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모든 것은 숲으로부터 온다

등록 : 2025-05-2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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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99개 시설에서 연간 1998만 명이 즐긴 콘텐츠라면 감히 ‘국민 여가’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 수치는 산림청에서 발표한 2024년 자연휴양림 이용자 통계다. 더 놀라운 것은 199곳 중 서울에 있는 시설은 0곳이라는 점이다.

인구, 경제, 문화, 보건, 복지, 교육 전 분야에 걸쳐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소멸을 이야기하며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시대에 ‘전국에 다 있지만 서울에만 없는 것’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서울 사람들은 숲과 자연을 싫어해서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주말마다 등산로 인근 지하철역에 북적이는 등산객, 서울에 있는 캠핑장 예약을 못해 애태우는 주민들, 봄이 되면 평일에도 불암산 철쭉동산에 나와 하루를 즐기는 주민들, 지금 저마다 동네의 특색을 담은 정원도시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 뛰는 서울의 구청장들이 그 산증인이다.

정원도시라면 노원구민이 자부심을 갖는 분야 중 하나다. 일찌감치 4개의 산을 중심으로 조성된 힐링타운과 동네 곳곳에 노후한 공원, 훼손된 산림을 복원하며 정원을 만들어온 결과물은 일상이 마비된 코로나19 시기 구민들의 안락한 여가와 건강을 지탱해준 비결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스팔트로 땅을 덮고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도시를 만들어 자연과 일상을 분리해놓고도 도시 안에 다시 정원을 만드는가? 우리도 자연에서 온 존재이기에 여전히 자연의 일부인 풀, 꽃, 나무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인류가 자연과의 거리를 너무 멀리할 수 없는 것은 일종의 ‘영원한 노스탤지어’인가보다.

먼 옛날 귀족들의 저택에 정원을 가꾸던 것이 시민 모두가 함께 누리는 공공정원, 즉 공원으로 이어져온 데에는 그만큼의 강한 열망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뭐가 있을까? 바로 숲이다. 그리고 숲이 도시의 삶과 가까운 곳에서 만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접점이 자연휴양림이다. 플라톤식으로 말하자면 정원은 숲의 모방이고, 정원의 이데아는 숲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숲으로부터 온다.” 서울에 처음으로 조성된 자연휴양림 ‘수락 휴(休)’ 곳곳에 이 말이 적혀 있다. 휴양림 조성을 추진하면서 계속 마음속에 되뇌던 말이기도 하다.


마침 수락산 계곡 중 수려한 경관과 접근성에 비해 활용도가 떨어지던 동막골 기슭에서 적당한 위치를 찾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서울에 있지만 시야를 가리는 회색 빌딩은 전혀 보이지 않고, 숲속에 있지만 2㎞ 거리에 지하철역이 있어 오가기도 쉽다.

이곳은 자연휴양림의 매력을 서울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산림 복지의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서울 최초라는 상징성이나 의미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최상의 휴식을 만끽할 수 있도록 조성됐다. 그래서 명칭도 ‘쉼’을 표기했다. 시끌벅적 캠프파이어와 바비큐 파티도 재미있지만 휴식을 방해할 수 있기에 제한하는 대신 감성적인 불멍과 레스토랑으로 대체했다. 호텔급 객실에 누운 채로 별을 바라볼 수 있는 각도에 천창을 내고, 티브이(TV)는 없앤 대신 감성적인 엘피(LP) 턴테이블을 뒀다.

7월 정식 개장을 앞둔 수락 휴는 사실 민선 7기 초반부터 구상하던 일이다. 민선 8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야 완성됐음에도 여전히 서울 최초의 사례일 만큼 전례 없는 발상이었으며, 오래 걸린 만큼 많이 연구하고 꼼꼼히 따져본 노력의 세월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고민과 노력의 결실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숙박이 가능한 복층 구조의 트리하우스로 구현됐다. 최고 지상 14m 높이의 트리하우스 3개 동은 어린 시절 한번쯤은 꿈꿔봤을 나무 꼭대기 오두막집의 로망을 자극한다. 트리하우스를 비롯한 18개 동 25개 객실을 둘러싼 자연휴양림에서의 하루는 노원이 그간 일궈온 힐링과 문화 역량의 총화다. 그리고 동시에 자연과 문화는 어떻게 세대도 계층도 성별도 구분하지 않는 보편적 복지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필자의 답이기도 하다.

세상 대부분의 일은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다. 아무리 들어봐야 한 번 실제로 보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숲에서는 한 번 보는 것으로 부족하다. 아니, 스치듯 본 것으로는 알 수 없다. 숲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지, 도시의 삶 속에 우리는 무엇을 잊고 사는지. 그래서 백견불여일‘휴’(百見不如一休)라 말하고 싶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숲에 몸을 맡기는 휴식을 통해 차오르는 기운은 그 어떤 진귀한 보약과도 비교할 수 없다.

수락산 자연휴양림을 시작으로 서울시민들에게 여가의 새로운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오승록 노원구청장

트리하우스 조감도. 노원구 제공

사진 노원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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