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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마실 카페 아래로 보이는 마을 지붕과 도시 전경.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 내려 ‘한양도성 순성길’ 표지판을 따라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간다. 가파른 경사 때문에 조금은 숨이 차지만 골목이 주는 익숙함과 따스함에 이내 기분이 좋아진다.
처음 오는 동네지만 하나도 낯설지 않다. 어린 시절을 골목길에서 뛰어놀던 내 나이 또래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골목길이 전혀 익숙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도 ‘추억이란 이런 거다’라며 감수성을 흔들어 깨운다. 이곳은 성북구 삼선동 369 성곽마을. ‘삼선동’에서 3, ‘6구역’에서 6, ‘언덕 구(邱)’에서 9를 가져와 ‘369마을’이라 이름 지었다.
한양도성 순성길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도성을 축조했다. 남산, 북악산, 낙산, 인왕산을 따라 성벽을 쌓았고, 성벽 중간중간 동서남북 방위를 따라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 4대문과 그 사이사이 ‘혜화문, 광희문, 창의문, 소의문’ 4소문을 두어 성 안팎을 드나들게 했다.
세종 때 다시 토성(土城)을 석성(石城)으로 정비했고, 여러 왕을 거치며 성벽이 무너진 자리에 다시 돌을 가져다 수축(修築)해 벽체를 보전했다. 두 번의 전란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겪으며 훼손된 곳을 다시 복원하여 지금 모습이 됐다.
산의 능선을 살려 쌓아올린 성벽은 그 자체로 산의 일부가 됐고,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돌로 빈틈없이 채운 성벽은 한양의 600년 역사를 담고 있다. 세월 따라 세상도 참 많이 변했을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던 곳에 사람이 모여들어 마을을 만들었고, 그 옛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상상도 못했을 희한한 건물과 넘치는 인구가 다시 이 도시를 빼곡히 채웠다. 변하지 않은 건 산이 있던 곳에 여전히 산이 있고 성벽을 쌓은 곳에 여전히 성벽이 존재한다는 것, 성벽을 따라 이 길로 수많은 사람이 오가며 울고 웃었을 거란 것, 수많은 인생이 이 길 위에서 펼쳐졌다는 것일 거다. 분주한 삶의 수레바퀴 속을 뱅글뱅글 돌고 있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역사의 증거물로 자리한 석벽 앞에 서니 비로소 눈이 뜨이고 생각이 열린다.
혜화문과 낙산공원 사이 369마을
369마을은 총 18.6㎞ 둘레길 중 낙산 구간, 그중에서도 혜화문과 낙산공원 사이에 자리한 성곽마을이다. 2013년 주민들의 동의로 주택 재개발 정비구역에서 해제됐고, 369마을이라는 이름도 주민회의를 통해 지어졌다. 주민이 주도하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화합하고, 고유의 문화를 소중히 지켜내는 이곳만의 정체성을 간직한 마을이다. 새로 산 옷 말고 엄마가 입던 옷으로 개성 있게 멋을 낸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369마을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마을 사회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369마실’ 카페다. 한눈에 봐도 아날로그 감성이 그득하고, 어느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더라도 멋진 그림이 되는 예쁜 공간이다.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엔 방금 전 가지를 쳐낸 듯 싱그러운 나무 냄새가 실려 있고, 특히 은행나무 바로 옆 테라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면 봄이 한창 무르익은 이 계절이 그저 축복처럼 느껴진다. 발아래 펼쳐진 마을의 빨간 지붕, 파란 지붕은 멀리 보이는 교회의 첨탑이나 고즈넉한 혜화문과 어울려 서울이란 도시가 그저 삭막하기만 한 곳은 아니라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듯하다. 밤이면 야경이 또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니 언제고 꼭 다시 올 것을 기약한다.
369마실 카페
봄가을엔 가능하면 토요일에 369마을을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매주 토요일 이곳에서 ‘369 성곽여가 풍;류’라는 문화예술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마을 투어는 물론, 마실 카페 앞마당에서 공연도 즐길 수 있다. 제일 기대되는 건 ‘369 사랑방’에서 판매하는 비빔밥이다. 마을식당은 수, 목요일과 토요일 점심에 ‘369 사랑방’에서 문을 여는데, 토요일엔 비빔밥과 식혜를 만원에 즐길 수 있다.
어쩌다 휴대전화만 두고 나와도 좌불안석이 되는 세상을 살며 이곳에서 모처럼 여유를 찾았다.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내려앉은 성석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기상이 웅대해진 걸까? 아님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향 같은 마을을 보며 마음이 푸근해진 걸까? 경계가 모호한 그 두 마음 사이에서 안식을 얻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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