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도 어쩌지 못한 한여름밤의 마을축제

“마을을 지키자” 젊은이가 기획하고 주민들이 지원하는 서대문구 충현동 ‘충정로 섬시장

등록 : 2016-07-21 15:37 수정 : 2016-07-2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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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게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 축제를 즐기는 충현동 주민들
출렁이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 잔잔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 삼겹살은 ‘치이익’ 소리를 내며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 휴가복 차림의 청년들이 분주하게 자리에 파라솔을 펴고 손님을 맞았다. 여름철 바닷가 풍경처럼 보이지만, 실은 지난 15일 서대문구 경기대학교 주차장에서 열린 ‘충정로 섬시장’의 한 장면이다.

한여름밤의 꿈을 주제로 다섯 번째 충정로 섬시장을 기획한 충현동의 젊은이들
“어수선한 동네가 밝아져서 좋았어요”

‘충정로 섬시장’은 동네의 젊은 청년 기획자 김민준(30), 배민숙(24), 강민석(27), 성다인(24), 김예은(25), 김지영(29) 등이 참여해 만든 마을축제 프로젝트다. 이들은 축제가 열린 동네를 충정로의 ‘섬’이라고 한다. 시계에 모터를 단 것처럼 빠르게만 흘러가는 도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지녔기 때문이다. 빵집과 카페 등 동네 가게 세 곳에서 지난해 6월 처음 열린 ‘충정로 섬시장’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이날 축제는 ‘한여름밤의 섬’이란 주제의 야시장으로 꾸며졌고, 푸드트럭 다섯 대와 프리마켓 10팀, 노래 공연, 단편 영화 상영 등으로 이루어졌다.

학원을 마친 아이를 마중 나온 어른,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던 직장인,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길가를 지나던 학생, 모두가 마을축제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야시장이 열린 장소에 하나둘 사람이 모였고, 들머리에서 나눠 주는 초록색 손목띠를 한 아이들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시장기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푸드트럭 앞에 줄을 섰고, 한켠에 마련된 프리마켓은 구경꾼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누군가에게 손재주를 인정받고 싶었어요. 판매 목적이 아니라 오늘도 참가비만 벌고 싶어요.” 지난해 5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현재 핸드메이드 제품을 만들고 있는 김미송(31) 씨는 구경하는 주민들에게 자신이 만든 제품을 열심히 설명했다.


“정말 가져도 돼요? 너무 고마워요.” 아이를 마중 나왔던 문나영(46) 씨는 자투리 천을 거져 얻어 고마워했다. 새활용(업사이클) 원단을 파는 김진아(30) 씨는 “어수선한 동네가 밝아져서 좋았어요. 저도 빈집에서 작업하고 있는데 청년들이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에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라며 프리마켓에 참가한 목적을 말했다.

어둠이 드리워지고 ‘밴드 윤승’이 ‘곰팡이 꽃별’이란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웠다. 보슬보슬 비가 내리자, 젊은 청년들은 프리마켓 테이블 위로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우산을 펴고 노래를 감상했다. 김지영(29) 씨는 공연이 계속되는 동안 비누 거품을 불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고, 아이들은 비누 거품을 쫓아 뛰어다녔다.

충정로 섬시장이 열릴 때마다 참여한다는 안지원(42) 씨가 프리마켓을 둘러보고 있다.

재미난 상상으로 마을 활기차져

“충정로 섬시장에 오신 분들 맞지요?” 초록색 손목띠를 확인한 카페 ‘띠아모’ 김무진(39) 대표는 주문한 찻값을 500원씩 깎아 주었다. “이유요? 그냥 젊은 친구들이 노력하는 모습이 고마워서 2회 때부터 함께했어요.” 김 대표는 웃을 수 있는 동네로 만들어 준 청년들이 고맙다고 했다.

비가 쏟아졌지만 주민들은 커다란 스크린으로 단편영화를 감상하며 끝까지 행사장을 지켰다. “재미난 상상으로 사랑하는 마을에 활기를 채우고, 기획자로서 정체성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비가 멈추고 내리기를 반복한 궂은 날씨였지만 청년 기획자들은 오히려 “우비를 입고 억세게 내리는 비도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야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김정엽 기자 pkjy@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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