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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살 김씨 “스마트폰 동영상 편집 재밌어요”

등록 : 2018-12-13 15:42 수정 : 2018-12-2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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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의 세상 소통 돕는 광진구 ‘50플러스 플래너’

1 : 1 맞춤 교육으로 블로그 만들기·스마트폰 활용법 강의

지난 11월28일 오후 광진구 ㈜열린복지 강의실에서 ‘50플러스 플래너’의 도움으로 스마트폰에서 편집한 동영상을 어르신들이 자랑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곽은진·임진·최선화 플래너, 손복희씨, 박화우 플래너, 배지연씨, 박영신 플래너, 김금옥·안경화·이명희씨.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스마트폰 액정 위에서 김금옥(67)씨의 손가락은 계속 허둥댔다. 화면의 원하는 지점을 ‘터치’하는 게 쉽지 않았다. 마주 앉은 임진(49) ‘50플러스 플래너’가 “손끝을 살짝 댔다가 떼면 된다”고 알려줬지만, 그 ‘살짝’이 마음대로 안 됐다. 유튜브에 있는 동영상을 ‘끌어다 놓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그래도 임 플래너는 재촉하는 법이 없었다.

지난 11월28일 오후 광진구 ㈜열린복지 강의실에서는 스마트폰 활용 교육이 한창이었다. 요양보호사인 김씨는 “3주 전부터 블로그 만들기를 배웠고, 오늘은 스마트폰에서 동영상 편집하기를 배웠는데 정말 재미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내온 동영상을 볼 때마다 특별한 전문가들이 만든 거로 생각했는데, 오늘 해보니까 나도 괜찮은 동영상을 편집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씨보다 20살 가까이 어린 임 플래너는 “대부분의 어르신이 액정 터치하는 걸 어려워하시는데, 김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시더라. 또 강의 내용을 수첩에 기록을 다 하신 뒤, 바로 화면을 보고 터치하는 게 아니라 강의 내용과 하나씩 대조하면서 하시는 걸 보고 제가 많이 배웠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블로그는 한 번도 만든 적이 없다. 스마트폰 활용도 많이 안 했다”는 김씨는 “50플러스 플래너 분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아이들 입에 떠넣듯이 친절하게 가르쳐주니까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교육을 받고 나니 앞으로 계획이 생겼어요. 지금 초·중학생인 손주들 사진을 많이 입수해서 동영상을 만들고 싶어요. 멋있게 편집한 동영상을 보내면 아이들이 할머니를 다시 볼 것 같아요.”

강의를 맡은 50플러스 플래너는 광진구가 지난 10월 채용한 만 45~65살의 5명으로, 40시간 교육을 받은 뒤 어르신들이 계신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찾아가는 스마트폰 교육’을 하고 있다. 이 교육은 모두 3강으로 구성돼 있다. 1강은 블로그 만들기다. 박영신(48) 플래너는 “대부분 블로그를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아이디 만들기부터 시작하는데, 영어로 된 아이디를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2강에서는 블로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프로필로 쓸 사진을 만든다. 스마트폰으로 얼굴 사진을 찍은 뒤 마치 화장을 하듯 사진을 예쁘게 꾸민다. 어르신들은 친구나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따라 한다. 카메라 앱에 있는 다양한 효과를 이용해 얼굴의 주름을 없애고 피부도 화사하게 만드니 몇십 년 전으로 세월을 되돌린 느낌이다.


3강에서는 스마트폰 동영상 편집기 앱을 활용해 동영상을 편집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과정까지 실습한다. 카메라 앱으로 예쁘게 꾸민 사진에 다양한 애니메이션 효과를 주거나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끌어온 뒤, 배경 음악과 자막을 넣으니 근사한 동영상이 완성됐다. 박영신 플래너는 “동영상 편집은 우리가 배울 때도 어려워서 오늘 강의를 앞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끼리 수업 내용을 만들었다가 고치고 만들었다 고치고…. 굉장히 오래 의논하며 준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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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8일 오후 광진구 ㈜열린복지 강의실에서 강의 내용을 기록한 수첩을 보며 스마트폰에서 동영상을 편집하는 손복희(왼쪽)씨를 박영신 ‘50플러스 플래너’가 돕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맏언니인 박화우(64) 플래너는 지난 3월에 블로그를 처음 배웠다. “처음 배울 때는 어려웠죠. 그런데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니까 정말 재미있었어요. 하나 배우면 자꾸 연습해서 응용하게 되고 다른 분들께 알려드리게 되고…. 기자님도 이런 거 잘 모르시잖아요? 제가 이런 거 가르쳐드릴 수 있거든요.

오늘 배운 분들도 재밌다고 하시잖아요. 용어 자체도 잘 모르고 낯설지만 저희가 하는거 하나씩 따라 하다 재미있어하세요. 우리도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계속 노력하고 연습하면서 머리 짜고 토론해서 전문가 못지않게 하잖아요. 짧은 시간에 해낼 수 있었던 건 어르신들께 가르쳐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으니까요.”

3강 동영상 편집 강의를 맡은 곽은진(45)플래너는 3~4년 전 방과후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한 적이 있을 뿐, 강의는 처음이지만 마치 전문 강사같이 능숙하게 강의를 해냈다. “강의하면 제가 재미있어요. 제가 익힌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가르칠 수 있고, 그분들이 배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또 전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오늘 진도가 가장 빨랐던 분이, 블로그에다 글을 쓸 때 위치가 담긴 지도를 집어넣는 걸 몰라 답답하셨는데 오늘 와서 알게 돼서 좋다고 하실 때 제가 참 기뻤어요.”

임상병리사였던 박영신 플래너는 “우리 다섯 명 모두 직업과 경력이 다르고 한동안 아이 기르느라 경력단절된 분도 계시지만 이렇게 재교육을 받고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고 했다. 유아 교육을 했던 임진 플래너는 “영·유아는 새로운 걸 막 탐색하지만 어르신들은 익숙한 것과 안정감을 찾는다는 걸 느꼈어요. 익숙한 장소만 가고 익숙한 것만 하시지, 새로운 걸 하기를 두려워하세요. 하지만 어르신과 영·유아 모두 약자라 성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걸 가르칠 때 어르신마다의 속도에 맞춰 가르칠 수 있도록 우리의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희가 알려드린 스마트폰 교육을 통해 어르신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게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고, 정서적 고립감을 안 느끼시면 좋겠습니다. 그게 우리 활동의 최종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50플러스 플래너 활동은 서울시 25개 구 중 광진구가 처음이다. 이들의 활동 기간은 12월 말까지 석 달이다. 다들 “이제 시작인데, 곧 끝난다니 아쉽다”며 “광진구에서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박화우 플래너는 “다른 분야의 5명이 융합해서 하는 이런 교육이 정말 필요하다. 사회가 고령화되는데, 광진구가 선도적으로 시작한 사업이 3개월 단기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광진구뿐 아니라 다른 구에서도 하면 시니어 고령사회에도 더 좋을 것이고 50·60대 사람들도 일자리가 있으니 좋지 않겠냐”고 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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