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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 묻은 건물, 온전히 살아난 캠퍼스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

등록 : 2017-08-0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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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는 이화여대 운동장 자리에 신축 건물을 지으면서 땅속에 묻는 공법을 채택해 주변 캠퍼스와 조화를 꾀했다.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Ewha Campus Complex: ECC)가 들어선 자리는 원래 운동장이 있던 자리였다. 운동장을 중심에 두고 구성한 캠퍼스는 초·중등 교육시설에나 어울림직한 배치다. 이화여대나 고려대가 그랬듯 꽤 많은 대학들이 작은 땅에 몇 안 되는 건물로 시작했기에 그런 모양일 수밖에 없었겠다.

하지만 대학의 규모도 질도 크게 나아진 지금, 소음 나고 먼지 이는 운동장을 지성의 상징인 대학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떡하니 배치한 그런 환경을 그냥 두고 쓰기는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대학들은 이를 개선하려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이화여대의 경우 국제 지명 공모를 통해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를 영입했고, 이렇게 우리는 건축가의 이름값에 걸맞은 건축물을 하나 얻었지만 또 한번 다른 나라의 스타 건축가에게 큰 자리를 내어주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건축가의 지하공간 활용

도미니크 페로는 신인 건축가 시절 프랑스 국립도서관 공모전 당선을 시작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도시 한복판 땅을 직사각형으로 깊게 파서 그 아래 바닥에다 광장을 만들고 주위를 둘러싼 땅속으로 도서관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간결하지만 강력한 지하공간에 대한 디자인 개념은 페로가 설계한 베를린 올림픽 수영장을 거쳐 이대복합단지에서 또다시 쓰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광장은 사방이 막힌 채 숲을 두어 주변의 경험적 구심점이 되었다면, 이대복합단지의 땅속 광장은 앞뒤로 트여 방향성을 지닌 통로 구실을 한다. 그 트인 양 끝은 이화여대의 정문에서 시작해 본관 건물로 끝난다. 학교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본관 건물까지 전례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형성된 축은 엄청난 흡입력으로 방문자들을 빨아올린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아 주변 환경과 조화

땅을 갈라 큰길을 내고 건물은 땅속으로 묻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전략은 캠퍼스에 여러 가지 유리한 상황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이대복합단지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므로 주변 환경을 자극하지 않는다.


이화여대는 우리나라 여성 교육의 산실이라 자부하며, 역사의 부침 속에서 모진 세월을 함께 이겨낸 근대 교육시설의 하나이다. 이 캠퍼스가 지닌 수많은 이야기와 이곳을 거쳐 간 학생들의 소중한 기억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풍경을 신축 건물로 밟고 막아선다는 것은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다.

이대복합단지는 그런 힘든 외줄타기를 거뜬하게 해내며 자신을 지하로 숨김으로써 캠퍼스 내의 대지를 이용자들에게 돌려주었다. 화려하고 눈에 띄는 새 건물로 어떻게든 학교 이미지를 올려보려는 치졸한 유행에서 한 걸음 떨어져 풍경 만들기로 그 결과를 얻어냈고, 과거와 현재, 도시와 대학의 경계를 허무는 중간쯤 되는 지점을 탐구했다.

친환경적 노력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옥상을 덮은 조경으로 태양열을 덜고, 땅속으로 들어간 건물은 에너지 효율의 제고를 꾀한다. 냉난방에 지하수도 이용하고 주목할 만한 친환경적 기술들도 여럿 적용되었다. 몸통은 지하에 숨었으되 광장에 면한 유리벽을 통해 채광과 환기가 이루어지고 접근이 쉬운 설비 라인은 유지 관리에도 편리하다.

이화여대 복합단지 외부와 내부
거대한 인공 계곡, 캠퍼스 앞부분 두 토막 내

이대복합단지와 계곡의 광장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유리벽에 딱 붙여 배치된 건물의 이동 동선은 내부의 질서를 광장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외부의 에너지를 안으로 받아들이는 내외부의 접점이다. 그 동선은 내부를 돌다 외부로 이어지고 다시 내부로 들어가며 계단의 연결이 실내와 실외에서 다른 느낌으로 함께 이루어지는 흥미로운 여정을 제공한다.

흔히 대학 캠퍼스는 나누어진 별개의 동들이 개성 있는 외부 공간을 둘러싸는 모임의 연속으로 구성된다. 그렇게 마련된 공간과 장소에서는 다양한 행위와 기억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며 켜켜이 쌓여간다.

이화여대 입구를 들어서며 눈에 들어오는 이 건물을 보고 사람들은 갈라진 홍해 같다 말한다. 과장은 아니다. 비록 땅을 파고 깊이 숨겨서 지상에는 그 위용이 채 일각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광장 바닥에서 올려다보는 건물은 실로 수면 아래 숨겨진 거대한 빙산의 밑동같이, 갑자기 계곡 앞을 가로막아 선 절벽 같아 위축감이 절로 든다. 캠퍼스 내의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동떨어진 스케일이다.

게다가 이 거대한 인공 계곡은 모든 시설과 환경이 망처럼 연결되어야 할 캠퍼스의 앞부분을 두 토막 냈다. 200m가 훨씬 넘는 길이의 갈라진 계곡은 계단 위로 보이는 본관을 중심으로 좌우로 편을 갈라놓았다. 늘어난 보행량으로 학생들의 다이어트를 돕는 섬세한 행정을 자랑할 심산이 아니라면, 끊어진 동서 캠퍼스를 잇는 오작교라도 하나 놓아야겠다.

유리벽, 멋진 개념에 비해 디테일 아쉬워

그 인공 계곡을 규정짓는 양편의 유리벽은 학교 시설이라 믿기 힘든 딱딱한 얼굴로 방문자를 대한다. 유리벽이 높기도 하거니와 이를 잡아주는 스테인리스스틸 판은 사람이 뒤에 숨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넓고 꼭대기까지 쭉쭉 뻗는다. 워낙 전체 구조물의 스케일이 거대하니 멀리서 보면 묻혀서 보이지 않다가도 가까이 다가서면 차갑게 빛나는 스테인리스스틸과 볼트들의 무심함이 섬세함 부족한 바닥 포장과 함께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멋진 개념에 비하면 아쉬운 디테일이다.

놀며 산책하는 길이 아닌 정해진 시간과 목적을 지닌 보행이라면 아마도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짧고 평탄한 길을 선호할 것이다. 하굣길이면 몰라도 바쁜 등굣길에서는 내려갔다 다시 올라야 하는 이 길에 미운 눈길을 줄 수도 있을 테니 조금 더 친절했으면 좋았겠다. 볕 좋고 사람 많으면 이 인공 계곡을 뛰듯이 지나겠으나, 해 지고 인적 줄면 거인 나라에 떨어진 걸리버처럼 가슴 떨리고 공허할 것 같다.

키 작은 나무가 듬성듬성 조성된 옥상 조경

옥상에 조성된 조경은 부족한 토심이 이유인지 주변 다른 조경 구역에 비해 현저히 작달막한 나무들이 듬성듬성 심겨 있다. 대규모 녹지를 확보했다는 설계자의 주장은, 그래서 반은 차고 반은 부족하게 들린다. 프리츠커 상(건축계의 노벨상) 선정위원 카를로스 히메네스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신의 건축이 조경 같기를 바란다고. 건축물은 크든 작든 세상에 폐를 끼치니 시간이 흐르면서 풀과 나무에 덮이고 어울려 자연의 일부가 되고자 한다는 얘기였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도,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를 디자인한 도미니크 페로도 자연과 조경을 얘기하지만, 히메네스의 조경과는 자못 결이 다르다.

이화여대는 이 건물을 통해 외부로의 개방성을 한층 강화했다. 대학의 도시에 대한 과감한 접근에 생각이 많아진다. 대학이 사회와 함께한다는 것은 아름답고 바른 일이다. 그러나 도시가 대학 안으로 들어오면서 학교의 정체성은 다시 정립되어야 했고,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돌아다니는 관광객에 밀려 학생들의 영역은 위축된다. 이는 이화여대뿐 아니라 많은 대학들이 처한 상황이다. 유명 프랜차이즈를 비롯한 갖가지 상업시설에 영화관까지 학교로 들어와 쇼핑센터나 테마파크같이 변한 캠퍼스가 근사하고 편리하기는 하지만 이 길이 대학 캠퍼스가 가야 할 유일한 방향일까?

건축가 앨러스테어 파빈은 비좁은 복도 때문에 개축을 원하던 학교에 시차를 두고 쉬는 시간을 알리는 벨을 제안했던 예를 들며, 건축물은 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비싼 해답이라 말했다. 그리고 건축가들이 그래픽 디자이너들처럼 아주 특별한 결과물을 내놓아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음을 우려한 바 있다. 기능적이고 환경적인 문제가 산적한 이 사회에서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독창적인 새 건물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치밀하고 전략적인 사고이지 않을까?

글·사진 안준석공학박사·건축가(AIA),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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