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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가르고 건진 메주를 새 항아리에 옮겨 담는 모습(왼쪽). 장물은 여과만 한 뒤 햇볕과 바람에 숙성시킨다.
숲과 들의 생명들이 연둣빛 예쁜 옷을 입기 시작했다. 밭에선 들나물, 산에선 산나물이 용을 쓰며 올라온다. 풋풋하고 싱그런 밥상을 차리라는 것 같다. 나물들이 제맛을 드러내도록 하는 건 장이다. 제대로 빚은 장이 없으면 나물의 헌신은 허사다.
18일 장을 갈랐다. 음력 정월 그믐(양력 3월8일)에 담갔으니 43일 만이다. 장물은 벌써 구수하고 달큰한 맛이 들어 입안에 침이 고이게 했다. 된장·간장·고추장만 있어도 알뜰한 밥상을 차릴 수 있으니, 함께 장을 담근 이웃 여덟은 마음이 꽃망울처럼 한껏 부풀었다.
장은 메주를 소금물에 넣은 지 40일이 지나고 60일을 넘지 않은 어느날에 가른다. 된장을 생각하면 되도록 빨리, 간장을 맛나게 하려면 되도록 늦게 가른다. 일찍 담근 장은 늦게 갈라도 되지만, 정월을 넘겨 담근 것은 빨리 가르는 게 좋다. 늦어도 더워지는 5월 초순까지는 갈라야 한다. 건진 메주는 치대어 새 항아리에 담는다. 장물은 여과만 한 뒤 햇볕과 바람에 숙성시킨다.
해마다 장을 담그긴 하지만, 콩 농사를 직접 지어 메주 쑤고 장 담그는 건 실패했다. 콩은 병해충이 별로 없어서 어렵지 않겠거니 했다. 그러나 콩을 심자마자 산과 하늘의 온갖 손님들이 와서 멋대로 잔치를 벌였다. 밭에 바로 뿌린 콩은 새들이 날아와 귀신같이 파 먹었다. 새들의 공세를 피해 싹이 올라온 것은 고라니들 차지였다. 처음에는 ‘고라니와 나눠 먹으며 살아야지’ 하며 넉넉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러나 고라니의 식탐은 끝이 없었다. 가을에 거둔 콩으로는 메주 한두덩이 만들기도 어려웠다. 결국 해마다 유기농 메주를 사서 장을 담갔다.
올해는 원주의 손틀 메주와 전통 방식으로 거둔 토판염을 썼다. 값은 조금 비싸지만, 우리 어머니가 빚은 장맛을 되살릴 수 있다면 아까울 게 없다. 유전자 조작 콩을 원료로 글루타민산을 넣어 제조한 장은 믿을 수 없다. 맛은 물론 약성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에 비해 자연 발효된 장은 천연 감미료가 생성돼 칼큼하고 달큰한 맛을 낸다. 풍부한 효소는 장기를 편하게 해 주고 살균도 해 준다. 음식을 먹기 전 찻숟가락으로 한 술만 먹으면 체할 걱정이 없다.
어머니는 콩요리 마술사였다. 시루에 날마다 물만 주는데도 콩나물이 쑥쑥 자랐고, 콩으로 국이며 무침이며 매운탕을 만들어 주셨다. 콩잎은 된장에 박거나, 간장에 절여 장아찌로 만들었다. 두부는 물론 두유, 콩국, 콩죽, 콩자반, 인절미 고물 등 어머니 손을 거치면 안 되는 게 없었다. 반찬은 없더라도 콩밥에 된장찌개만 먹어도 온종일 뛰어놀고도 힘이 남았다. 콩에 단백질이 40%, 지방 20%, 탄수화물 30%가 들어 있다는 사실은 모르셨지만, 그것이 쇠고기보다 더 좋은 음식이 된다는 걸 어머니는 아셨다. 오늘은 쥐눈이콩밥에 된장으로 무친 망초나물과 민들레쌈, 부추 송송 썰어 넣은 된장국으로 저녁 밥상을 차려야겠다.
글·사진 유광숙/도시농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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