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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곳이야./ 그 말을 남기고 천천히 문밖으로 걸어나가셨다./ 누군가에게는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자리 하나가 하루를 견디는 힘이 되는지도 모른다.”
서울마음편의점 한 곳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이 쓴 시다. 시는 마음편의점을 찾은 한 어르신에 대한 내용이다. 누군가에게는 물 한 잔 마시고 잠시 쉬어가는 의자 하나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텅 빈 하루를 견디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충전하는 생명줄이 되기도 한다. 서울마음편의점은 외로움을 느끼는 시민 누구나 라면이나 다과를 먹으며 편안하게 쉬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서울시가 조성한 공간인데 현재 19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외로웠던 어르신이 건넨 “참 좋은 곳”이라는 한마디 속에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무거운 과제에 대한 작은 해답이 들어 있다.
서울마음편의점 송파점 모습.
“귀찮게 굴지 마라”던 50대 ㄱ씨, 마음의 문을 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50대 남성 ㄱ씨는 사람들과 거의 말을 섞지 않고 지냈다. 동업하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빚을 떠안은데다 일터에서 무거운 물건을 옮기다 다리를 다쳐 유일한 자부심이었던 생업마저 내려놔야 했다. 스스로 마음의 문까지 닫은 그는 쓰레기로 가득 찬 집을 버려두고 집 앞 천막에 몸을 뉘었다. “어차피 도와줄 사람 하나 없다”는 지독한 외로움으로 주민센터 직원의 손길도, 이웃의 관심도 모조리 튕겨냈다.
전환점은 우연히 찾아왔다. 편의점 간판을 보고 담배나 살 요량으로 무작정 들어간 것이 서울마음편의점이었다. 첫 방문날 ㄱ씨는 “나한테 말 걸지도 말고 귀찮게 하지 않으면 자주 오겠다”며 날 선 경계심을 드러냈다. 유난히 더운 올여름 폭염 속에서 에어컨이 절실했던 그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서울마음편의점 캠핑존 구석에 홀로 앉아 더위를 식히곤 했다.
그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은 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는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지만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거리를 두면서도 묵묵히 곁을 내어주고 조심스럽게 안부를 물으며 그를 공동체 울타리 안으로 초대하려 노력했다. 몇 달에 걸친 복지사들의 따뜻한 두드림은 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ㄱ씨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그리고 “더위를 피해 쉬어가게 해준 게 고마워서 한 번만 참여해보자”며 마지못해 나선 마음편의점의 중장년 커뮤니티 활동은 그의 일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정리수납을 배우는 ‘오늘도 맑음' 수업에서 ㄱ씨는 군 복무 시절 ‘각 잡기' 실력을 발휘해 몸이 불편한 다른 참여자를 도왔고, 또래 남성들과 밥상을 차리는 ‘낭만 잇는 밥상' 모임에서는 반찬을 정갈하게 담아낸다는 칭찬을 받으며 ‘반찬 담당'이라는 역할까지 맡았다. “별것 아닌데 다들 칭찬해주고,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게 뿌듯했다”는 ㄱ씨는 복지사들의 설득과 도움으로 미뤄뒀던 병원 진료를 시작했고, 이제는 주거와 생계 지원까지 논의 중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서울마음편의점에서 치유받고 있다는 그의 일상은, 이제 편의점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1인 가구 166만 시대…5060 남성의 ‘고독사’ 그림자 ㄱ씨 사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속한 50대 남성층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태로운 절벽 끝에 서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고독사 사망자는 3924명으로 전년 대비 7.2%(263명) 증가했다. 남성이 전체의 81.7%(3205명)를 차지해 여성보다 4배 이상 많으며, 특히 50대(1197명, 30.5%)와 60대(1271명, 32.4%)가 전체 고독사 대부분인 62.9%를 차지하고 있다. 5060 중장년 남성이 대한민국 고독사의 가장 약한 고리임이 통계로 확인된다. 이러한 위기는 가구 구조의 파편화와 맞닿아 있다. 서울의 경우 2024년 기준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의 약 40%(약 166만 가구)에 육박하며, 이들 중 62.1%는 일상적인 외로움을, 13.6%는 완전한 사회적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사망 현장을 최초로 발견하는 이가 가족(26.6%)이나 지인(7.1%)인 경우는 최근 5년간 꾸준히 줄어드는 반면, 임대인이나 건물관리자(43.1%), 보건복지서비스 종사자(7.7%)가 발견하는 경우는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은 전통적인 혈연 중심의 안전망이 느슨해졌음을 시사한다. 퇴직, 실직, 이혼 그리고 갑작스러운 질병이 한꺼번에 덮치게 되면 중장년기 1인 가구에 고립은 개인 의지만으로 탈출할 수 없는 늪이다. 이에 서울시는 자살과 고독사의 이면에 외로움과 경제적 빈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에 주목해 위기 발생 이전의 ‘관계망 복원'에 초점을 맞춘 생명안전망을 가동하고 있다.
24시간 상담부터 병원 동행까지… 틈새 메우는 생활 안전망 120전화·손목닥터로도 마음건강 돌봄
“외로움은 사회적 과제” 인식 전환 절실
정리수납을 배우는 ‘오늘도 맑음' 수업에서 ㄱ씨는 군 복무 시절 ‘각 잡기' 실력을 발휘해 몸이 불편한 다른 참여자를 도왔고, 또래 남성들과 밥상을 차리는 ‘낭만 잇는 밥상' 모임에서는 반찬을 정갈하게 담아낸다는 칭찬을 받으며 ‘반찬 담당'이라는 역할까지 맡았다. “별것 아닌데 다들 칭찬해주고,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게 뿌듯했다”는 ㄱ씨는 복지사들의 설득과 도움으로 미뤄뒀던 병원 진료를 시작했고, 이제는 주거와 생계 지원까지 논의 중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서울마음편의점에서 치유받고 있다는 그의 일상은, 이제 편의점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1인 가구 166만 시대…5060 남성의 ‘고독사’ 그림자 ㄱ씨 사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속한 50대 남성층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태로운 절벽 끝에 서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고독사 사망자는 3924명으로 전년 대비 7.2%(263명) 증가했다. 남성이 전체의 81.7%(3205명)를 차지해 여성보다 4배 이상 많으며, 특히 50대(1197명, 30.5%)와 60대(1271명, 32.4%)가 전체 고독사 대부분인 62.9%를 차지하고 있다. 5060 중장년 남성이 대한민국 고독사의 가장 약한 고리임이 통계로 확인된다. 이러한 위기는 가구 구조의 파편화와 맞닿아 있다. 서울의 경우 2024년 기준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의 약 40%(약 166만 가구)에 육박하며, 이들 중 62.1%는 일상적인 외로움을, 13.6%는 완전한 사회적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사망 현장을 최초로 발견하는 이가 가족(26.6%)이나 지인(7.1%)인 경우는 최근 5년간 꾸준히 줄어드는 반면, 임대인이나 건물관리자(43.1%), 보건복지서비스 종사자(7.7%)가 발견하는 경우는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은 전통적인 혈연 중심의 안전망이 느슨해졌음을 시사한다. 퇴직, 실직, 이혼 그리고 갑작스러운 질병이 한꺼번에 덮치게 되면 중장년기 1인 가구에 고립은 개인 의지만으로 탈출할 수 없는 늪이다. 이에 서울시는 자살과 고독사의 이면에 외로움과 경제적 빈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에 주목해 위기 발생 이전의 ‘관계망 복원'에 초점을 맞춘 생명안전망을 가동하고 있다.
24시간 상담부터 병원 동행까지… 틈새 메우는 생활 안전망 120전화·손목닥터로도 마음건강 돌봄
“외로움은 사회적 과제” 인식 전환 절실
서울마음편의점 구로점에서 중장년 남성들이 목공예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열중하고 있다.
서울마음편의점과 24시간 전화, 마음을 잇다
단절을 깨는 첫 번째 해법은 ‘일상 속 관계 회복'이다. 오프라인 거점인 서울마음편의점은 외로움을 느끼는 누구나 무료로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난해 4곳으로 시작해 이달 현재 19곳인데 올 연말까지 25곳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곳은 올해 7월까지 누적 14만4천 명의 외로운 시민이 다녀갔다. 이용자 만족도 조사에서는 91.3%가 만족을 표했고, 외로움·고립감 점수는 이용 전 6.07점에서 이용 후 5.33점으로 낮아졌다. 외로움이 줄어든 이유로 절반 이상(53.5%)이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겨서'를 꼽았다.
10개 지점에서는 취약계층인 중장년 남성을 겨냥해 목공예, 가드닝, 반찬 만들기 등 생산적인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집중 배치해 이들의 사회 복귀를 돕고 있다. 방문조차 주저하는 이들을 위해 지역 축제나 공원, 고시원 밀집 지역을 직접 찾아가는 ‘이동형 서울마음편의점'도 활약 중이다. 우울감이 심해 자살 사고까지 경험한 한 청년은 이동형 서울마음편의점 상담을 통해 “이제는 찾아갈 곳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며 회복 의지를 보였다.
집 밖으로 나설 용기조차 없는 이들에게는 24시간 열린 전화 ‘외로움안녕120'이 동아줄 이 된다. 50대 남성 ㄴ씨는 오랜 기간 아픈 아내를 간병하다 사별한 뒤, 사람들과의 연락을 모두 끊었다. 온종일 말 한마디 없이 술에 의지한 채 불면에 시달리며 삶을 포기하려던 찰나, ‘누구에게라도 이야기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120을 눌렀다. 여러 차례 이어진 상담사와의 통화는 그를 다시 세상으로 이끌었고, 현재 ㄴ씨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지원을 받아 취업 훈련과 봉사활동을 알아보 며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서울마음편의점 동대문점 소통공간에서 방문자들이 편하게 독서하고 있다.
“아프면 쉬세요, 병원 동행할게요”
서울마음편의점 공간과 전화 상담이 외로 운 마음을 위로해준다면, 1인 가구가 현실에 서 마주하는 가장 큰 공포인 ‘생계 문제'는 실 질적인 제도로 뒷받침하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막막한 순간은 ‘아파서 병 원에 가야 하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고, 당장 일을 쉬면 생활비가 끊기는' 때다. 서울시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의료와 생계를 아우르는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인 가구가 아플 때 겪는 어려움을 돕기 위해 ‘건강동행서비스’(구 병원안심동행)가 의료 이용 전반으로 확대됐다. 무릎 수술을 앞두고 막막함에 떨던 60대 홀몸 어르신 ㄷ씨는 동행 매니저의 도움으로 이동부터 병원비 수납까지 무사히 일정을 마쳤다. 당뇨 합병증으로 발가락을 절단해 보행이 어려운 60대 ㄹ씨 역시 2㎏에 달하는 무거운 의료 기기를 든 채 동행 매니저와 함께 병원을 오가며 안정적으로 통원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중위소득 100% 이하 시민은 연 48회까지 무료로 지원되며, 이사 당일 주거지 하자를 점검하고 공과금 정산 등 행정절차를 돕는 ‘이사동행서비스'까지 신설돼 생활 전반의 홀로서기를 돕고 있다.
나아가 아파서 하루를 쉬면 당장 생계가 위태로운 특수고용직, 영세 자영업자 등 노동 약자를 위한 ‘서울형 입원생활비 지원' 제도도 방파제 역할을 한다. 질병 치료나 건강 검진을 위해 일을 쉬어야 할 경우 올해부터 하루 9만4230원씩 최대 14일(최대 131만원)을 현금으로 지원한다. 특히 퀵서비스, 택배 기사 등 이동 노동자뿐만 아니라 가사·청 소·돌봄 노동자, 학습지 교사 등 방문 노동 자까지 포함해 전체 지원 규모의 20%를 이들에게 우선 할당함으로써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있다. 지난해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은 5333명 중 40~60대 중장년층이 73%를 차지했고, 1·2인 가구 비중이 74%에 달해 중장년 1인 가구의 의료 빈곤을 막는 중요한 안전망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취약계층 집중 지원과 더불어, 1인 가구를 포함한 서울 시민 누구나 일상에서 스스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볼 수 있는 보편적인 예방 시스템도 함께 가동 중이다. 시민 293만 명의 일상 속 질병 예방을 돕는 ‘손 목닥터9988' 앱이 그것이다. 앱 사용자들의 당뇨병 신규 발생률이 비사용자 대비 7.9% 낮고, 고혈압 신규 발생률은 9.1% 낮게 나타 나는 등 대사증후군 관련 질환 개선 효과를 통계로 증명했다. 손목닥터 앱에는 우울, 불안 등 10종의 마음건강검진 기능도 탑재돼 지난해 약 100만 건의 검진이 이뤄졌고 2만 1484명이 전문 심리상담을 받아 마음의 위기에 이르지 않도록 예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 복지가 ‘관계망 복원'으로 진화하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울마음편의점은 누구나 부담 없이 타인과 ‘느슨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실질적 거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외로움은 취약계층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 보건당국 최고 책임자인 비벡 머시 는 “외로움은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 만큼 해롭다”고 경고했으며, 세계보건기구 (WHO) 역시 외로움을 세계적 공중보건 위협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막기 위해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도 ‘사후 대책’인 고독사에서 ‘사전 예방’인 사회적 고립 문제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인프라 확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도를 몰라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만큼 숨은 고립 가구를 찾아 내는 ‘발굴 행정'은 남겨진 숙제다.
정순둘 교수는 이에 대해 “동 주민센터 등을 활용한 밀착 홍보를 강화하고 동네 곳곳에 마음편의점 같은 거점 공간을 늘려 접근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며 “무엇보다 외로움에 대해 모든 시민이 ‘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전환과 함께 이웃끼리 서로 눈여겨보는 사회적 관심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