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Life No.2 What I really feel’, Mixed Media on Paper, 53.5×76.5㎝
대학 시절, 내가 듣는 수업마다 졸아댄 걸 모르고 시험이 다가오면 수업 필기한 걸 빌려달라는 남자 동기들이 있었다. 심한 악필이기까지 해서 못 준다 했다. 내 필기를 경험하고 나면 그런 부탁은 두 번 다시 받지 않았는데, 누군가는 나를 치사하다고 했지만 다른 친구 거를 복사해서 주고 간 마음씨 고운 동기도 있었다!
내 물건 포장 솜씨도 글씨와 마찬가지라 남 보기에 좀 딱할 정도인데, 올봄 첫 출간 후 부모님의 요청으로 책을 부칠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상자든 종이봉투든 마지막에는 테이프로 밀봉하는데, 우체국에는 절단 기능까지 갖춘 커다란 포장 테이프만 있었다. 남들은 지이익 드르륵 잘만 쓰는 걸 보면 사용이 쉬운 물건임이 분명한데, 왜 내 손에만 오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이고 들러붙는지, 누더기가 된 소포를 놓고 진짜 보내도 되는지 고민한 게 여러 번이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한번은 꿈도 야무져, 무려 다섯 권을 낱개 포장하러 갔다. 여느 때처럼 끈적한 테이프를 어찌하지 못해 가위까지 동원해 허우적거리던 중에 남의 손 두 개가 불쑥 끼어드는 게 아닌가.
언젠가부터 ‘로비 매니저’로 호칭이 바뀌었다는, 우체국 청원경찰이었다. 헤매는 내게 손만 보태줘도 감사할 것을, 그이는 뜻밖에도 아예 해주겠단다!
그의 손에서 책이 한 권씩 휘리릭 포장되는 걸 보니 내가 얼마나 답답해 보였을까, 싶었다.
한편으로는 돕는 손이 되지 못하고 옆에서 감탄만 하는 게 염치없었는데, 엄마가 그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던 기억이 퍼뜩 났다. 평소에 연세 드신 분들을 참 친절하게 챙기시던데 나 같은 사람까지 있어서 힘드시겠다, 죄송하고 감사하다 인사하니, 그 말에 그이는 사람 좋게 웃었다.
“아유, 저도 처음부터 이러지 않았어요. 힘들 때도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인생이 한 번뿐이더라고요. 그런데 화난다고 화내고 살면 아깝잖아요. 웃고 살아야죠. 하하.” 타인 때문에 까매질 수 있는 속을 다독이고 다스리며 산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인생은 짧다’는 소재의 오래전 광고가 떠올랐다. 광고는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낳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엄마의 비명과 함께 나온 아기는 유리창을 뚫고 쏘아 올려지고, 날아가며 아기는 점점 자란다. 자아가 형성되는 나이쯤부터 “으아아아” 비명을 지르는데, 누운 채로 쏜살같이 허공을 가르고 구름을 지나며 아이는 청년이, 그리고 중년이 된다. 드디어 노년, 웅크린 듯한 자세로 하강하더니 급기야 관 속에 내리꽂힌다. 다소 충격적인 영상을 뒤따르는 자막은 ‘인생은 짧다. 더 놀아라’(Life is short. Play more)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게임기 광고라는데, 당시 사회적 논란이 일어 티브이(TV)에서는 금세 자취를 감추었지만 ‘바이럴’로는 성공했다나. 청원경찰 이야기를 이 광고와 함께 곱씹다보니 문득 아이가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니라 내내 “으하하하” 웃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메시지도 ‘인생은 짧다. 더 웃어라(Laugh more)’였으려나? 다만, 그런 메시지로 광고할 만한 산업이나 기업이 있을까 싶다. 얼핏 생각하기에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적당할 듯해도 요즘 험하고 잔혹한 콘텐츠가 압도적으로 많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면 놀이공원은? TV에서 광고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대부분 예능에서 웃음 섞인 비명을 지르는 장면으로 더 많이 본 듯한데…. 이런저런 생각 끝에 갑자기 엉뚱한 궁금증이 일었다. 청원경찰, 그이가 자기는 사람들에게 화내는 대신 웃는다고 했겠다…, 나를 보고 분명 웃었고…. 그랬다면 내가 본 건 ‘웃음’일까 ‘화’일까?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아유, 저도 처음부터 이러지 않았어요. 힘들 때도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인생이 한 번뿐이더라고요. 그런데 화난다고 화내고 살면 아깝잖아요. 웃고 살아야죠. 하하.” 타인 때문에 까매질 수 있는 속을 다독이고 다스리며 산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인생은 짧다’는 소재의 오래전 광고가 떠올랐다. 광고는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낳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엄마의 비명과 함께 나온 아기는 유리창을 뚫고 쏘아 올려지고, 날아가며 아기는 점점 자란다. 자아가 형성되는 나이쯤부터 “으아아아” 비명을 지르는데, 누운 채로 쏜살같이 허공을 가르고 구름을 지나며 아이는 청년이, 그리고 중년이 된다. 드디어 노년, 웅크린 듯한 자세로 하강하더니 급기야 관 속에 내리꽂힌다. 다소 충격적인 영상을 뒤따르는 자막은 ‘인생은 짧다. 더 놀아라’(Life is short. Play more)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게임기 광고라는데, 당시 사회적 논란이 일어 티브이(TV)에서는 금세 자취를 감추었지만 ‘바이럴’로는 성공했다나. 청원경찰 이야기를 이 광고와 함께 곱씹다보니 문득 아이가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니라 내내 “으하하하” 웃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메시지도 ‘인생은 짧다. 더 웃어라(Laugh more)’였으려나? 다만, 그런 메시지로 광고할 만한 산업이나 기업이 있을까 싶다. 얼핏 생각하기에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적당할 듯해도 요즘 험하고 잔혹한 콘텐츠가 압도적으로 많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면 놀이공원은? TV에서 광고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대부분 예능에서 웃음 섞인 비명을 지르는 장면으로 더 많이 본 듯한데…. 이런저런 생각 끝에 갑자기 엉뚱한 궁금증이 일었다. 청원경찰, 그이가 자기는 사람들에게 화내는 대신 웃는다고 했겠다…, 나를 보고 분명 웃었고…. 그랬다면 내가 본 건 ‘웃음’일까 ‘화’일까?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서울& 인기기사
-
1.
-
2.
-
3.
-
4.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