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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유치원생에게도 열려 있는 숲길, 무장애길

등록 : 2019-12-05 15:03 수정 : 2019-12-0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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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l 양천구 계남공원에 추가조성된 무장애숲길

기울기 8도 이하로 모두가 편한 ‘평등한 데크길’ 조성

지난 11월27일 양천구 신정산 계남근린공원에 조성된 무장애숲길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산책 나온 장애인 김지현씨에게도, 숲 활동에 나선 구립 신정3동어린이집 원생들에게도 활짝 열려 있었다. 신연주 양천구 장애인권교육센터장이 이날 김씨의 산책길에 동행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언어와 신체 장애를 지닌 김지현(45)씨는 신이 났는지 타고 있던 전동휠체어 속도를 씽씽 높였다.

평소 보행길을 다니다보면 예상치 못한 턱 등 장애물이 있어 진행하는 데 애를 먹곤 하는데 자신이 사는 아파트 바로 옆에 생긴 양천구 계남공원 무장애숲길의 데크길은 김씨에겐 막힘 없는 고속도로인 듯했다. 김씨의 보호자 격으로 따라나선 신연주 양천구 장애인권교육센터장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동분서주 김씨 속도에 맞추느라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지난 11월27일 오후 양천구 신정산 계남근린공원의 무장애숲길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무장애숲길은 가파른 경사의 산길을 기울기 8도 이하의 완만한 데크길로 조성해 누구나 숲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산책로다. 휠체어, 유모차 등을 이용하는 보행 약자도 숲길을 걸으며 휴식과 함께 건강도 챙길 수 있다.

11월 초 양천구(구청장 김수영)가 다락골 약수터에서 신안약수아파트로 이어진 507m 구간에 추가 조성한 계남공원 무장애숲길은 김씨의 단골 산책 코스이다. 활동지원사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꼴로 즐겨 찾는다. 너비도 2m로 교차 통행이 가능해 장애인도 이용하기 비교적 안전하게 설계됐다. 김씨는 “외출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집 가까운 곳에 다닐 수 있는 숲길이 생겨서 너무 좋다”며 “특히 산에 갈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과거에 장애인에게 보행이란 생존권 차원의 문제였다면 이제 건강권 확보가 중요해졌다”며 “계남공원 무장애숲길 같은 데크길은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비장애인과 스쳐 지나가면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좋은 점”이라고 말했다.

계남근린공원을 관할하는 하재호 신정3동장은 “오후 2~4시쯤에 휠체어를 타고 무장애숲길을 산책하는 분을 많이 목격한다”고 귀띔했다.


무장애숲길은 장애인뿐 아니라 유치원생들에게는 ‘숲 활동’의 안내길이다. 이날 계남공원 무장애숲길에서 숲속 활동을 나온 구립 신정3동어린이집 원생 10여명을 만났다. 비교적 쌀쌀한 날씨인데도 아이들 표정에는 생동감이 넘쳤다. 원생들을 인솔한 정진선 원장은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서 아이들이 편하게 숲속 활동을 할 수 있게 돼서 좋다”고 했다. 최지욱(7)군은 “(숲활동에서 만난) 벌레가 좋다”고 말했다.

이번에 조성된 계남공원 무장애숲길은, 2011년 장수초등학교와 신남초등학교 주변을 연결하는 827m 구간을 시작으로 2016년과 2017년 남명초등학교부터 다락골 약수터로 연결되는 657m에 이어 조성된 구간이다.

구는 연차적으로 계남공원을 한 바퀴 순환하는 무장애숲길을 조성해나갈 계획이다. 올해 12월 준공을 목표로 남명초등학교에서 계남다목적체육관으로 연결되는 약 300m 구간에도 무장애숲길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계남근린공원을 제외하고 다른 무장애숲길 입구는 휠체어를 타고 진입하기에 다소 불편해 대책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계남근린공원뿐 아니라 서울에는 무장애숲길이 22곳 조성돼 있다. 대부분 경치가 수려하고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주택가 인근에 조성된 게 특징이다.

대표적인 무장애숲길로 안산자락길을 빼놓을 수 없다. 안산자락길은 전국 최초의 순환형 무장애숲길로 아카시아 숲, 메타세쿼이아 숲, 가문비나무 숲 등이 7㎞ 구간에 이어져 있다. 인왕산과 북한산, 멀리 한강까지 다양한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장애인 인구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노원구(2만7450명)도 무장애숲길 조성에 힘을 쏟는 대표적인 구이다. 지체장애인은 1만2500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약 45%를 차지한다. 구는 수락산, 불암산, 영축산 등의 자연환경을 활용한 무장애숲길을 만들었다. 구는 2016년 수락산 입구 수락골 미주동방벽운아파트에서 시립 수락양로원까지 670m 구간에 무장애숲길을 만들었다.

또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에서 1.2㎞ 거리에 있는 수락산 동막골에 숲길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2022년까지 완료 예정인 서울시 최초의 자연 휴양림 ‘동막골 휴양림' 조성 사업과 연계한 1㎞ 구간이다.


서울시 무장애숲길 모두 22곳…경치 수려한 주택가 인근 주로 조성

노원, 수락산·불암산·영축산에 조성

송파, 4개 하천 잇는 둘레길에 구상

서대문, 북한산 자락길에 4.5㎞ 조성

불암산 무장애 숲길. 노원구 제공

중계동 노원자동차학원 뒤 불암산 자락의 불암산 나비정원의 무장애숲길은 구간이 연장된다. 현재 1.05㎞의 무장애숲길이 있다. 구는 내년 상반기까지 생태학습장에서 전망대, 산림치유센터와 유아숲 체험장을 거쳐 철쭉동산과 나비정원까지 연결해 총 2.1㎞ 거리의 무장애숲길을 조성할 예정이다. 전망대에는 장애인과 노약자도 오를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갖춘다.

구는 월계동 영축산의 경우 SK아파트에서 정상과 광명교회를 연결하는 1단계 구간 1.83㎞를 올해 말까지 완료한다. 또 정상에서 광운대역, 정상에서 월계문화센터를 연결하는 2단계 구간 1.5㎞는 내년 연말까지 마무리해 총 3.33㎞ 길이의 무장애숲길 조성을 완료할 계획이다.

송파구는 성내천 등 4개의 하천을 잇는 약 21.2㎞ 거리의 순환형 둘레길을 조성 중이다. 구는 이 가운데 18.5를 무장애길로 조성할 계획이다. 1코스 성내천길, 2코스 장지천길, 3코스 탄천길, 4코스 한강길로 이뤄졌다. 전 구간을 완주하는 시간은 약 5시간30분이다. 지난해 10월 시작해 2021년까지 모두 42개 사업을 추진한다.

올해 완공 목표인 1단계 사업은 주로 성내천과 장지천 코스를 대상으로 성내천 벼농사체험장 조성, 장지천 산책로 정비, 성내천 물빛 카페 조성, 송파둘레길 안내체계 마련등 모두 33개다. 나머지 9개는 탄천생태경관 보전지역 둘레길 연결, 장지천 주변 보행환경 정비 등이다.

송파구는 현대적인 문화관광자원이 많은 도시로 잘 알려졌지만 서울에서는 보기 드물게 도시 전체에 걸쳐 ‘물길’이 흘러가는 곳이기도 하다. 2017년 기준 서울에 흐르는 하천이 43개인데 송파구에는 성내천, 장지천, 탄천, 한강까지 큰 규모의 하천이 4개나 흐른다. 서울시가 25개 자치구인 점을 고려하면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니다. 더불어 서울 유일의 자연형 호수로 꼽히는 석촌호수도 있다.

서대문구의 ‘북한산 자락길’은 홍제동 북한산 허리를 타고 조성된 산책길이다. 실락어린이공원에서 시작해 홍록배드민턴장과 삼하운수 종점을 지나 옥천암에 이르는 총 길이 4.5㎞의 무장애길이다. 2014년부터 3년간 구간을 나누어 단계별로 공사해 2016년11월 완공했다. 홍은풍림1차아파트 뒤편 실락어린이공원에서 홍록배드민턴장까지는 제1구간 1.2㎞, 홍록배드민턴장에서 북한산둘레길 7구간(옛성길) 입구까지 제2구간 1.5㎞, 북한산둘레길 7구간에서 옥천암까지의 제3구간(1.8㎞)으로 구성돼 있다.

관악산에도 무장애숲길(1.3㎞)이 펼쳐져있다. 관악산 입구에서 제2광장까지 1.5㎞ 정도 걸어가면 무장애숲길이 시작된다.

동대문구의 110m 야트막한 산 배봉산 둘레길(4.5㎞)에도 무장애숲길이 조성돼 있다.

강남구(구청장 정순균)도 지난 10월 탄천근린공원(수서동 722)을 장애인 등 보행 약자가 이용이 편리한 ‘탄천어울림공원’으로 재조성했다.

영구임대아파트가 밀집된 강남구 수서동은 장애인 거주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구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 산책로를 설치해 평탄화했으며, 시각장애인의 지팡이가 걸리지 않는 빗물받이로 교체했다. 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야외운동기구와 재활기구를 추가로 설치했다. 이밖에 기존에 설치된 벤치의 간격을 조율하고, 휠체어도 들어갈 수 있는 테이블과 기댈 수 있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설치해 장애인과 노약자가 두루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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