어 만든 주스와 구슬 아이스크림. 4 낙하산 원단에 그림을 그리고 물을 뿌려 만든 판화 그림. 5 양말솜으로 만든 솜사탕을 팁통에 꽂아 놓은 모습.

놀잇감의 소재들은 새활용(업사이클링) 전문 사회적기업 ‘터치포굿’에서 보내온 것이다. 터치포굿이 지난해 하반기 펼친 쓰레기 구독프로젝트는 깨끗하고 안전한 쓰레기를 구독방식으로 받는 실험적인 프로그램이다. 박미현(37) 대표는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재미있게 자원순환에 참여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구독이라는 방식을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터치포굿은 지난해 8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구독자를 모집했다. 20여 일 만에 신청자가 100명을 넘었다. 자녀를 둔 부모들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어린이집, 복지관 등 기관 신청도 꽤 있었다. 시유와 연서네도 구독자로 참여했다.

구독 신청자 107명은 2주에 한 번씩 네 번에 걸쳐 모두 5가지 소재를 배달받았다. 군용 낙하산 원단, 양말솜, 키보드 키캡, 컬러렌즈 포장 용기, 실험용 팁통 등이다. 재활용되지 않고, 일상에서 거의 접하지 못하는 소재들이다. 쓰레기 구독 기획팀의 김경희씨는 “‘이런 것도 버려지나’라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소재 가운데 세척과 소독을 할 수 있는 것을 골랐다”고 했다. 아이 한 명이 활동할 수 있는 정도 분량에 소재에 대한 간단한 안내서를 곁들여 보냈다.

구독자들은 ‘신기한 쓰레기’로 뭘 했을까? 부모들이 회차마다 네이버폼을 통해 올린 후기 글과 사진엔 아이들이 놀고 즐기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참여자 30% 정도가 후기를 꾸준히 올렸다. 김씨는 “자원순환에 동참하고 싶은 의지 정도에 따라 참여도는 차이가 있었지만, 버려지는 것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민감하게 느끼는 분이 많았다”고 했다.

소재 가운데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렌즈포장 용기이다. 연서는 모아둔 구슬(비즈)을 색깔별로 나눈 뒤, 작은 집게로 렌즈통에 넣어 백신을 만들었다. 엄마 장서연씨는 “연서는 통을 활용해 하고 싶은 게 많다며 좋아했다”며 “유근이가 렌즈통을 던질까봐 걱정했는데 누나가 만든 ‘백신’을 애지중지해 다행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시유는 스탬프와 사인펜으로 색깔물을 만들고, 다 쓴 물감통을 스포이드처럼 활용해 실험실 놀이를 했다. 엄마 김씨는 “처음의 쓰임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놀이에 활용하면서 재활용이 주는 뿌듯함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8절 도화지 크기의 군용 낙하산 천을 받고 아이들은 처음엔 ‘이걸로 뭘 해야 하나’ 주저했지만, 나름의 방식을 찾아냈다. 연서와 유근이는 인형 토끼의 해먹을 만들어 캠핑장 놀이를 했다. 엄마 장씨는 “아이들은 만들고 싶은 걸 어른들 생각보다 쉽게 떠올렸다”고 했다.

“우리 쓰레기로 같이 놀아볼까?” 제안…‘쓰레기도 자원’ 인식 확대

호기심 자극할 버려지는 소재 골라

수거해 세척, 소독 뒤 소분해 발송

아이들, 놀이 통해 다시 쓰는 경험

터치포굿은 쓰레기 구독 신청자에게 배송하기 전 소재들을 꼼꼼하게 분류하고 세척, 소독했다. (왼쪽부터) 양말솜, 키보드 키캡, 실험용 팁통. 터치포굿 제공

미니 낙하산을 만드는 아이들도 있었다. 경북 김천시에 사는 하유(8)와 하루(5)는 종이컵과 고무줄로 낙하산 원단을 고정해 그림판을 만들고 마카로 그림을 그렸다. 피규어 장난감과 실을 이용해 미니 낙하산을 만들어 낙하 놀이를 했다. 아빠 박현규씨는 “만져 볼 기회가 적은 소재라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즐겁게 놀았다”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사는 권혜영씨의 초등생 세 자녀도 동그랗게 천을 오려 6군데 구멍을 내 실을 묶어주고 추를 매달아 공원에서 낙하 실험을 하며 놀았다. 집에서 버려지는 쌀 포대 명주실, 선반 손잡이 등도 활용했다. 권씨는 “아이들은 원단을 사인펜으로 꾸미는 걸 재밌어했고, 직접 날려보며 즐거워했다”고 했다.

구독 서비스를 받으면서 아이들의 변화도 볼 수 있었다. 버려지는 소재를 활용한 놀이를 경험하면서 재활용과 재사용에 대한 관심도 차츰 생기고, ‘이번엔 어떤 쓰레기가 올까’라며 배송을 기다렸다. 집에 모아둔 재활용품을 꺼내 놀기도 했다. 시유 엄마 김씨는 “아이가 팁통을 받고 놀면서 ‘이렇게 좋은 걸 왜 버려, 안 버리고 갖고 잘 쓰면 이건 쓰레기가 아니잖아!’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형화되지 않는 놀잇감으로 놀이 방법을 찾는 교육적 효과도 있었다. 연서 엄마 장씨는 “아이가 뜻밖의 발견을 하거나 의미를 찾아 놀 때 그 모습을 보는 것도 뿌듯했다”며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동대문구에 사는 7살 윤이의 엄마 신수지씨는 “아이가 북극곰이나 환경이 뭔가 잘못됐다는 건 막연히 알지만, 스스로 적극적으로 실천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며 “쓰레기 구독을 통해 놀이하는 것 자체로 환경문제 해결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터치포굿은 자원순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후기 사례집(‘쓰레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엮어 지난 1월 내놓았다.

사례집 추천사에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교훈적인 구호가 아닌 ‘우리 쓰레기로 같이 놀아볼까?'라는 유쾌한 제안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자원순환의 길로 이끌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김대호 <에코크리에이터> 저자는 “쓰레기를 자원화하며 새로운 각도로 산업 폐기물을 생각해보게하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같은 달 터치포굿은 크라우드펀딩을 2주간 진행해, 목표 금액 100만원의 113%를 달성해 성공리에 마쳤다.

이번 프로젝트는 도시전환랩 운영사업으로 터치포굿이 기획해 추진한 4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였다. 도시전환랩은 2020년부터 서울시가 해온 사업이다. 시민의 생활방식을 전환하고 지역순환경제를 구축해, 지역 문제를 풀어가며 서울의 지속가능성과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사업이다. 터치포굿은 2년째 사업에 참여했다. 박미현 대표는 “소재를 구독 서비스로 해 놀이로 활용하면 쓰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시민 개개인의 생활 속 자원순환 실천의 마중물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쓰레기 구독 서비스 프로그램을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이어갈 방법에 대해 터치포굿은 고민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 지원사업과 연계해 키트 형식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거나 체험형 놀이 공간 프로그램 운영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일상에서 더 다양한 쓰레기로 놀아볼 수 있게 쓰레기 놀이터도 만들어볼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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