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욜로’족이라고요? 그럼 ‘돌체 비타’가 아닙니다

비행기 옆좌석에서 만난 30대 남자에게

등록 : 2017-07-20 14:02 수정 : 2017-07-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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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을 맞아 낯선 곳으로 떠나기 위해 항공기에 탑승하는 순간, 혹은 케이티엑스(KTX)에 오르기 직전에 사람들은 저마다 가벼운 설렘을 갖습니다.

“내 옆자리에는 과연 누가 앉게 될까? 혹시 멋진 사람을 만나 내 인생에 극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그렇게 살짝 기대감을 가져보지만 영화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만사 피곤한 표정의 중년 아저씨, 짐이 한보따리인 할머니가 그 주인공일 때가 많지요. 얼마 전 출장을 위해 독일로 가는 항공기에 탑승했을 때 제 옆자리에는 30대 초반의 남성이 앉아 있었습니다. 기내 식사 서비스가 이뤄지는 동안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3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최소 6개월, 길게는 1년 동안 가능한 한 세상의 많은 곳을 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포부를 털어놓았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자답게 그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한편으로는 뭔지 모를 불안감도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막상 다녀보니 직장생활이 너무 뻔했어요. 창의적인 일터라고 선전한 것과는 달리 모든 것들이 경직되어 있었어요.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저도 기성세대와 다를 바 없겠구나 하는 오싹함이 들었어요. 얼마 동안 망설이다가 회사를 때려치우기로 했어요. 여행 다녀온 뒤의 계획이요? 뭐 솔직히 걱정도 되지만, 제가 부모님 돌봐드릴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마음껏 저를 위해 쓰기로 했어요. 단 한번뿐인 인생인데 저축 바닥나면 어때요? ‘욜로’(YOLO)라고 하잖아요?”

저는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떠날 수 있는 그의 여건, 젊음의 패기가 내심 부러웠습니다.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의식도 건강해 보였습니다. 한국 사회는 나이 마흔을 경계로 한쪽에서는 2막 인생에 대한 고민이 대세라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욜로가 화두입니다. 앞의 청년처럼 몇년 동안 모아두었던 목돈으로 전셋집을 얻는 대신 세계 여행을 떠나거나 취미생활에 한달 월급을 소비하는 소비층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래는 불확실하니 미래 또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내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가리킵니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당신은 한번뿐인 인생을 살 뿐이다)라는 말의 준말인데, 미국의 힙합 가수 드레이크가 ‘더 모토’(The Motto)라는 노래에서 후렴구로 ‘YOLO’를 반복해서 급속도로 유행이 되었습니다. 2016년에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안 ‘오바마 케어’의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동영상 마지막에, ‘Yolo, man’이라고 말해 더욱 화제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산장이나 카페에 가면 ‘헬로’ ‘차오’ 대신 ‘욜로’를 외치는 곳도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 시대 지구촌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서양에서 목격한 욜로는 조금 달랐습니다. 욜로는 한마디로 라틴어 단어 ‘카르페 디엠’(현재에 충실하라)의 미국식 버전이었습니다. 인생은 단 한번뿐이라는 것은 같지만, 그 방식에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성공, 출세 같은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지 말고, 평생 자기가 추구할 만한 일을 하자는 개념입니다. 그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시간과 열정, 돈을 투자하자는 것이지요. 소비 위주의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메시지도 한번뿐인 인생이니 뜻깊은 의료개혁 정책에 동참해달라는 의미였습니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중국 고사가 있던가요? ‘귤이 회남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는 옛말처럼, 원래 욜로의 좋은 뜻은 간데없고, 내일은 알 수 없고 오늘도 힘드니 맛있는 것 실컷 먹고 멋있는 곳 맘껏 보자는 뜻으로 한국에서는 살짝 변질되었습니다. 극단적으로 ‘삶을 불태워버리자’는 뜻으로 오역하는 사람조차 있습니다. 상업주의가 그 욕망에 기름을 붓고 있는 까닭입니다. 호텔, 여행, 백화점, 카드회사 같은 곳에서는 그 욕망을 한껏 부풀려 소비 광고와 마케팅에 집중합니다. 욕망을 자극하는 일명 ‘욕망 비즈니스’가 큰돈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런 삶의 방식을 서양에서는 ‘돌체 비타’(Dolce Vita)의 삶이라고 합니다. 화려하고 향락적인 인생을 추구하는 인생을 그린 이탈리아의 영화 제목에서 연유된 말입니다.

그러나 욜로는 결코 돌체 비타의 삶이 아닙니다. 물론 열심히 모아봤자 집 한채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 아끼기보다는 그냥 쓰게 되는 악순환, 일종의 현실도피로서의 소비 행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래의 잠재적 리스크를 알면서도 모든 지출을 오늘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해답일까요? 세계 여행을 떠나서 답답했던 시야가 트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권장할 만합니다. 다만 무모한 행위를 하기 전에 스스로 외치는 주문으로 욜로가 변질된 것은 아닌지 걱정될 뿐입니다.

흔한 표현처럼 ‘직장을 때려치우는’ 게 관건은 아닙니다. 직장을 그만두는 확실한 이유가 있고, 그 이후의 예견되는 불확실성에 대해서도 솔직해져야 합니다. 일과 직장이 나를 힘들게 하고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행복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일과 삶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잊고 삽니다.

평생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고, 인정받는 일을 한다면 행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행복은 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이지 단 한순간에 도달하는 그런 과녁이 아닙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코스를 벗어나 자신만의 마음속 지도를 따라 길을 떠났다가 결국은 자기만의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내 일(Job)이 있어야, 내일(Tomorrow)이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욜로 정신 아닐까요?

욜로는 돌체 비타가 아닙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글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 저서 <투아레그 직장인 학교>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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