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석의 좋은 건축 나쁜 건축 이상한 건축

거창한 입구, 주민 접근성은 외려 떨어져

용산구청사 하

등록 : 2018-01-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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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 지을 때 제발 필요한 공간만

분수에 맞게 짓고 주민 의견 묻자

일본 자동차의 가격경쟁력은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 사전조사

대로변 용산구 보건소 입구

호화청사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건물이라도 쓸데없이 방만한 계획과 낭비를 피하려면 어떤 재주를 부려야 할까? 가치공학도 소용없는, 애초에 비대한 사업을 날씬하게 만들어야 할 때 필요한 다른 개념이 있다. ‘목표원가산정’이다. 목표원가라는 것은 도요타 등의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이 만들어낸 무섭도록 현실적인 개념이다. 호떡을 하나 구워 팔아도 가격을 정해야 하는데, 밀가루·설탕 등의 재료비에 인건비·연료비·임대료 등 비용을 더하고 거기에 내가 원하는 이문을 얹어 값을 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거꾸로, 이 정도면 내 호떡을 먹겠다는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을 조사해서 목표원가로 정하고, 거기에서 내 이익을 뺀 제조원가를 정한다. 그러고는 불가능해 보이는 그 원가에 맞게 재료와 비용을 쥐어짤 수 있는 효율성 높은 제조 공정을 만들어냈다. 이들이 창조해낸 깜짝 놀랄 가격경쟁력에 굴지의 선진국 자동차 회사들이 여지없이 무릎을 꿇었다.

싫든 좋든 용산지역의 랜드마크


청사를 기획하며 인구수도, 재정자립도도, 이미 지척에 있는 사용 가능한 문화시설의 존재 여부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턱대고 바구니에 담으니 호화 청사가 되는 것이다. 먼저 건축, 설비, 시공 전문가들과 건축주가 모두 모여 투명하고 거품 없는 목표원가를 정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예산에 맞게 따지고 또 따져 장을 볼 목록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바구니에 마구 담았던 있으나 마나 한 물건들 모두 쏟아버리고, 심사숙고한 목록에 따라 고르고 골라 생필품만 담아야 한다. 내 쌈짓돈이 아닌 시민들의 세금으로 셈을 치러야 한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하지만 이미 엄청난 예산을 들여 세상에 나와버린 건물은 무를 수도, 허물 수도 없으니 난감하다. 그저 효용과 편의를 높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미 지어진 호화청사들은 터무니없는 공간들 비워두거나 헤프게 사용 말고, 주민들이 사용할 여지를 늘려가야 한다. 또한 실제 주민들에게 필요한 용도로 사용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주민의 독립적인 접근 동선을 확보하고 내부 공간도 다시 살펴야 한다. 전시장이나 공연장도 느슨하게 풀어지지 않도록 스케줄 바짝 조이고, 알찬 공연과 전시가 기획되도록 담당자를 붙여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

청구서는 봤으니 이제 오래전에 셈 치른 용산구에 배달된 물건도 한번 살펴봐야겠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부근 지나며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 용산구청이다. 롯데타워도 그랬지만 이런 건물을 보고 랜드마크라 얘기하면 혹자는 이게 무슨 랜드마크냐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친다. 원래 랜드마크라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고 이정표가 되어주는, 눈에 잘 띄는 지형지물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없던 가치중립적 단어였다.

그런데 요즘은 왠지 랜드마크가 긍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아마도 앞뒤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무조건 튀고봐야 직성이 풀리고, 그래야만 성공했다 느끼는 요즘 시류에는 남의 눈에 띈다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으니 그렇지 않나 싶다. 그러니 덮어놓고 너도나도 랜드마크입네 하고, ‘월드마크’라고 없는 단어를 만들어가며 주장하니 실소를 금치 못한다. 누가 용산구청 건물을 못 보고 지나겠는가? 이 건물은 좋건 싫건, 도시적 맥락이나 동네 분위기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 채 지역의 랜드마크로 완전히 똬리를 틀었다.

이태원시장 쪽 접근로

위압적인 저층부와 시의회 건물

그러나 용산구청은 자신이 제일 내세우고 싶어 하는 단장한 얼굴을 사람 많고 보행 접근이 쉬운 방향이 아닌, 아무도 제대로 봐줄 수도 봐주지도 않는 자동차 달리는 도로와 건너편 산자락에다 디밀고 있다. 주민을 위한 더 나은 공공성을 핑계로 청사를 마련하고는 주민들의 접근이나 주변과의 조화에 대한 고민보다는 광고에 열을 올리는 품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얼굴을 제대로 보여줄 방법은 생각지도 않았다. 건물의 잘생긴 얼굴은 사진으로 찍어 즐기라고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사람들 눈에 가장 잘 띄는 위치와 각도를 고려해야 하는 법이다.

고층부는 뒤로 밀었다손 치더라도 덩치가 산만 한 저층부와 시의회 건물은 대로변에 바짝 붙여 지었다. 하지만 대로변으로 지나는 행인은 많지 않아, 용산구청이 주는 위압감은 도로를 달리는 차량 운전자들 몫이라는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대로변에서 구청사로 들어오는 입구는 꽤 거창하다. 하지만 커다란 간판 아래 금속제 열주와 돌로 지은 현관은 아쉽게도 그걸 봐줄 사람 없이 썰렁하다.

이태원시장 쪽 접근로, 보행성 뛰어나

이렇게 정문이 대외 과시용 또는 전시용이라면, 그래도 사용빈도 조금 높은 진입로가 두 개 더 있다. 경사지에 앉은 용산구청인지라 다른 높이에서 이루어지는 다른 진입은 꽤 흥미롭다.

하나는 녹사평대로가 이태원 길과 만나는 쪽에서 문화예술회관 옥상의 야외 정원으로 들어오는 길이다. 지하철을 타거나 정면으로 반드시 들어오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지 않으면 이 경로로 구청을 찾긴 힘들다. 방문객들과 주민을 위한 공원도 만들어두고 한편에 환경조각품도 둔 데다, 철 되면 조롱박도 심고 원두막도 놓는다. 이렇게 꾸며놓았는데도 앉을 자리는 변변치 않고 볕 가릴 그늘도 없다. 여기도 사용을 위하기보다는 전시를 위한 공간인 모양이다. 그래도 이 자리가 툭 트인 전망 내다보기엔 더 없으니 편리한 쓸모가 아쉽다.

또 다른 길은 온 나라가 다 아는 관광지니, 인구 유동이 대단하고 대중교통 연결도 좋은 이태원시장 쪽에서 접근하는 경로다. 보행자의 접근성이 가장 좋고, 진정한 공공성을 발휘하기 적당한 경로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상점들로 정겨운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갑자기 거대하고 번쩍이는 용산구청이 나온다. 좁은 시장 골목에선 구청의 전체 모습을 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생김이 전혀 다르고 크기가 전혀 다르며 양태가 전혀 다른 거대한 무언가가 주변의 낮고 작은 시장 골목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순백색의 아름다운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도 뒷골목의 자잘한 일상과 맞닥뜨리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골목은 훨씬 넓고 정작 골목과 만나는 미술관 앞은 광장처럼 넓은 마당이 마련되어 언제나 사람들로 왁자하다. 큰 건물이 주변의 작은 건물들과 충돌하지 않고 화해할 에어백 같은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덕분에 잘생긴 얼굴 바라볼 충분한 거리도 주어진다. 지역을 대표하는 큰 건물이 주변을 감싸고 시민들의 일상은 더욱 분주하니, 건물은 가치 있는 랜드마크로 빛난다.

옥상공원에서 들어오는 길

4개 건물 한데 몰아넣어 동선 엉켜

정면과 후면의 진입부가 만나는,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옥외 로비 같은 공간은 차갑고 복잡하다. 여기서 갈 길 몰라 헤매는 사람 심심찮게 보인다. 네 개의 건물을 하나로 몰아놓고 다시 분리를 궁리하느라 동선은 엉키고 쓸모없는 길들만 늘어났다. 이 건물의 어느 구석에서도 ‘공간사옥’의 근검하고 사리분별 있는 좋은 향내는 찾기 힘들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 <브라질>(1985)에서 민원인을 주눅 들게 하던 차갑고 고압적인 관공서 로비와 길가에 서 있던 끝없는 간판들이 생각난다. 그 관공서의 길고 무미건조한 복도와 작성하라 윽박지르던 수많은 양식이 꿈에 볼까 무섭다.

근자에 해괴한 이유 들어가며 엄청난 건설사업 벌이려는 지방자치단체가 또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제발 꼭 필요한 공간만 챙기고, 제발 엉뚱한 데 손 벌리고 떼쓰거나 크게 벌려 이권 사업 하겠다는 소리도 말고, 자신의 분수와 형편에 맞게, 주민들에게 당신들 세금 이리 써도 괜찮겠는지 의견도 들어보고 조심스레 시행해야 할 일이다.

글·사진 안준석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ㅣ건축가(AIA)·공학박사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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