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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안산 초입 쓰레기 투기장 정원 변신”

‘2021 서울시 환경상’ 도시녹화 분야 최우수상 받은 곽진숙 초우사랑 대표

등록 : 2021-08-0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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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모임 만들어 3년 동안 정원 가꿔

60~80대 20여 명 주 1회 정기 활동

“이웃과 함께 버려진 공간 살려 뿌듯”

일자리사업과 연계해 이어지길 기대

7월15일 도봉구 초안산 초입에 있는 ‘초우사랑 숲정원’에서 곽진숙 초우사랑 대표가 쓰레기 투기장을 정원으로 바꾼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도봉구 창3동은 초안산과 우이천 사이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작은 동네다. 1만4천여명의 주민 가운데 고령층이 많다. 60~80대 20여 명이 모임 ‘초우사랑’(초안산과 우이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 초안산 초입 쓰레기 무단투기장 200여 평을 정원(초우사랑 숲정원)으로 3년째 가꿔오고 있다. 동네 골목길 화단 가꾸기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초우사랑의 곽진숙(64) 대표가 지난 6월 ‘2021 서울시환경상’ 도시녹화 분야 최우수상을 받았다.

7월15일 오전 도봉구 초우사랑 숲정원에서 곽 대표를 만났다. 숲정원엔 백일홍 등 약 100종의 화초류 등이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색색깔의 나비들도 여기저기서 날갯짓을 했다. 그가 보여준 방명록에는 ‘자주옵니다. 꽃들이 너무 예쁘네요’ ‘아름다운 꽃 보고 힐링하고 갑니다’ ‘우리 마을에 이런 곳이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등의 감사 인사가 손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수상에 대해 곽 대표는 먼저 회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부터 전했다. “김부희 감사, 김영숙 부회장 등 여러 회원의 열정과 노고로 받은 상인데 혼자 누리는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환경상 수상 요건은 3년 이상 활동인데, 초우사랑은 2018년 12월에 단체등록을 해 단체 이름으로 상을 받기엔 몇 개월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회원들이 현수막도 걸고, 커다란 케이크를 사서 함께 축하해 미안한 마음을 조금 덜 수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곽 대표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50대 중반까지 해왔던 학원 강사를 그만두면서 이웃과 동네 일에 관심이 생겨 모임에 참가했다. 초우사랑이 만들어지면서 원년 회원이 됐다. 2019년 창3동이 도시재생사업지로 뽑혀 주민공모 사업으로 활동했다. 회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적은 그가 총무를 맡았다. 대표가 개인 사정으로 이사를 하면서 한 해 뒤 자연스레 대표가 됐다.

그를 비롯한 5명의 임원은 거의 매일 숲정원을 찾는다. “식물을 키우는 일이다 보니 정말 일이 많다”고 말했다. 물도 줘야 하고, 잡풀도 뽑아야 하고, 가지도 쳐야 하고, 이따금 나무도 옮겨야 한다. 계절 따라 모종도 심어야 하고, 겨울이면 보온도 해줘야 한다.

회원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 같이 활동한다. 80대 어르신도 삽을 들고 일한다. 요즘은 골목길 정원 가꾸기에도 참여한다. 주민공모 사업에 세 차례 참여하면서 교육도 꾸준히 이어졌다. 조경 전문 강사를 초청해 약 20회 강의를 들었다. 마을정원사 교육도 받았다.

“그간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특히 봄 가뭄이 너무 심해 애지중지 키운 꽃나무가 다 죽었을 때 가장 마음 아팠다”고 그는 슬픈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도봉구청에서 숲정원 옆에 유아숲체험장을 만들면서 빗물저장시설이 갖춰져 더는 물 때문에 고생은 하지 않는다. 아직 전기 시설은 갖추지 못한 상태다.

숲정원을 찾는 주민의 발걸음도 늘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와서 꽃 이름을 알려주고 사진을 찍고 쉬어가는 30~40대 주민도 적잖다. 초우사랑 회원에게 수고한다고 인사도 건넨다. 숲정원에 꽃이 피니 나비와 벌도 날아들고, 유실수에 열매가 열리니 새가 찾아와 지저귄다. 그는 “음식물 쓰레기 투기와 악취로 방치된 공간을 이웃들과 함께 되살려 보람을 느낀다”고 웃으며 말했다.

초우사랑 활동을 하면서 곽 대표는 건강을 되찾았다. 미술 강사로 이젤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 생긴 척추측만증이 많이 좋아졌다. 숲정원을 가꾸며 흙냄새를 맡고 자연의 힘을 느꼈단다. “자연을 접하면서 병은 마음이 힘들 때 오는 것이고, 몸이 힘들더라도 즐겁게 하면 괜찮다는 걸 깨달았다”며 “정원 가꾸느라 몸은 힘들더라도 정말 재밌다”고 했다.

모임 대표로서 고민도 있다. 활동 경비를 마련하는 게 그중 하나다. 그간 여러 시도도 해봤다. 숲정원 나무를 유료 분양해 열매를 맺으면 가져가도록 하거나 마리골드, 구절초, 맨드라미 등으로 꽃차를 만들어 판매해보기도 했다. 쪽 염색 스카프와 손수건도 만들어 팔아봤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안정적인 수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주민공모 사업(단체 참여는 3회 제한)을 이어가기 위해 앞으로 법인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곽 대표는 “회원들이 고령이라 법인으로 운영하기 어려워 시와 구청의 일자리사업들과 연계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이천에서 초안산 둘레길까지 예쁜 탐방코스가 만들어져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초우사랑 회원들의 동네 골목길 화단 가꾸기 활동 모습.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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