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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바꿔줘 홈즈’ 덕에 치매 홀몸노인 집 안 안전사고 위험 ‘끝’

등록 : 2021-01-07 17:14 수정 : 2021-01-2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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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치매안심센터, 62가구 선정해 집 안 환경 바꿔줘

당사자뿐만 아니라 보호자·요양보호사도 매우 만족

치매를 앓는 김아무개 할머니(왼쪽)가 지난 12월29일 자신의 집 안방에서 김연금 요양보호사(가운데), 한지연 작업치료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자동 센서, 미끄럼 방지, 가스관 차단 등으로 위험 크게 줄여

서울 자치구 중에 중구가 처음 시도

코로나 상황, 오히려 시간·비용 제공

“어르신 만족스러운 모습 보면 뿌듯”

“무릎이 아픈데 지금…, 젊어서 일만 해가지고 그냥. 거기들 앉지그랴.”


지난 12월29일 신당동에 사는 김아무개(82) 할머니 집을 방문했다. 집 안 안방 침대 옆에 걸터앉아 있던 할머니는 방문객들을 향해 앉으라고 권했다. 한지연 중구치매안심센터 작업치료사가 할머니 옆에서 큰 소리로 “그래서 저번에 파스 두고 갔잖아요”라고 하자, 김 할머니는 고령으로 잘 들리지 않는지 “뭐가 어떻다고”라며 되물었다.

“오늘은 깨끗한 편이에요. 모든 것을 뱉어놔요.” 요양보호사인 김연금씨는 오늘 할머니 상태가 평소보다 훨씬 좋다고 했다.

“고맙다. 고마워요. 고맙다고.” 그래서인지 김 할머니는 방문객들에게 고맙다며 요구르트를 하나씩 건넸다. 한 작업치료사도 “상태가 안 좋으면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오늘은 할머니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고 했다. 김 요양보호사는 할머니가 정신이 온전할 때는 “정이 많은 분”이라고 알려줬다.

7년째 알츠하이머를 앓는 김 할머니는 12평 남짓한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한다. 이상 행동 증상으로 음식물을 바닥에 버리기도 하고 물을 뿌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바닥이 미끄럽고 바퀴벌레도 많았다. 밤이 되면 불을 켜지 않고 생활해 이동할 때면 낙상 위험도 있었다. 또한 누군가 항상 약을 챙겨줘야 먹을 수 있었다. 한 작업치료사는 “김 할머니는 이상행동 증상이 있어서 집 안에서 물이나 음식물을 뱉고, 밥을 먹는 도중에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거나 양치질하는 등의 반복 행동을 보여 요양보호사들이 힘들어한다”고 했다.

중구치매안심센터는 이런 김 할머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 안 환경을 바꿔줬다.

물 때문에 미끄러운 바닥에는 스프레이를 뿌려 미끄럼을 방지하는 방법으로 낙상 위험을 줄였다. 전문 해충 퇴치 업체의 도움을 받아 바퀴벌레도 없앴다. 방, 화장실 앞, 현관 등 3곳에는 김 할머니가 움직이면 저절로 불이 켜지는 센서 등을 달았다. 김 요양보호사는 “아예 불을 켜지 않고 생활하던 분이라 화장실을 가는 데도 위험했다”며 “어르신이 움직이면 바로 불이 켜지니까 주변이 밝아져 낙상 위험이 크게 줄었다”고 다행스러워했다.

할머니의 집 문틀 위에 달린 센서 등.

제때 약을 챙겨주기 위해 현관 앞에 달력, 화이트보드와 네임펜도 비치했다. 요양보호사, 보호자, 작업치료사가 김 할머니 집에 방문할 때마다 약을 줬는지 등의 상황을 알 수 있게 화이트보드에 기록하도록 했다. 김 요양 보호사는 “잠깐 제가 외출했을 때 다른 사람이 와도 알 수 있도록 동선을 적어둔다”고 했다. 현관 앞 달력 위에는 날짜에 맞춰 약봉지가 매달려 있었다. 김 요양보호사는 “약봉지를 하나씩 떼어서 식탁 위에 올려두면 할머니가 약을 드신다”며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와도 화이트보드를 확인하고 할머니께 약을 드릴 수 있어 편리하다”고 했다.

김 할머니가 약을 먹었는지 알 수 있도록 달력 날짜에 맞춰 매달아 놓은 약.

방문객들이 떠나려 하자, 김 할머니는 대접을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따끈하게 차라도 한잔할 건데 그냥 보낸다”며 아쉬워했다.

지난해 초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송아무개(87·신당동) 할머니도 중구치매안심센터의 도움으로 집 안 환경을 바꿨다.

송 할머니 집은 여기저기 어지럽게 전선이 널려 있었다. 발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곧바로 낙상 사고를 당할 수 있어 위험했다. 여러곳에 약이 나뉘어 있어 송 할머니가 약을 먹기 불편했다. 벽시계의 시간을 알리는 숫자는 송 할머니가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또한 송 할머니는 음식을 자주 하는데, 가스차단기가 없어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장홍균 작업치료사는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 있던 전선을 정리해 낙상 사고 위험을 없앴다. 여러 곳에 비치된 약을 한곳에 모으고, 알람 약통을 구비해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송 할머니가 알아보기 힘들었던 시계는 쉽게 알아보도록 숫자가 큰 시계로 바꾸었다. 그리고 가스차단기를 설치해 안전성을 높였다.

송 할머니가 약을 때맞춰 먹을 수 있도록 정리한 ‘알람 약통’.

지난해 초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송아무개 할머니가 가스차단기를 만지고 있다.

장 작업치료사는 “송 할머니는 나이가 많아 균형감각이나 시각 등의 기능이 크게 떨어져 낙상 등 안전사고 위험이 그만큼 크다”며 “낙상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제품을 설치해 집안 환경을 바꿨다”고 했다. 그리고 “보호자 겸 요양보호사로 활동하는 송 할머니의 딸한테서 ‘매우 만족스럽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중구가 치매 홀몸노인의 가정환경을 바꾸는 ‘바꿔줘 홈즈’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바꿔줘 홈즈’는 치매 홀몸노인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집 안 구조나 소품을 바꿔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독립생활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서울 자치구 중에서 치매 홀몸노인의 집 안 환경을 바꾸기는 중구가 처음이다. 중구치매안심센터는 낙상 예방 등 안전 관리, 해충 방역 등 감염 관리, 센서 등 설치 등 인지 증진, 약통 전달 등 의료 관리의 네 영역을 중심으로 치매 홀몸노인들의 집 안 환경을 바꿨다.

중구치매안심센터는 지난해 코로나19가 장기화하자, 계획했던 치매 노인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했다. 대신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저소득층(기초생활수급자) 치매 홀몸노인들을 위한 집 안 환경 개선사업 ‘바꿔줘 홈즈’를 새로 시작했다. 중구에는 전체 104명의 저소득층 치매 홀몸노인이 살고 있는데, 이 중 62명이 참여 의사를 보였다.

구는 지난 9월부터 12월까지 넉 달 동안 저소득층 치매 홀몸노인 62가구를 대상으로 1 대 1 맞춤 개선 사업을 진행했다. 중구치매안심센터의 작업치료사가 각 가정을 방문해, 대상자 및 보호자와 면담한 뒤 불편한 점을 찾아 개선했다. 먼저, 7~8월에 두 가구를 선정해 시범사업을 했다. 만족도도 높고 평가도 좋아 대상자를 확대했다. 애초 배정된 예산이 없어 코로나19 때문에 진행하지 못한 프로그램 예산을 돌려 사용했다.

이소연 센터의 팀장은 “‘바꿔줘 홈즈’는 작업치료사들이 치매 노인들의 인지기능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분들에게 무엇을 더 도와드려야 할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이 팀장과 3명의 작업치료사는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 무척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고 했다.

“사실 여력이 없었는데 코로나 상황이 오히려 시간과 비용을 제공하는 계기가 됐죠.”이 팀장은 “주변 환경 개선이 치매 환자의 인지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문제를 알면서도 해결하지 못하던 영역인데 이번 기회에 개선할 수 있어 만족감이 크다”고 했다.

“대부분 낮에도 어두운 집이 많아, 화장실을 가다 넘어져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는 경우가 꽤 많죠. 밤에 불을 끄면 바퀴벌레가 돌아다녀 일부러 불을 환하게 켜고 잠을 자는 분도 있죠. 이제 밤에 불을 끄고 잠잘 수 있어 좋다는 말을 들을 때 너무 뿌듯해요.”

경력 10년의 최경인 작업치료사는 “처음하는 사업이라 고민도 많이 하고 힘들었지만 어르신들이 안전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중구는 앞으로도 취약계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배려하고 지원해 어린이, 노인, 장애인, 여성 등 4대 취약계층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중구치매안심센터는 ‘내 집에서 노후를 보내자’는 가치 실현을 위해 올해도 부부 치매 환자를 위한 ‘바꿔줘 홈즈 2탄’을 준비하고 있다. 이 팀장은 “앞으로도 작업관리사들의 치매 전문 지식과 결합한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치매 환자들이 좀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치매 홀몸노인을 위한 ‘바꿔줘 홈즈’를 기획하고 추진한 중구치매안심센터 장홍균(왼쪽부터), 최경인, 한지연 작업치료사.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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