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왜 그래! 한 달만 해보고 결정해” 여러 차례 퇴사 만류

택시기사 체험 후기…“그럼 이틀 휴가 줄 테니”

등록 : 2019-01-1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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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12월19일 새벽 4시께 세차를 한 뒤, 걸레로 택시를 닦고 있다

택시 운전기사로 취직한 지 9일째인 지난해 12월19일 새벽 5시, 야간 근무를 마치고 회사에 들어왔다. 무슨 말을 하며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야 할지 고민했다.

배차실에 들어와 운행기록일보를 낸 뒤 “오늘은 12개도 못했네, 왜 이렇게 어렵지”라며 주위 기사들에게 힘든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고 했더니, 대뜸 배차부장이 “이것보다 쉬운 게 어딨냐”며 자기 걸로 만드는 과정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고는 허허 웃으며 “야간에 12만원 해도 돼”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는 운행기록일보에 적힌 ‘12만원’의 숫자 ‘1’자를 가리키며 앞으로는 여기에 ‘1’자가 하나 더 더해질 것이라고 했다. 오늘은 12만원을 벌었지만 경험이 쌓이면 22만원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내가 “차 세워놓고 잤어요. 머리가 멍하네요”라고 했더니, 배차부장이 그럼 쉬라고 했다. 택시회사가 사람을 막 부려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뜻밖의 말을 듣고 혼란스러웠다. 그는 달력을 보더니 “오늘 쉬고, 내일도 쉬어. 21일날 야간하러 나와” 했다. 차마 그 자리에서 그만두겠다는 말을 못하고 신경 써 주셔서 고맙다고 말한 뒤 퇴근했다.

쉬라고 한 이틀째인 20일 오후 택시회사에 들러 사직서를 냈다. 관리부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 있었냐”고 묻길래, “적성에도 안 맞고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모두 힘들어한다”며 “그러지 말고 한 달은 해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택시회사에는 ‘333법칙’이라는 게 있다. 3일을 견디고 3개월을 참으면 3년을 한다는 말이다. 한 달을 참고 하면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이후 몇 번 더 관리부장한테서 전화가 왔지만 그만둔다는 말 외에 다른 답변을 할 수 없어 미안했다.

택시기사 취업 첫날인 11일부터 그만두는 날까지 길을 제대로 몰라도 막 달렸다. 내비게이션이 나오기 전만 해도 기사가 길을 많이 아는 것이 큰 자산이었지만,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가기만 해도 길이 어긋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내비게이션 때문에 ‘택시기사 아무나 한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영업을 마치면 가스충전소에 들러 가스를 넣었다. 이곳에는 자동세차장도 있어 세차도 날마다 했다. 그런데 세차비 1천원을 기사가 낸다. 세차비는 가스비와 마찬가지로 차량 유지비용으로,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회사가 내야 할 돈을 기사가 부담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택시발전법에는 택시운송사업자가 세차비용을 기사에게 전가시키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택시 기사들의 현실을 취재한다며 택시회사에 취직한 게 혹시나 선량한 기사들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일하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기사들은 12시간씩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초보 기사인 나에게 틈틈이 이것저것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나의 택시 체험기가 택시업계와 택시 기사들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른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글·사진 이충신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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