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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비 줄여드립니다” 강남구 드림팀 떴다

‘대치동 현대아파트’ 첫 현장 컨설팅 공무원·전문가로 100인추진단

등록 : 2017-06-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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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비를 낮추는 드림팀이 떴다.

지난 9일 오후 강남구 대치동 현대아파트에 평소 주민들이 만나기 어려운 아파트 전문가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건축에 대한 전문지식과 실무 경험을 갖춘 이봉률 건축기술사, 건설에 대한 특급기술을 가진 조맹수 건설기술사, 공동주택 관리소장 자격을 갖춘 이기남 주택관리사에 아파트의 회계 상태를 꼼꼼히 챙겨줄 마상혁 공인회계사가 자리를 함께한 것이다.

여기에 강남구청의 아파트 전문가들인 양한성 공동주택관리팀장과 아파트 계약심사 자문을 담당하는 재무과 엄희원 주무관, 태양광 보급 업무를 맡은 환경과 김석광 주무관의 얼굴도 보인다. 모두 ‘아파트 관리 부문의 달인’들로 ‘아파트 드림팀’이라 할 만한 면모들이다.

아파트 드림팀은 이날 현대아파트 주민 30여명과 단지 내 노인정에서 머리를 맞댔다. 현대아파트 관리비 현황을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현실적인 절감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주민들 가운데는 김창구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정현숙 입주자대표회의 감사 등 입주자대표회의 주요 간부들이 많이 참석했다. 아파트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송택근 관리소장도 맨 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주민들은 ‘드림팀 방문’이라는 흔치 않은 기회를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듯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만큼 이번 현장 컨설팅은 특별한 기회였다. 아파트 전문가들이 드림팀을 구성해 현장 컨설팅에 나선 것은 1959년 국내 최초 아파트인 ‘종암아파트’가 건설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런 특별한 컨설팅이 가능해진 것은 강남구가 올해를 ‘아파트 관리비 절감 원년’으로 선언하고 ‘아파트 관리비 절감 100인 추진단’을 지난 4월5일 출범시킨 덕이다. 주윤중 부구청장을 단장으로 한 100인 추진단은 아파트 업무와 관련 있는 구청의 주요 공무원들과 변호사·회계사·주택관리사 등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이렇게 드림팀까지 짜야 하는 이유는 아파트 관리비의 복잡성 때문이다. 강남구 재무과의 엄 주무관은 “아파트 관련 공사 계약을 심사할 때 고려해야 할 관련 법령과 기준만 공동주택관리법 등 50가지가 넘는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여러 전문가의 전문성을 합치지 않으면 관리비 개선의 윤곽을 제대로 그리는 게 쉽지 않다.

이런 복잡성은 아파트 관리비와 관련한 불신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를 비롯해 입주자 등 모두가 ‘명확한 근거’를 찾기 힘든 탓에 서로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강남구는 100인 추진단 구성원들을 10인 1조로 묶어 드림팀을 꾸렸다. 현재 5조까지 구성된 드림팀들은 강남구에 있는 아파트 중 정부의 의무관리대상(세대수 150세대 이상)인 165곳을 올해 말까지 나누어 찾아가 컨설팅을 하게 된다. 대치동 현대아파트 컨설팅은 이런 대장정의 출발점이다.

이날 컨설팅은 드림팀의 리더 격인 양 팀장이 2012~2016년 관리비 자료를 토대로 현대아파트 관리비의 특징을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현대아파트는 그사이 난방비와 가스사용료는 줄었지만, 일반관리비와 전기료는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관리비는 갈수록 줄어드는 게 옳습니다. 가령 지난달 관리비에서 전기료가 많이 나오면 주민 각자는 이번 달에는 전기를 적게 써야겠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관리비가 늘어난 부분들에 대한 분석과 대처가 필요합니다.”

관리비 특성 분석이 끝나자 마상혁 회계사는 “공용관리비가 같은 규모의 다른 아파트보다 25% 정도 높게 나온다”며 “난방비를 더욱 절약하기 위해서는 효율성이 낮은 배관 등을 교체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하면 초기 설치 비용이 들지만, 이것을 2~3년 안에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봉률 건축기술사는 장기수선충당금의 합리적 집행을 제안했다. 이 건축기술사는 “현대아파트의 경우, 아파트 주요 시설의 교체와 보수에 쓰이는 장기수선충당금 부과가 적은 편”이라며 “장기적으로 볼 때 적정한 장기수선충당금 조성과 집행이 관리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기남 주택관리사는 “일반관리비 절감을 위해 경비원 인건비를 줄이는 단순절감 방식을 채택할 때, 많은 서비스를 잃을 수 있다”며 “경비원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리 방법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엄 주무관은 아파트에서 공사나 용역계약을 할 때 구청에 원가 자문을 요청하는 것도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엄 주무관은 “도곡동의 한 아파트는 원가 자문 결과 6억5000만원 규모의 시설물 보수공사에서 9500만원을 아꼈다”고 밝혔다.

엄 주무관은 “관련 규정이 많아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실수 등으로 공사비가 늘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전문성을 갖춘 구청 공무원들과 협력해 불필요한 경비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본 컨설팅 뒤에도 주민들의 세세한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단지 내 불법주차가 많은데, 이들에게 주차비를 징수할 수 있을까요?”(김창구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아파트 단지는 외부인에게 개방이 안 되기 때문에 징벌적 주차료 징수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손님이 많이 찾아오는 입주자 등에게 1대분의 추가 주차료를 부과할 수는 있을 겁니다.”(이기남 주택관리사)

“단지 안에 감시카메라(CCTV)를 설치하려고 하는데, 몇십만 화소 이상이 돼야 할까요?”(정현숙 입주자대표회의 감사)

“이론적인 수치는 있지만 다른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업자에게 직접 와서 시범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조맹수 건설기술사)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컨설팅을 마치자 참석자들의 표정이 훨씬 밝아졌다. 그동안 막연히 ‘이럴 것’이라고 짐작만 하던 부분들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입주자대표회의 김 회장은 “그동안 매일매일 관리비를 어떻게 절감하는지 고민했지만, 어디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곤란한 부분이 많았다”며 “전문가들이 명확하게 짚어준 덕에 많은 부분이 명확해져서 좋았다”고 말했다. 송 관리소장도 “아파트 관련 공사 계약 때 구청에 원가 자문을 요청하면 업체들의 담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새로 알게 됐다”며 “이번 컨설팅이 주민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양 공동주택관리팀장은 “관리비용 절감도 큰 성과지만, 드림팀 컨설팅의 가장 큰 효과는 아파트 주민들끼리 신뢰하게 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드림팀의 현장 컨설팅이 아파트 관리비에 대한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불신의 벽’을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관리비용 절감과 상호 신뢰 상승’의 훈훈한 봄바람이 강남구를 넘어 더 많은 지역의 아파트 단지에 전해지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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