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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 안산 황톳길 관리 담당자 황규학씨가 황톳길 입구에서 서울&과 인터뷰하고 있다.
기나긴 동절기가 끝나고 날씨가 풀리면서 겨우내 움츠렸던 시민들이 다시 흙길로 몰려드는 계절이 됐다. 현재 서울에 약 170개의 황톳길이 조성돼 있는데, 맨발 걷기 마니아 사이에서 서대문구(구청장 이성헌) 황톳길이 입소문이 나 있다. 서울&은 구가 운영 중인 두 개의 황톳길 중 안산 황톳길(서대문구 연희동 산2-22)을 지난 6일 찾아 그 비결을 확인했다.
서대문구청 옆길을 따라 연북중학교 후문까지 올라가자 황톳길 입구가 나왔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 탓에 관리팀은 며칠 전 창고로 옮겼던 온풍기를 이날 아침 일찍 다시 꺼내 설치했다. 때늦은 찬바람에 맨발의 이용자들은 온풍기 앞에서 잠시나마 시린 발을 녹인 뒤 걸음을 계속했다.
“서대문뿐 아니라 마포, 은평, 동대문에서도 오시고 멀게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과 충남 천안에서까지 오셨다는 분도 있습니다.” 안산 황톳길을 관리하는 5명의 현장 인력을 대표해 황규학씨가 설명에 나섰다. 얘기를 나눠보니 전국구 시설이 된 비결은 단순했다. 바로 이용자들의 불만과 민원을 허투루 듣지 않고 해결하려는 ‘경청과 땀방울’의 끊임없는 노력이었다.
‘착착착' 물소리만 들어도 적정한지 파악
2023년 8월 개장한 서대문구 안산 황톳길은 마사토 등 다른 흙을 섞지 않은 100% 황토로만 조성됐다. “황토는 물기가 마르면 돌덩이처럼 단단해지거든요. 매일 관리해야 부드러운 황톳길이 유지됩니다. 관리를 얼마큼 할 수 있는지 구청 형편에 따라 100% 황토인 고관리형, 마사토를 섞은 저관리형 중 선택해 조성하는데 저희는 고관리형을 택했죠. 관리는 물 뿌리기와 황토 뒤섞기(로터리) 작업 두 가지가 가장 핵심입니다. 그래야 부드럽게 발에 착착 감기는 매끈한 느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물 뿌리기 작업에는 현장 작업자들만의 고도의 감각이 동원된다. “물 뿌릴 때 흙에서 ‘착착착' 하는 빗소리 같은 게 나야 수분이 적당히 들어찬 겁니다.” 뿌리는 물의 양은 매번 달라진다. “계절과 날씨, 당일 기온에 따라 적정한 수분량이 달라집니다. 1년 이상 매일 흙에 물을 뿌려보니 겨우 감이 잡히더군요.”
뒤섞기 작업도 난도가 높다. 장비 마련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개장 초기엔 모래용 장비를 가져다 썼다. 황토 전용 장비라는 게 따로 있을 리 없어서다. 그런데 단단히 굳은 흙에 부딪힌 기계가 퉁퉁 튀기만 하고 심지어 날이 부러지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결국 구청의 지원을 받아 농기계 파는 곳에서 밭고랑 파는 미니 관리기(로터리)를 구매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밭고랑용 기계는 한결 나은 성능을 보였지만 날이 한 달, 어떨 땐 2주 만에 닳아버렸다. 농기계 파는 상인이 ‘대체 무슨 작업을 하기에 날을 이렇게 자주 사 가느냐'고 의아해하기도 했단다. “뒤섞기 작업은 얼마나 깊게 섞어야 하느냐가 중요한데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올 것 같으면 얕게 파고, 볕이 강해 수분이 많이 날아갈 것 같은 날에는 흙을 깊게 섞어야 합니다.” 계절과 온도뿐 아니라 작업 당일 아침 날씨에 따라 황토를 뒤섞는 깊이를 조절하는 것이 최적의 부드러움을 유지하는 핵심 노하우라는 설명이다. 불만 해결 노력이 낳은 ‘여백'의 배려 산속 맑은 공기를 마시러 온 시민들이 무심코 던진 불만과 민원은 도리어 현장의 관리 방식을 업그레이드하는 훌륭한 나침반이 됐다. 우선, 이용자마다 황토의 부드러움을 선호하는 정도가 제각각이다보니 독특한 ‘여백 관리법'이 탄생했다. “질퍽한 진흙을 싫어하는 분들은 가장자리 경계석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반대로 진흙을 좋아하는 분들은 마른 흙을 발로 다 밀어내다보니 이래저래 민원이 많았죠. 고민 끝에 낸 해결책이 폭 약 2m인 황톳길 양쪽 가장자리에 30㎝ 정도의 여백(마른 흙길)을 남겨두고 가운데만 뒤섞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취향 다른 사람들도 나란히 걷게 됐고 관련 민원도 싹 사라졌습니다.” 낙엽 등을 정리하는 청소 장비도 이용자들의 민원 덕에 바뀌었다. 일부 이용객이 “공기 좋은 곳에 왔는데 먼지 부는 기계에서 휘발유 매연 냄새가 나고 시끄럽다”고 항의한 것이다. 황씨는 “듣고 보니 그 말씀이 다 맞더라고요. 그래서 냄새 안 나고 조용한 전기 충전식 송풍기로 장비를 전면 교체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관리 작업 동선이 이용객의 산책을 방해하지 않도록 출근 시간도 당겼다. “낮에 관리 작업을 위해 황톳길을 막으면 도로 공사로 차가 막히듯 동선이 엉켜서 걷는 분들이 짜증을 내세요. 그래서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가급적 방문객이 없는 새벽 6시 일찍 출근해 위생 청소부터 해놓고 한두 시간씩 걸리는 기계 작업을 오전에 무조건 끝마칩니다.” 이처럼 민원과 불만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덕분에 개장 초 빗발치던 민원은 지난해 6월 무렵부터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수준이 됐다고 귀띔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치유의 기적들 황톳길 관리 담당자들이 현장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방문객들의 극적인 ‘치유'를 직접 목격하거나 전해 들을 때다. “청량리에서부터 매일 지하철 타고 방문하는 치매 아내와 남편의 황톳길 사랑, 중풍 탓에 팔과 다리가 불편했던 중년 아주머니의 걸음이 회복된 일, 툭하면 소리를 지르는 발달장애 증상을 보이던 20대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꾸준히 흙길을 걸어 고분고분해진 사연 등 작은 기적을 자주 접합니다. 황토 효능인지 꾸준한 걷기 효과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저희가 땀 흘려 관리하는 곳에서 일어난 대단한 변화니까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없죠.” 이런 현장 담당자들의 노력 이면에는 구청 푸른도시과의 뚝심 있는 지원이 자리 잡고 있다. 구청 공원관리팀 황경원 팀장은 “안산과 천연동 등 두 군데 황톳길당 최대 7~9명의 관리인력을 배치하는 등 예산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민 요청과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 관리 담당자와 수시로 의견을 나누는 것은 물론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황규학씨는 환하게 웃었다. “아침 일찍 나와 무거운 로터리 기계 작업을 끝내고 적당히 수분을 머금은 흙길이 반듯하게 뻗어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어요. 그 위를 걸으며 건강을 회복한 분들이 다가와 ‘항상 깨끗하게 길을 내줘서 고맙다’며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건네줄 때면 피로감이 가십니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뒤섞기 작업도 난도가 높다. 장비 마련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개장 초기엔 모래용 장비를 가져다 썼다. 황토 전용 장비라는 게 따로 있을 리 없어서다. 그런데 단단히 굳은 흙에 부딪힌 기계가 퉁퉁 튀기만 하고 심지어 날이 부러지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결국 구청의 지원을 받아 농기계 파는 곳에서 밭고랑 파는 미니 관리기(로터리)를 구매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밭고랑용 기계는 한결 나은 성능을 보였지만 날이 한 달, 어떨 땐 2주 만에 닳아버렸다. 농기계 파는 상인이 ‘대체 무슨 작업을 하기에 날을 이렇게 자주 사 가느냐'고 의아해하기도 했단다. “뒤섞기 작업은 얼마나 깊게 섞어야 하느냐가 중요한데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올 것 같으면 얕게 파고, 볕이 강해 수분이 많이 날아갈 것 같은 날에는 흙을 깊게 섞어야 합니다.” 계절과 온도뿐 아니라 작업 당일 아침 날씨에 따라 황토를 뒤섞는 깊이를 조절하는 것이 최적의 부드러움을 유지하는 핵심 노하우라는 설명이다. 불만 해결 노력이 낳은 ‘여백'의 배려 산속 맑은 공기를 마시러 온 시민들이 무심코 던진 불만과 민원은 도리어 현장의 관리 방식을 업그레이드하는 훌륭한 나침반이 됐다. 우선, 이용자마다 황토의 부드러움을 선호하는 정도가 제각각이다보니 독특한 ‘여백 관리법'이 탄생했다. “질퍽한 진흙을 싫어하는 분들은 가장자리 경계석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반대로 진흙을 좋아하는 분들은 마른 흙을 발로 다 밀어내다보니 이래저래 민원이 많았죠. 고민 끝에 낸 해결책이 폭 약 2m인 황톳길 양쪽 가장자리에 30㎝ 정도의 여백(마른 흙길)을 남겨두고 가운데만 뒤섞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취향 다른 사람들도 나란히 걷게 됐고 관련 민원도 싹 사라졌습니다.” 낙엽 등을 정리하는 청소 장비도 이용자들의 민원 덕에 바뀌었다. 일부 이용객이 “공기 좋은 곳에 왔는데 먼지 부는 기계에서 휘발유 매연 냄새가 나고 시끄럽다”고 항의한 것이다. 황씨는 “듣고 보니 그 말씀이 다 맞더라고요. 그래서 냄새 안 나고 조용한 전기 충전식 송풍기로 장비를 전면 교체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관리 작업 동선이 이용객의 산책을 방해하지 않도록 출근 시간도 당겼다. “낮에 관리 작업을 위해 황톳길을 막으면 도로 공사로 차가 막히듯 동선이 엉켜서 걷는 분들이 짜증을 내세요. 그래서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가급적 방문객이 없는 새벽 6시 일찍 출근해 위생 청소부터 해놓고 한두 시간씩 걸리는 기계 작업을 오전에 무조건 끝마칩니다.” 이처럼 민원과 불만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덕분에 개장 초 빗발치던 민원은 지난해 6월 무렵부터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수준이 됐다고 귀띔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치유의 기적들 황톳길 관리 담당자들이 현장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방문객들의 극적인 ‘치유'를 직접 목격하거나 전해 들을 때다. “청량리에서부터 매일 지하철 타고 방문하는 치매 아내와 남편의 황톳길 사랑, 중풍 탓에 팔과 다리가 불편했던 중년 아주머니의 걸음이 회복된 일, 툭하면 소리를 지르는 발달장애 증상을 보이던 20대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꾸준히 흙길을 걸어 고분고분해진 사연 등 작은 기적을 자주 접합니다. 황토 효능인지 꾸준한 걷기 효과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저희가 땀 흘려 관리하는 곳에서 일어난 대단한 변화니까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없죠.” 이런 현장 담당자들의 노력 이면에는 구청 푸른도시과의 뚝심 있는 지원이 자리 잡고 있다. 구청 공원관리팀 황경원 팀장은 “안산과 천연동 등 두 군데 황톳길당 최대 7~9명의 관리인력을 배치하는 등 예산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민 요청과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 관리 담당자와 수시로 의견을 나누는 것은 물론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황규학씨는 환하게 웃었다. “아침 일찍 나와 무거운 로터리 기계 작업을 끝내고 적당히 수분을 머금은 흙길이 반듯하게 뻗어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어요. 그 위를 걸으며 건강을 회복한 분들이 다가와 ‘항상 깨끗하게 길을 내줘서 고맙다’며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건네줄 때면 피로감이 가십니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