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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 MZ 세대의 ‘실험’이자 ‘놀이·’ ‘마이크’가 되다

등록 : 2021-08-1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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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안 기자의 ‘4주 동안 내 책 만들기’ 체험기

수강생 8명 중 7명, 3달 안에 책 출간…작가 돼

월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독립출판 전문책방 이후북스를 찾은 한 시민이 수백여 종의 독립출판물을 구경하며 책을 고르고 있다. 코로나19로 ‘집콕’ 시간이 늘어나자 독립출판물을 제작하는 작가도 덩달아 소폭 늘었다. ‘입고’는 기획, 글쓰기, 편집, 교열, 북디자인 등을 거쳐 이제 막 독립출판물을 낸 초보 작가가 넘어야 하는 마지막 출간 절차다. 책방에 입고 요청 메일을 보낸 후 요청이 승인되면 택배나 대면으로 보통 5~6권의 출판물을 전달한다. 지난 4~5월 독립출판 전문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4주 동안 내 책 만들기’에 참여한 작가들의 첫 책도 서울 곳곳 책방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찌질한 표현 섞여 더 응원”…‘무명의 작가’ 찾는 독자들 몰려

개인 이야기가 보편 이야기’ 믿음 갖고

‘부모님 편지 출간’ 등 일상 소재 작품 내

출간 전 ‘1만 부 예약’ 인기작가도 출현

“다들 잘 지내시죠? 저도 제 독립출판물 출간소식을 알립니다. 어제 500부 인쇄해서 방에 뒀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다들 그동안 어떻게 견딘 겁니까?”


한동안 잠잠했던 ‘단톡방’이 ‘축하 세례’로 가득 찼다. 7월16일 저녁이었다. 회원 8명 가운데 ‘7번째 작가’가 된 김시민(28)씨가 에세이집 <애愛쓰는 마음> 1쇄본 소식을 알렸다.

김씨는 막 1인5역(작가·편집자·교열자·북디자이너·인쇄업자)을 마치고 이제 날이 밝으면 ‘마케터’로서 각 독립서점 담당 직원들을 만나는 ‘여섯 번째 역할’에 나설 참이었다. 모든 게 처음인 김씨는 ‘포장과 입고’를 앞두고 다시 숨을 골랐다.

기자는 3개월 전 김씨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요즘 말로 ‘훈남 재질’을 타고난 듯한 청년이 ‘왜소하고 마른 몸’에 대한 지난한 콤플렉스를 나지막이 털어놨다. 김씨는 지난 2년 동안 몸속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렸고 이를 독립출판물로 묶어 대중에 내놓고 싶다고 했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다시서점’에 입고를 성공한 작가 김림과

‘독립출판’ 두드린 ‘요즘 것들’ 목소리

4월18일부터 5월9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 강남으로 갔다. 독립출판전문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열린 ‘4주 동안 내 책 만들기’ 강의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새벽까지 자판을 두드리며 그 무게에 형편없이 짓눌리던 때였다. 가벼운 얘기와 느슨한 만남이 쉼이 되리라 여겼다.

한편으론 오늘날 MZ세대의 유행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한 ‘독립출판’ 영역에서 벌어지는 ‘작가들의 탄생’ 과정이 몹시 궁금했다. MZ 중 ‘M자 세대’에 겨우 매달린 기자에게 ‘책’이란 여전히 엄숙한 그 무엇인데, 이들에겐 ‘실험’이자 ‘놀이’, 나아가 ‘마이크’가 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4주, 곧 ‘한 달’ 안에 내 책을 만드는 대신 그 빡빡한 일정을 견뎌야 했다. 첫 주차에 표지와 목차, 내용을 담은 PDF 일부를 제작해 의견을 나눴다. 2주차엔 인쇄 시스템과 온라인 견적을, 3주차엔 한 권의 샘플을 뽑았다. 4주차엔 서지정보를 쓰고 유통 계획을 공유하는 수순이었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 쌓아둔 원고뭉치는 필수였고, ‘광장’에 나를 노출할 대담함과 진솔함, 때에 따라 나를 적절히 숨길 수 있는 ‘작가명’을 준비해오는 이들에게 빠르게 기회가 열리고 있었다. 강의를 찾아온 까만 파마머리의 90년대생 ‘김림’처럼 말이다.

김림은 “독립출판시장에서 만나는 작가들에게 기성출판시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질투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예쁘고 기교있는 단어만 가득한 글보다 ‘가끔 찌질한 표현이 섞여 있어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는 글’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에세이를 읽고 싶을 땐 독립서점을 향하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즈음 ‘작가’가 되고자 마음을 먹었다.

“저는 돈을 버는 게 어느 순간부터 기쁘지 않아서 2년 만에 회사를 나왔어요. 을지로에 독서 모임을 여는 와인바를 차리고, 틈틈이 글을 썼고요. 우울증이란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엔 꼭 대놓고 써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김림은 꾹꾹 눌러 쓴 ‘매우 사적인’ 우울의 일대기와 코로나19 시대 자영업 분투기 등 일상을 차곡차곡 쌓은 에세이집 <우울증과 홈파티>를 출간했다. 강의를 신청한 8명 가운데 ‘첫 번째 작가’로 신고식을 치렀다.

망원동 ‘이후북스’에서 만난 작가 쭈르.

이어서 한 직장에서 19년을 채웠다는 ‘쭈르’는 “입사 때부터 꿈꾼 퇴사”를 실행하고자 ‘직장 밖 먹고사니즘’을 연구했다. 배달 아르바이트부터 온라인 스마트스토어 대표, 비트코인 투자자, 직장툰(퇴사툰·일상툰) 만화가를 시도하며 느낀 감정들을 모아<퇴사하고 싶지만 용기는 없어서 이것 저것 해보고 있어>를 엮어 나갔다.

프리랜서로 일러스트를 그리는 ‘비비드’는 직업 특성상 밤샘이 일상이었던 작업 일기들을 모아 작은 그림책 <스위치ON>을 제작했는데, 이는 혼자 새벽을 버티는 외로움부터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부지런한 이들에 대한 목격담이었다.

최선쌀.

나아가 ‘최선쌀’은 마음의 말을 그대로 제목으로 한 독립출판물 <삶이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에서 폭풍처럼 지나간 청소년 시절과 고통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가며 ‘삶과의 관계 개선을 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에 사는 ‘노닐다’는 마을에 있는 ‘도리섬’을 기록해 엮고자 매주 서울행 버스를 타고 강의를 찾아오기도 했다. 섬강과 청미천이 남한강으로 합류하는 그곳 ‘도리섬’은 소박해서 아름답지만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파헤쳐지고 군 헬리곱터 연습장으로 늘 시끄러워” 평온한 시절의 기록을 필요로 했다. 노닐다가 낸 사진집 <도리섬WS>는 지역 주민만이 포착할 수 있는 섬의 두 계절을 오롯이 담았다. 듣고 보니 사람이 곧 이야기였다.

“개인적인 이야기 노출에 염려 맙시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곧 보편이 되는 곳이니까요.”

강의를 이끈 스토리지북앤필름 강영규 대표의 말에 바로 독립출판물 제작 핵심이 있었다. 첫 항해에 만선을 꿈꿀 순 없다지만, 독립출판 시장엔 유독 ‘무명의 어부’를 찾는 독자들이 몰린다.


“사적이고 일상적일수록 독자가 몰린다”

그 때문에 기성출판 시장에서 무명작가들이 초판 1천 부를 찍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독립출판에선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수신지가 그린 단행본<며느라기>가 독자들 입소문을 타고 출간전 이미 1만2천 부 선예약을 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대가 바뀌고 있어요. 독립출판과 기성출판 소비자들 성향이 조금 다르다는 면을 이해하면 좋습니다. 기성출판 시장에선 ‘책의 가성비’가 책 구매에 영향을 주죠. 만약 1만원짜리 책을 산다고 하면 ‘1만원짜리는(책의 두께든 내용이든)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기준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독립출판 시장에선 콘텐츠에 더 의미를 둬요. 아주 얇은 책이 1만원이라고 해도, 무언가 끌려서 보고 싶으면, 독자들은 지갑을 열고 그 책을 삽니다.” 강 대표가 덧붙였다.

수요가 있으니 작가도 늘어나고, 독립출판물 주제는 하루가 다르게 다양해진다. 2021년 상반기 ‘스테디셀러’에 오른 독립출판물들 내용은 하나같이 사적이고 일상적이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자녀가 엮은 독립출판물<조금 더 쓰면 울어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 핸드폰을 끄고 생활한 48시간의 생활을 담은 <로그아웃 좀 하겠습니다>, 물에뜨지도 못했던 한 성인이 수영장에 등록해 초급반에 들어간 이후 10개월 동안의 수영일지를 모은 <스무스>, 첫 육아의 ‘웃픈’ 시행착오들을 모아 만든 그림일기 <어디서 요런게 나와가지고> 등은 모두 개인 일상의 결을 담은 책들이지만 거대 담론 못지않은 대중 인기를 끌고 있는 독립출판물이다.

세상 모든 글자가 ‘디지털화’하는 지금, 한쪽에선 ‘120g이 좋을까 150g이 좋을까’ 종이 무게를 밤새 고민하고, ‘A5가 좋을까 B4가 좋을까’ 판형을 고민하는 작가군이또 하나의 출판 유행을 이끌고 있다는 아이러니의 체험도 독립출판물 제작에서 느끼는 재미다.

코로나19로 ‘집콕’ 시간이 늘어난 요즘 독립출판물 제작에서 권태의 출구를 찾아보면 어떨까. 수첩과 노트북을 펼쳐보자. 한 달은 내 책을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고, 생각보다 당신의 얘기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된 이들이 많다.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독립출판 전문책방 ‘다시서점’에 진열된 독립출판물들.

글·사진 전유안 기자 fingerwhal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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